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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11] 다섯살짜리 그레고리 생일에 사진사로 초대를 받았다.

by Retireconomist 2011. 1. 17.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기념일(Martin Luther King, Jr. Day), 미국 전역이 휴일.

흑인 해방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의 탄생일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6년부터 연방 공휴일이 되었다. 실제 킹 목사의 탄생일은 1월 15일이지만 미국의회의 표결에 의해 1월 셋째 주 월요일이 공휴일이 되었다. 그러니 1월 17일 월요일이 휴일이 된 것이다. 개인의 탄생일이 전국적으로 휴일이 된 것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 이어 두 번째 일이란다. 마틴 루터 킹은 미국의 침례교회 목사이자 흑인해방운동가로 1968년 암살당하기까지 비폭력주의에 입각한 '공민권 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며, 196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휴일이 직종이나 지역에 따라 결정되는 특이한 미국의 일상에서 극히 제한된 업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휴일이다. 이렇게 국경일로 지정돼 있으니 네브래스카 대학 도서관 역시 문을 굳게 닫아걸어놓은 상태이다.

여유와 향취를 듬뿍 담고 휴일답게 아침을 즐기다

정말로 거의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가며 커피도 향을 즐겨가며 여유 있게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 휴일에 '데이빗'아저씨가 식당으로 내려와서는 전화번호부를 꺼내 들고 열심히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화를 거는 곳마다 전화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어디에 전화를 거는 것일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궁금해졌지만, 급한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되면 말고 정도의 심심해서 전화를 거는 것 같지 않았다. 어디에 전화를 거는 것일까? 부엌 식탁이 좁게 느껴지도록 메모지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 도서관 문 연 곳이 아무 데도 없네." 하시면서 풀썩 소파로 자리를 옮겨서 장탄식하시는 것이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나를 도서관에 쫓아내는가 싶었는데, "이 휴일을 '코니' 아줌마와 함께 지낼 생각을 하니 끔찍해."라는 한탄 섞인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나는 엉뚱한 말로 혼잣말에 답을 했다. "전 오늘 제 방에서 책이나 읽을 텐데요?" 이에 '데이빗' 아저씨는 함께 도서관 찾아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나는 지레 거절하고 말았다.

'데이빗'아저씨의 가장 큰 취미는 '독서'. '코니' 아줌마의 두 번째 취미도 역시 '독서'

"오늘은 나도 혼자가 되고 싶거든 도서관에 가서 조용히 새로 나온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열린 도서관이 없군, 그냥 반즈앤노블(Barnes & Noble) 이나 가야겠어."라고 화답하신다.  '코니'아줌마가 듣지 말아야 할 얘기인 것 같았다. "저는 점심 때나 잠깐 나가 보려구요. 다녀오세요." 뭔가 두 분 사이에 내가 낄 문제가 아니다 싶어서 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홈스테이 거실은 거의 도서관과 흡사할 정도로 책과 책을 읽기 편한 자세로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여러 개 준비되어 있다. 도시가스로 연결된 벽난로를 중심으로 조명과 책들이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는 아늑한 풍경. 특이하게도 이 거실엔 TV가 없다. 1층에 유일한 TV는 싱크대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LCD-TV가 전부.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란다. 오마하에 와서 생활을 하다보니 어떤 건물에 가던지 바닥은 푹신한 카페트가 깔려있고, 설령 복도일지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더라도 그 바닥에 주저 앉아 무슨 일이든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거실을 책읽기 가장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나도 실천해보고 싶은 생긱아 들었다.

아무튼 '데이빗'아저씨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서로 마주칠 일도 없었고, 홈스테이는 내가 방 안을 서성일때마다 삐걱거리는 방바닥의 나무판자 소리이외는 정적상태 그대로 였다.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책읽고 숙제하고 저녁 초대까지 기다리다.

며칠 전 하교길에 '아시안 마켓(Asian Market)'에서 '코니' 아줌마를 대신해서 저녁 요리를 해주겠다고 벼르던 날인데, 어제 저녁 느닷없는 조카손자의 생일 초대로 나의 생애 첫 요리 계획은 무산되었다. 난 평생에 한 번도 요리해 본 적이 없는 그런 시대에 뒤떨어진 남자임에 분명했다. 준비한 음식 재료는 즉석밥 다섯 개와  캔에 든 고추장, 캔에 든 고추참치, 그리고 병에 든 김치, 그리고 라면 한 상자, 메뉴는 '김치 볶음밥과 한국식 라면' 이었는데, 기약없이 미루어지고 말았다.

나흘 동안 수업을 받았지만 그리 녹록치 않은 분량에다가 모두다 영어이니 공부를 안하고서는 내일 수업이 두렵기만 할 것이다. 거기에 만날 친구도 없으니 그저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그야말로 국제전문가개발과정(IPD) 학생으로 공부에 몰입했다.

'사진찍는 기술'로 미국인 가정의 생일날을 생생하게 기록하다.

전날 실내 정원에 따라 가서 찍은 사진을 카메라의 모니터를 통해서 확인한 '코니' 아줌마와 '데이빗' 아저씨의 사진이 그 분들에게 맘에 든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한 동양인이니지만, 조카 손자의 생일에 참석하겠다고 승락을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저녁 다섯시 반쯤 되어서 '데이빗' 아저씨가 앞장서고, '코니' 아줌마와 내가 뒤따라 나섰다. 나는 충전 10%%의 카메라에 30mm 렌즈와 짝을 맞추어 준비했다. 아무래도 식당이면 실내이고 다른 손님들도 계실테니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이 실례가 될 듯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 생일의 주인공 이름은 그레고리 (Gregory), 다섯 살이란다. 두 형제 중 동생으로 형은 여덟살 이름은 조나단 (Johnadhan).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레고리'라는 이름이 의미를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그냥 주변에 없는 이름을 많이 짓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제 초대를 받고 '그레고리'라는 이름의 어원을 찾아 보았다. 어원은 라틴어이고 뜻은 '주위 깊은, 사려깊은, 방심하지 않는 등의 뜻으로 남자에게 쓰이는 이름이고, 고대 어원 연구에서는 '무리'와 '집단'의 접두사가 붙어서 양떼를 몰고 다니는 사람 또는 지도자 즉, 교황과 같이 목자를 이끄는 사람 등의 뜻이 있다고 설명을 드렸다.

덧붙여 우리네 작명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니, '데이빗' 아저씨와 '코니' 아줌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그렇게 복잡하게 이름을 짓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신기하다."며 기회가 되면 우리 가족의 어원과 이름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셨다. 14년 동안 홈스테이를 운영하면서 외국인 친구들이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전달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레고리 이외에 다른 이들의 이름의 어원을 묻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가던 길에 차를 멈추고 '데이빗' 아저씨가 생일 카드를 사는 중에 나는 '10색 색연필'을 선물로 준비했다.

5살 꼬마 생일에 10여명의 여러 가족이 동네 피자집으로 모두 모였다.

미국인의 생일에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다. 피자가게 이름은 거창하게도 '대부의 피자 (Godfather's Pizza, 2117 S 67th St, Omaha, NE 68106). 내가 '코니' 아줌마의 뒤꽁무니에 어색하게 식당에 들어서자, 모두들 나를 쳐다보며 대화를 멈추었다. 바로 '데이빗' 아저씨가 나를 소개시켜 주시는 것이다.  

"헨리, 이 친구 우리집에 머물고 있는 홈스테이 가족이야, 사진을 잘 찍어서 모시고 왔지, 좋은 기회이니 사진들 많이 찍으라고!" 하시면서, 나는 전체 앉아서 기다리는 '그레고리'의 손님들을 보았다. 돌잔치도 아닌 어린아이 생일에 이렇게 많은 친인척이 참석할 줄 몰랐다. 새로운 미국 문화를 접하는 또 다른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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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그레고리'에게 환심을 쓰는 장면이 '데이빗' 아저씨의 촬영에 걸려들고 말았다.]

오늘의 주인공 '그레고리' 녀석과 친해져야 저녁 시간이 그나마 잘 지나갈텐데. 먼저 시선을 자꾸 돌리는 녀석을 겨우 고정시켜놓고 얼굴을 크게 한 방 찍어서 보여주었다. 녀석의 표정이 바뀌면서 금새 친해 질 수 있었다.

다행히 녀석은 참으로 밝고 다양한 표정으로 사진사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어린 아이의 생일에서 미국 중산층의 생일 문화를 충실히 엿볼 수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생일 절차. 식탁 하나를 골라 그곳에 모두 가져온 선물을 모아 놓았다. 이때 특이한 것은 생일의 주인공인 '그레고리'는 근처도 가질 않는 것이다. 모두들 도착한 것이 확인되니, 몇 몇 남정네들이 가족들이 먹고 싶은 피자이름을 듣도서는 피자 주문하는 카운터에 줄을 섰다. 줄을 섰다는 것이다. 물론 먼저 가족인데도 의자를 치거나 몸이 닿으면 "미안해요", "실례합니다."를 연발하면서. 가족끼리인데도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사뭇 우리와 많이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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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수염난 아저씨를 표현하는 몸짓. 이제 나이가 먹을만큼 먹었고, '나는 남자다'라는 뜻이라네요]

피자를 주문하는 이들은 한 판, 두 판을 시키면서 각자 피자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물론 음료수 값까지 가족별로 지불을 한다. 그리고 피자 기다리기. 음료수를 마시면서 지난 얘기들을 꽃피우다가 피자가 나오는 일순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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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피자 먹는 모습을 찍어달라는 '그레고리의 할아버지', '데이빗' 아저씨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식탁 위에 주문한 피자를 늘어놓고 원하는 것을 접시에 한 조각씩 짤라서 자리에 앉아서 식사 시작. 먹는 모습은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가 부르도록 피자먹고 나니 얼추 식탁에 남은 피자는 몇 조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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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생일카드를 열어보는 '그레고리'와 왼쪽에는 '그레고리' 엄마, 오른쪽에는 눈빛 강렬한 형 '조나단']

그 다음 그레고리가 기다리던 생일선물 열어보기 순서. 옆에서 '그레고리'엄마가 엄격하게 통제한다. 아이도 엄마의 통제에 따르면서 하나씩 선물을 풀어본다. 열어본 선물이 무엇인지 녀석은 설명하고 옆에서 엄마는 카드를 열어서 읽지 못하는 아들을 대신해서 큰소리로 카드 내용을 읽는다. 아이는 선물을 높이 치켜들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분위기는 크게 고조된다. 물론 작은 선물, 심지어는 $1짜리 초코릿 하나에도 환호성을 내면서 반가워했습니다. 녀석이 가장 반긴 선물은 의외로 파란색의 샤워 가운. 생일잔치가 끝나도록 이 옷을 입고 피자가게 이곳 저곳을 뛰어 다녔다.

Omaha_09_57_8128[사진설명: 파자마를 입은 '그레고리']

선물 증정이 끝난 다음, 녀석은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찾아가 뜨겁게 안아주는 인사를 했다. 녀석이 나를 크게 안는 순간, 나에게도 아이들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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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옛날 친할머니에게 안기는 장면, 사진 맨 오른쪽이 현재의 친할머니. 알쏭달쏭 가족관계]

다음 순서로는 '데이빗' 엄마가 집에서 만든 케익에 초 다섯개를 꼽고는 '생일축하' 노래를 온 가족이 함께 부르고, 생일 촛불을 끄는 것. 마지막 순서는 '데이빗' 엄마가 준비한 케익을 나누어 먹는 순서. 이곳 오마하의 전통인지,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방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아이 생일치고는 격식있고 정중했다. 특히나 다섯살짜리 사내아이는 천방지축이면서도 선물에 대한 의젓한 태도가 놀랍기까지 했다.


[동영상: 선물을 공개하는 장면과 생일축하 노래 부르는 장면을 잠깐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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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그레고리'의 가족사진, 현재 아빠는 없다. 아빠처럼 보이는 이가 곧 결혼할 '그레고리'의 엄마 약혼자]

집으로 돌아오니 서울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가득했다. 

흡뻑 찍은 사진을 새벽까지 편집해서 모두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대학 입학 준비에 한창인 동찬이, 대학 원서는 다 넣었는지? 방학중에도 학교에 나가는 동은이. 물론 할머니와 아내가 챙기겠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할 몫이 있는데, 아내에게 일괄 위임하고 와서는 전화도 자주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해야 할 내가 맡은 과제가 있다는 것을 직시하면, 이런 감상적인 상황에 빠질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또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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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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