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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Publication

[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14] '침묵'은 '금(金)'이 아니라는 '멍청한 것을 의미한다'는 비즈니스 세계

by Retireconomist 2011. 1. 20.

날씨가 심상치 않다. 눈폭풍이 몰려온다고 TV에서 난리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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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TV에서는 눈폭풍으로 수업이 늦게 시작하거나,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 명단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네브래스카'의 수업 연기나 휴교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확인하는데 20분도 넘게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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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내 방에서 밖으로 보이는 1층 파티오에 눈이 앉은 모습. 족히 10cm 이상은 쌓였다. 바람이 더 무섭다. ]

서둘러 홈스테이를 빠져나와 등굣길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그냥 지나치면 심심한데' 그런데 이 등꾯길 혼잣말이 씨가 되었다.

 목요일 수업은 '레이' 교수의 '비즈니스 리딩 (Business Reading)'으로 시작된다. 무슨 변곡점이 생길까? 수업마다 큰 곤혹 아닌 곤혹을 치르는 우리로서는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그냥 지나치면 심심할 정도인데, 아니나 다를까.

여덟 시가 되기 전에 모두 강의실에 정좌하고 있었다. 지난 수업시간에 과제로 각자에게 나누어준 칼럼들의 발표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르는 단어를 사전으로 확인하는 등 분주하면서도 심도있는 수업 준비에 들어간 상태이다.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으려면 발음도 발표자료의 표기에도 신경 써야 하고, 다른 이들의 자료도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 누가 옆에서 방해하면 응징할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때.

강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좋은 아침"하며 '레이' 교수가 등장했다. 영하 20도의 강풍을 몰고서.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큰 목소리로 입을 옆으로 강하게 찢듯이 어색한 웃는 모습을 만들며 '레이' 교수의 인사에 화답했다. 속으로는 '이 정도면 무사하겠지?'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교수의 기분에 좌우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싫기도 했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로 "이렇게 비즈니스 세계에 나가면 진정 당신들은 열등생일 뿐만 아니라 어떠한 계약의 성사도 이룰 수 없다."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당신들이 한 글로벌 비즈니스는 모두 엉터리였을 뿐이었다."라고 혹평을 해대니 그 상황에서 반박할 재간이 어디 있겠는가?

침묵은 금(Gold)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레이' 교수는 바로 강의 탁자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지난밤에 보낸 이메일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하게 수업할 태세로 그야말로 숨소리도 죽여가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휙~' 바람을 일으키듯 '레이' 교수가 몸을 돌려 우리를 쳐다보더니, 칠판에 한 줄의 의문문을 적었다. '침묵은 ? (Silence is ?)' 마케펜을 치켜들더니 '오스틴'에게 와서 쓰라는 시늉을 보였다. '오스틴'은 큰 잔소리 나오기 전에 바로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물음표 옆에 답을 적었다. '침묵은 금이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펜은 '이바타'에게 넘겨졌다. 그 친구는 '예의 (manner)'이다. 라고 썼다. 역시 우리의 생각과는 다름이 없어! 다음 '차우'는 '은(Sliver)'이라고 썼다. 그 뒤를 이어 '셉'은  '다이아몬드(Diamond)'라고 썼다. 거듭하여 해석을 쓰는데 변함없이 침묵은 너무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생각해 낸 것이 '다이아몬드'였는데 '셉'이 쓰고 말았으니, 난 뭐라고 써야 하나? 문학적으로 쓰기로 했다. '신의 목소리 (voice of god)'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 '김'씨 제법이다."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타치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칠판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모두들이 쓴 칠판 내용 모두가 들어가는 큰 원을 그리고 그 옆에 '모두 (all)'이라는 단어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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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IPD 동기 '이바타', 일본 오사카 소재 의료기기회사 마케팅 총책임자로 총각. 목소리가 좋다. 뒤에서 장난치는 이가 '타치로' ]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레이' 교수는 바로 부지런히 몇 개의 단어를 줄줄이 쓰기 시작했다.

 '침묵은 '의견충돌(Disagreement)의 뜻이다.' '침묵은 적대감(Hostility)의 표현이다.' '침묵은 싫어한다. (Dislike)는 뜻이다.' '침묵은 무례하다(disrespect)는 뜻이다.' '침묵은 무관심 (disinterest)' '침묵은 불안하다(anxiety)는 의미이다.' '침묵은 두렵다(fear)는 뜻이다.' '침묵은 지루하다(boredom)는 뜻이다.' '침묵은 혼란스럽다(confusion)는 뜻이다.' '침묵은 어리석다(stupidity)는 뜻이다. ... 펜을 벅벅 긁어대며 침묵을 격하시는 것이다. 동양남자들의 미덕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다니.

'레이' 교수는 우리 동양 남자들의 침묵사상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자신이 쓴 '침묵'의 의미에 대한 내용 모두를 담는 큰 원을 그리고는 옆에 빨간 펜으로 이렇게 썼다.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는 (in Global Business).

또 우리는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는 침묵으로 '레이' 교수의 입만 바라고 보고 있었다. '그래도 침묵은 금이다.' 내 맘속에는 이런 반향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레이'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동양 남자들의 '침묵 사상'은 내가 일본에서 영어 강사로 근무할 때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압니다. 알아요. 동양 남자들에게 있어서 '침묵이 금'이라는 것, 동양이라는 특히 한국이나 일본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로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알려고 알려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누면 그 사람의 배경, 학연, 지연 등을 통해서 유추해석되는 수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서로 대화할 필요도 없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글로벌 비즈니스의 세계는 정말 여러분이 생활해왔던 비즈니스 환경과는 너무 다릅니다. 서로의 배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디 출신이고 또 할머니는 어디 출신이고 어디에서 결혼했고 언제 이혼해서 언제 만났고 부모는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공부했고,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이 취미를 줄줄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본인 자신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겠지만, '김' 씨가 책을 썼다는 것을 자신이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이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여러분의 재능이 되었던 기술이 되었던 상품이 되었든 서비스가 되었던 여러분을 상대방에게 잘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해도 못 하는 서비스를 누가 구매하겠습니까?"

의기양양하게 칠판에 '레이' 교수는  우리가 적었던 '금, 이니 '예의'니, '신의 목소리'니, '다이아몬드'니 하는 단어 위에 빨간 펜으로 X를 그리기 시작했다. 완패당하는 순간이다. 그 누구도 반발하지 못할 정도의 힘있는 주장이 계속되었다. "여러분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배우러 왔다면, 침묵을 버리세요. 침묵을 유지하고 싶다면 글로벌 비즈니스에 뛰어들 생각도 하지 마시고, 지금 제가 하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바꾸어야 할 치명적인 결점이자 바꾸어야 할 습관입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하세요. 그것이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방법입니다. 대화는 기회를 만듭니다. 침묵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까 얘기했던 것 그대로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체면이 구겨진다 생각하지 말고,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언제라도 '사소한 대화(small talk)'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높이세요." 그러면서 영어 속담 한 문장을 쓰셨다.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 (the Squeaky wheel gets the Grease)' 오늘도 크게 배웠다.

 이런 강의가 글로벌 비즈니스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이유이구나. 모두는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이는 것 같았지만, 습관처럼 '침묵'이 이어졌다. 가만히 있을 '레이' 교수가 아니다. "떠들란 말입니다. 떠들어요. (Talk, talk, talk,) 작은 대화 (small talk)라도 말입니다. 아셨어요?" 우리는 겁에 질려 "네~!"하면서 큰 소리로 외마디 대답을 했다만, 또 다시 '침묵'에 빠졌고, '레이' 교수는 이것을 빌미 삼아 조용할 때마다 연수를 마치는 순간까지 침묵이 흐르는 그 순간마다. "작은 대화(small talk), 작은 대화(small talk), 작은 대화(small talk)"를 외치며 우리를 자극했다. 오늘도 예외 없이 '한 방' 먹고 나니, 오히려 힘이 날 지경이다.

 학생회관 매점에서 오마하 필수품을 사다.

 열 두 시부터 1시간인 점심때. 학생회관 2층에서 비싼 점심을 챙겨 먹고 학생회관 1층에 있는 책방에 들렸다. 뭐를 팔고 있는가? 우선 매장의 큰 부분을 빨간색 매브릭스(Mavericks 아이스하키팀 황소 마스코트) 티셔츠와 모자가 종류별로 가득 차지하고 있었고, 일반 문구류를 제외하면 건조할 정도로 장식이나 모양 없이 회사원들이나 쓰는 경제적인 물품으로 가득했다. 아기자기한 문구류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학습에 필요한 삼공 홀더와 자동차 성에제거 막대를 샀다. 자동차 성에 제거 막대는 '메리'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며 필수품이라며 권해준 것이다. 그리고 검은색 털모자를 충동구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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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황소 마스코트가 있는 털모자, 이 모자를 쓰고 거울을 보니 너무 우수꽝스러워 보여 사용하지는 않았다.]

저녁 먹으로 홈스테이로 가는 동네 약국에 들러 치약, 음료수 그리고 과자 몇 봉지를 샀다. 뭔가 저녁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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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약국에서 산 치약, 음료수와 과자, 그리고 두통약]

물론 오늘도 홈스테이에서 저녁을 먹고는 도서관으로 되돌아갔다. 동기들에게 분담된 칼럼들을 다 읽고 단어도 찾고 하니 서너 시간은 삽시간에 흘러가고 말았다. 영영사전만을 사용하라는 '에싱거' 교수의 권고에 따르다 보니, 어쭙잖은 영어실력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자정이 되어 홈스테이로 돌아와서는 한국에 보낼 시니어리더 선생님 모두에게 드리는 이메일을 섰다. 자주 뵈었던 분들을 이렇게 원격에서 이메일을 드리니 마음 한구석에 짠하게 다가오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리움이랄까. 이렇게 썼다.

시니어리더 선생님 여러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미국에서 유학 연수 중인 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입니다.
 
서울이 혹한 속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뉴스를 통해서 접했는데
선생님들께서는 감기 드시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그간 전영선 팀장과 김성호 팀장의 이메일을 통해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해 첫 역사 강좌인 궁궐이야기도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포토샵 강좌도 잘 진행된 것으로 소식 듣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또한 책자 발간을 위해서 인터뷰를 진행하시는 중대한 임무에 매진하시는 것과
유어스테이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시기 위한 모임이 진행되는 등
이제는 시니어리더 선생님들이 진정 시니어파트너즈에 있어서 주역이 되고 계신 모습이
먼 타국에서도 잘 느낄 수 있어서 기쁘고 고맙습니다.
 
저의 이곳 생활은 학생으로 돌아간 생활입니다.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언어로 대화하고 숙제하고 책 읽고 문화도 익히고 하느냐고 분주합니다.
이곳에 온 후 제 복장은 넥타이 한 번 매어보지 않은 보통 학생과 같고, 거북이 등 같은 가방을 등에 메고 다니는 볼썽사나운 모습이지만 저에게는 부족한 경영자로서의 소양에 필요한 전반에 걸친 교육을 받고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생활이 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도 이곳 타국의 환경 적응도 잘하고 있고, 혼자서 많은 부분을 해결하다 보니, 그간 제가 참으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별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음에 반성하는 시간도 갖게 되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활기차고 멋지게 시니어리더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해 주심에 감사드리고
변함없는 활동으로 큰 표상이 되시길 부탁하며,
댁내 평안과 모든 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미국 UNO에서

 김형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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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을 발송하고 나니, 새벽 1시 반. 큰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 들었다. TV는 눈폭풍이 몰려오고 있으니 대비하라는 자막과 내일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 명단을 껌벅거리며 하나씩 하나씩 끊임없이 쏟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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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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