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등교. 그런데 오늘 아침 아침에 인터넷 접속을 시도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토스트를 데울 시간이 없어 식은 ‘커피’만 한 모금 마시고 학교로 나섰다. 1월 14일 금요일. 다섯째 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끄러지듯 학교에 갈 수 있다.
[사진설명 : 다섯 그루의 나무에 가려진 건물이 애쉬빌딩 (ASH), 반대편에 교직원 주차장이 있다.]
금요일 수업은 8시부터 10시까지가 '켓 레이' 교수가 진행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Global Business Communications)'과 10시부터 '메리 팻' 교수가 진행하는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프랙티스(Business Management Practices)' 네 시간만 있을 뿐, 오후에는 1시부터는 '지역사회 연계 활동(Community Engagement Events)' 등 그야말로 지역사회를 방문하거나 학습과 연계된 세미나 참석 등의 비정기적 활동이 진행된다.
아직 주차권이 나오지 않아서 직원용 주차장에 임시주차권으로 주차했다. 자동차 앞면에 붙여놓은 베이지색 방문자 주차권을 오늘 교체할 계획이 세워진 날. 오늘은 주차권을 사고, 가족과 전화 통화하고, 사우스 캠퍼스에서 특강 듣고, 오마하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 집에 다녀오는 것이 예정된 일정이다. 아, 차에 기름도 넣어야지.
10분 정도 주차장에서 강의실로 향하는 길에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는 아내. 우직하게 변함없는 신뢰로 나를 믿는 그녀는, "당신, 잘 할 것으로 믿어요. "짧은 견해로 군더더기 없이 아들 동찬 이에게 전화기를 넘긴다.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할머니 바꿔 드릴게요. 어머니께서는 "아들~! 춥지 않아? 페이스북에서 보니 꽤 추운 것 같던데. 여기는 별일 없어. 국제 전화니 돈 많이 나와. 끊어…!" 하신다. '울컥'할 것 같아 한 박자 쉬고 다른 말을 준비하는 사이에 "탈칵" 하는 소리로 전화가 끊겼다. 이렇게 첫 서울 가족과의 통화는 간단 생사 정보 교환 수준에서 끝이 났다.
[사진설명 : 씨팩스(CPACS) 건물 앞에서 본 시계탑. 이른 아침이라 가로등에 불이 켜져있다.]
이곳 생활 중에서 크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매일 느끼는 음식의 엄청난 크기는 늘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보통 크기를 주문하면, 우리 집 다섯 가족이 먹을 수 있는 크기로 나오는 것 같다. 식사량이 적은 나에게 어린이 크기가 제일 적당하다 싶을 정도로 식사량의 부조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음식을 남길 때마다, '종이상자(Box)'에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들 정도이다.
어제저녁에 동기들과 마셨던 커피 역시 나에겐 페밀리 크기. 어제 '스쿠터'에서 산 커피도 절반도 마시지 못한 채 차에 두고 내렸다가, 아침 강의실에 가면서 마저 마시기로 했다. 강의실 사이에 작은 휴식 공간인 라운지(Lounge)가 있다. 크기는 꼭 우리네 아파트 경비실의 네 배 정도의 크기에 의자 8~9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빼곡히 음료수 자동판매기가 세워져 있고, 귀퉁이에는 전자레인지가 자리 잡고 있다. 어제 마시다 만 얼음장 같은 커피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을 단련을 시켰다. 요란히 소리 뒤에 거의 끓을 듯 뜨겁게 더워진 새것 같은 아침 커피가 준비되었다. 미행한 사람도 없으니, 김형래가 공부하러 가더니 궁색해져서 식은 커피를 데워마신다고 놀리진 않겠지. 빈속을 뜨거운 커피로 채워가면서 강의실에 들어섰다. 당연히 뜨거운 커피 때문에 이마에 주름을 잡고 호호 불면서 말이다.
웬일인지 '레이' 교수가 먼저 강의 시작 10분 전인데 강의실에 와 계셨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내 귀를 의심하는 소리로 나에게 소리치듯 외쳤다. "나가세요! (Get out)" 반말에 가까웠지만, 이유를 알 수가 있나? 이제 겨우 나흘째 출석 중인 가장 굼뜨고 나이 든 아저씨인데.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고 강의실에 들어선다고 이렇게 내쫓을 수 있는가?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대며 밖으로 문을 밀치고 나왔다. 급하게 나오다 보니 한 손에 든 종이컵이 심하게 흔들리며 내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쏟아붓고 말았다. '아 뜨거라.' 이런 난감한 지경이 있을 수가 있다. 이제는 커피가 얼굴뿐만 아니라 손목 언저리까지 튀어서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강의실에 들어서면서 놀란 가슴에 나도 모르게 크게 한 모금 입에 물었고, 입속 커피 역시 뜨거운 성질을 입속에 토해내어 입천장이 돌아가며 허옇게 벗겨지고 말았다. 겨우 찬물로 세수하고 입가심하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한 후에 다시 강의실 앞으로 갔다.
[사진설명 : IPD 전용 강의실 CPACS 124A. 전면에는 전자칠판이 오른쪽에는 화이트보드가 있다.]
'다치로'가 어디를 그리 황급하게 다녀오느냐며 나를 반갑게 맞는다. 그 역시 쫓겨났다는 것이다.
"레이 교수님이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 다치로는 정말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이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상하네! ' 확신에 찬 답으로 위안을 삼았다. 나보다 먼저 온 '다치로'가 먼저 '레이' 교수의 말 폭탄을 맞았나 보다. 혼자라면 외로울 텐데, 그나마 이 친구가 같은 봉변을 당한 것을 보니, '다치로'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다소 위로가 되었다.
씨팩스 (CPACS) 124A. 지금 이 강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강의실 후면 전체가 커다란 유리창으로 만들어져 휑하니 밖에서 보이는 안의 풍경을 다시 살폈다. '다치로'와 나는 강의실을 비켜서서 빠끔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 체중에 두 배가 족히 나갈 정도의 당당한 여장부 '레이' 교수. 양팔을 힘있게 꼬아서 턱 하니 솟은 배 위에 올려놓으시고 성난 기세의 매버릭스(Mavericks, 미국 평야에 사는 야성 들소를 부르는 이름으로, 네브라스카 주립대학 아이스하키팀의 상징동물)처럼 출입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신다.
'다치로'와 나는 강의실 출입문에서 비켜서서 다른 동기들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뒤따라 들어갈 준비를 했다.
다음 타자인 '이바타'가 메신저 백을 안쪽으로 메고 들어서다가 쫓기듯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희생양이 된 '이바타'를 포함해서 우리 셋은 정말 영문을 몰랐다. 여전히 '레이' 교수는 이유없이 씩씩거리면서 학생들을 밖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네 번째 '오스틴'도 다섯 번째 '셉'도 마지막 정시에 도착한 '차우'까지 모두가 쫓겨났다.
용기있는 '셉'이 오른손을 집게손가락으로 머리를 향하더니 수차례 원을 그렸다. '아, 세계 공용의 몸동작이다. 맞아, 공감한다. '우리 여섯 동기는 똑같이 오른손을 들고 집게손가락으로 머리를 향해 원을 함께 그렸다. '야, 이거 미국에 교육받으러 왔다가 해외토픽에 나오는 것 아냐? '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 강의시작 시각이 되었는데 강의실 진입을 하지 않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 아니라는 생각의 일치를 보았고, 그에 맞추어 일제히 강의실에 들어가자는 수신호를 나누었다.
[사진설명 : 124A 강의실에서 복도를 향해 본 모습. 뒷 쪽 강의실의 학생들이 모두 보인다. 훤하게 열린 강의실]
가장 젊은 '오스틴'을 앞장세워 여섯 동기 모두는 우르르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각자 편한 데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깐의 시간 동안 서로 눈치 보기가 시작될 무렵, '레이' 교수는 모든 학생에게 보였던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 나가세요. (All of you, get out)"
이번에는 목소리도 한층 커졌고, 두 손을 펴서 나가라는 확실한 모양을 보여주었다.
우리 여섯은 화들짝 놀라며 광우병에 걸린 강아지를 만난 듯 바로 한 덩어리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강의장 밖으로 나서니 '셉'은 옆구리를 움켜쥐고 있다. 급하게 나오다가 문고리에 옆구리가 걸렸던 모양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 강의실 밖으로 내몰린 우리는 서로의 얼굴만을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아, 이거 뭐야~!'
잠시 뒤 '레이' 교수가 밖으로 나온다. 우리는 모두 한두 발자국씩 뒤로 물러섰다. 밖으로 나와서는 "안 들어오고 뭐 해! (Hey, Come in!)" 손짓까지 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정말 알 수가 없다. ' 셋을 세고 한꺼번에 안으로 모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Good mor~ning)" 하면서, 동시에 전자칠판 앞에 서 있는 '레이' 교수의 눈치를 보았다.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다. 여지없이 우리를 밖으로 내 몰아친다. "모두 다 나가세요. 단, '차우'씨만 남아있고!" 차우는 누런 이를 활짝 내놓고 넋이 나간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에게만 남아있으리니. 밖으로 나와서 보니, '차우'에게 뭔가 비밀이 있나 보다.
[사진설명 : 베트남 호찌민시의 최고 엔지니어 관리자인 '차우'씨. 이 정도로 처음 만나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해야!]
'차우'씨는 베트남에서 유학 온 친구로, IPD 프로그램을 지난번에 이어서 두 번째 수강하는 IPD 프로그램의 팬. 그에게 차별 대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면 지난번 강의 때 뭔가 달리 배운 것이 있는가 싶었다. 우린 강의실 밖에서 강의실 안에 있는 '차우'와 정보를 교환할 수 없다. 잠시 뒤, '차우'가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우리를 안에 들어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레이' 교수가 듣지 못하도록 비법을 작은 소리로 전해준다. "크게 웃으면서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하면서 들어와."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웃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바타'가 성공하기까지 거의 한 시간을 다 채우도록 우리는 모두 '문을 열고 처음 사람을 대하는 비즈니스맨의 가장 모범이 된 모습'을 연습했다. 우리네 속담도 있지 않는가? '웃는 얼굴에 ~'
"'비즈니스맨은 항상 웃으면서 상대방을 대하라.' 글로벌 비즈니스의 시작이자 끝이다." 너무도 잊히지 않는 강의가 되었다. 이후 연수를 마칠 때까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웃지 않고 큰 소리로 인사하지 않을 때마다 이렇게 내쫓기는 수모를 여러 차례 겪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모두 반성하고 고치려는 모습을 하게 되었고, 맵카드에 찍힌 나의 '큰 웃음 (Big Smile)' 사진처럼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레이' 교수의 이런 식의 파격 강의는 긍정적인 (Positive) 비즈니스맨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 우리를 놀라게 했다.
뜨거운 커피에 입천장이 다 벗겨져서 아픔은 남았지만, 배고픔을 어찌 참을 수 있으랴. 오늘 점심은 학생회관에서 닭고기 볶음밥과 체리 베리 주스로 마무리했다. 닭고기 볶음밥은 동양계 학생들이 즐겨 먹는 메뉴 중의 하나이지만, 혀가 타는 듯 짠맛은 허기진 배도 받아주질 않아서 절반 밖에 먹질 못했다. 그래도 점심값은 $12.60. 너무 비싸다.
점심을 먹고는 애플리 빌딩으로 가서 학생 주차증을 샀다. 다행스럽게 학교를 떠난 학생이 남겨준 자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가는 학생이 있어야 주차장에 여분이 생기는 묘한 상황. $65를 내란다. 두 달만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무조건 6개월이 최소란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 기한은 8월 15일까지. 아깝다. 아깝다. 정말 아깝다.
[사진 설명 : 애플리 빌딩에서 주차권을 구입함. 학생용은 빨간색. 기한은 8월15일까지. $65]
이번 금요일 오후는 '남 캠퍼스(South Campus)'에서 오마하 출신의 기업인 초청 세미나가 있다. 선택사항이지만 빼먹고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학교 버스(School Bus)'를 타고 매맬홀(Mammel Hall)을 찾았다. 로비에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초상화가 커다랗게 걸려 있다. 마침 오늘 저녁 식사는 오마하 스테이크로 동기들과 함께하기로 했는데.
[동영상 설명 : 맆슐츠 교수(Dr. Lipschultz)가 소개를 하고 풀버(Pulver) 사장의 강연이 이어진다.]
강의가 시작되자 빠른 속도로 하는 내용을 미처 따라가지 못해 한둘씩 쓰러져 잠이 들고 만다. 재학생만이 말똥말똥.
강의를 마치고 동기 전체가 저녁 회식을 하기로 한 고랏츠 식당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셀프 주유소(Self Gas Station)에서 기름을 채워 넣었다. 셀프주차를 어찌할 바 몰라. 주유소 입구에서 남들이 주유하는 것을 10분쯤 관찰하다가 조심스럽게 주유를 마쳤다. 실버(Silver)급 휘발유 6.579갤런에 $19.66(Gl 6.579 $19.66 Buckys Express 5001 Dodge St. Dinner) 20불어치만 시험 삼아 넣어 보았다. 6.579갤런을 환산하면 약 27리터. 27리터에 2만 2천 원이면 1리터에 약 800원 수준이다. 한국의 반값 수준이다.
[사진설명 : 고랏츠의 티본 스테이크 (T-Bone Steak) 나의 손바닥으로 딱 두 배 크기이다. 왠쪽은 허시 브라운][사진설명 : 왼쪽부터 국적이 한국, 일본,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일본, 한국. 여섯 명의 동기들, 고랏츠 식당에서]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이 자주 가는 식당에서 동기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이름은 고랏츠(Gorat's) 주소는 4917 Center St. Omaha, NE 주요 메뉴는 T-Bone 스테이크. 가격이 $27.95 비싸긴 하지만 굉장한 크기에 모두 놀란다. 오늘 밥값만 거의 40$이 나간 셈이다. 고랏츠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구글 지도 서비스에서 찾아갈 곳을 주소 확인하고 나서 수첩에 적어 놓고 길에 적혀 있는 이정표를 보고 한 블록씩 찾아가는 것이다. 보채는 뒤의 차량도 없고, 급할 일도 없고. 그저 '시속 50km이면 충분히 적응 가능한 곳이 오마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마치고 귀가하는 도서관을 찾질 않았다. 금요일은 도서관이 오전 7에 문을 열고, 오후 5시에 문을 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요일은 오전 9시에 열고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5시 이후가 걱정된다.
오늘도 무사히 지낼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황당하게 '레이' 교수가 강의실 밖으로 쫓아내지만 않았더라도 조용했을 텐데 여지없이 진죽처럼 녹아버린 하루가 되었다. 내일은 토요일 통학버스를 타고 아이스하키장으로 간다. 무슨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까?
홈스테이에 들어서니 친구로부터 내 홈페이지(www.henrykim.kr) 접속이 안된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에 있는 내 홈페이지 호스팅 회사로 전화를 걸어 오랜 시간 승강이를 벌였지만 뚜렷한 답도 얻지 못하고, 지쳐서 TV를 틀어놓은 채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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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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