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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05] 자동차 배터리가 죽고, 노트북 모니터 녹여먹고...

by Retireconomist 2011. 1. 12.

미국에 도착한 지 나흘째. 1월 12일 수요일. 어제 시보레 코발트 애마도 생겼고 하니, 오늘부터 나는 완전히 독립해서 혼자 학교에 간다.

여섯 시에 알람 소리에 맞추어 일어났다. 옆 방에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홈스테이 친구 바들(Badr)과 함께 한 욕실을 쓰는 관계로, 욕실 문짝 아래에 1cm 정도 벌어진 틈의 불빛이 있는지 여부를 통해서 사용 여부를 확인한다. 바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편안하게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이른 아침에 등교를 준비하느냐고 방을 오가다 보면 바닥 재질이 나무 판이다 보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이쪽을 밟으면 '삐걱' 저쪽을 밟으면 '버걱'

 등교준비를 마치고 고양이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니, 데이빗 아저씨는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TV를 켜놓고 책을 읽고 계셨다. "헨리 학교 잘 갔다 올 수 있겠어?" 어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 좌회전을 찾지 못해서 길거리에서 한 시간 반을 헤맨 것을 두고 걱정하는 모양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수업이 끝나면 올 테니 해가 지지 않은 밝은 때이고, 어제와는 달리 해피 할로우 대로를 따라 돌아오려고요."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 어제 하굣길을 피하고자 구글맵 (maps.google.com)에 접속해서 서로 다른 등하굣길을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토스트 두 쪽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7시 10분에 홈스테이를 나섰다. 데이빗 아저씨가 내 등을 향해 큰 소리로 격려의 인사를 보냈다. "오늘 행운을 빌어!" 옷을 단단히 챙겨입었는데도 집을 나서니 찬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길가에 세워놓은 자동차는 사방 유리에 성애가 잔뜩 달라붙었다. 어떻게 성애를 긁어 내일까? 궁리를 해보고 차 안에 도구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아도 적당한 것이 없었다. 시동을 걸어 열기로 녹이는 수밖에 없는데, 뉴스를 보질 않아 기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없는 추위가 갑자기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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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홈스테이 앞길에 주차된 시보레 코발트, 바로 나의 애마]

다행히 배낭에 있던 30cm 자를 꺼내 들고 겨우 앞유리에 세 뼘 크기의 둥그런 원 모양으로 성애를 긁어내고는 학교로 향했다. 추위 때문인지 차의 반응은 딱딱했다. 쿠션도 그렇고 핸들 조작할 때 느낌도 그렇고 더구나 두꺼운 장갑까지 끼고 학교에 도착할 즈음이 되니 귀가 시려 왔다. 차량에 히터를 틀었음에도 열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둔탁하게 껴입은 옷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어제 눈도장을 찍어 놓았던 애쉬 빌딩 앞에 학생 주차장에 들어섰다. 꽉 찼다. 다시 차를 에플리 빌딩 앞으로 몰았다. 역시 자리가 없었다. 도서관 옆 광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미 어디 곤 주차공간이 없다. 시계를 보았다. 7시 40분. 강의 시작은 8시.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평생 지각과는 담을 쌓고 있던 내가 이곳에서 지각이라도 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더구나 에드퀸 주임교수가 회사에 '김형래 지각했다.'라고 보고라도 하면 얼마나 망신스런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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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우측에 보이는 트럭을 따라 좌회전하면 네브래스카 주립대학. 가운데 보이는 붉은색 건물이 애플리 빌딩]

학생회관 뒤쪽에 슬쩍 차를 몰고 갔다. 주차 상황으로 차 엉덩이를 들이미는 순간, 대학 직원이 나오면서 손사래를 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한국인 체면을 버릴 수도 없고! 에이고 모르겠다. 교무실이 있는 애쉬 빌딩으로 갔다. 교수와 교직원 주차공간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아무래도 에드퀸 주임교수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심사로. 차를 세워놓고 문을 닫는 둥 마는 둥 강의장으로 뛰었다. 시간은 7시 50분. 숨도 쉬지 않고 바람처럼 달린 끝에 1km 정도 떨어진 강의실까지 8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의장에 들어섰을 때, 뛰어서 오른 열기와 난방 열기가 겹쳐서 상상이 안갈 정도의 땀범벅이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땀에 젖어 강의장에 들어섰는지 물어보질 않는 동기들이 고맙기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일진이 심상치 않았다.

오늘 오후에는 오마하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내놓으라는 거물인 경영학과 토마스 마틴(Thomas Martin) 교수가 '지도자 대 관리자'라는 주제의 특강이 있었다.  "지도자와 관리자 중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지도자와 관리자 중 어떤 인물이 되기 쉬운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가며 한 눈 팔새없이 질문과 답변에 대한 반문을 거듭하며 공격적으로 수업을 이끌었다. 강의 중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셉'이 수업내용과는 직접 관련없는 요청으로 드렸다. "우리는 영어를 제2 외국어로 하는 사람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 빨라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좀 천천히 설명해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평소에 과격해서 껄끄러웠는데 이럴때 보니 '셉'과 내 맘과 어쩌면 똑 같은지? 바로 맞받아치는 마틴 교수의 답변은 아주 단호했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강의실 밖으로 나가셔도 됩니다. 저에게는 경영학 강의를 의뢰 받았을 뿐이지,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함께 수업을 참관하던 메리 팻 교수가 평정에 나섰다. "마틴 교수님, 계속하시지요." 일순간 강의 분위기는 더욱 냉정해졌다. 눈에 불꽃을 키우며 경영학에서 큰 족적을 만들고 있는 그의 강의에 깊이 빠지기 위해서였다. 120분간 쉼없이 강의를 이끈 마틴 교수는 강의 말미에 요점으로 관리자와 지도자를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셨다. '좋은 관리자는 일을 옳게하는 사람 (Does things right)' '훌륭한 지도자는 옳은 일은 하는 사람 (Does the right thing)' 네 개 나라에서 온 여섯 명의 IPD 동기들은 점점 이 과정의 소중함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강의가 끝나고 에드퀸 주임교수를 찾아갔다. "주차권을 어떻게 구하지요?" 다른 동기가 자동차로 통학을 하면 물어보겠지만, 유학생 중 나만 자동차가 있는 관계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주임교수는 이제 신입생도 아니니 당신이 알아보라는 말투로 거칠게 "주차권 문제는 저도 모르고, 이 정도는 김씨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반문하듯 귀찮은 듯 나에게 독립심을 가져보라는 주문의 답을 주었다. 일순간 내 얼굴은 홍당무로 변했고, 미안하다는 말로 황급히 사무실을 나왔다. '알았습니다. 다신 제가 그런 애들 같은 부탁 안 드리겠습니다.'

'어디에서 주차권을 팔까? 학생회관으로 갔다. 학생들의 주차 문제는 이곳에서 해결되지 않을까? 문구점과 책방에 함께 있는 계산대로 갔다. 명찰을 힐끔 보니 '메리'라고 적힌 이름의 할머니가 한가히 근무 중이시다. "주차권을 어디에서 살 수 있지요?" 조심스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여쭈었다. "네 이름이 뭐냐? 그리고 어디서 왔어? 뭘 가르치니?" "제 이름은 헨리고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고, 배우러 왔어요."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면서 "헨리, 당신이 그 나이에 뭘 배우려고? 나와 비슷한 나이에!" 아니 무슨 이런 도전을 받나? 할머니와 싸울 수도 없고, 다행히 이내 정색을 하면서 "농담 한번 해 봤어. 옆에 있는 에플리 빌딩 1층에 가보라."라며 친절한 안내를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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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오마하 네브래스카 주립대학 학생회관 내부, 거실 같은 아늑한 환경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에플리 빌딩의 주차권 판매 창구는 한산했다. 학생 아르바이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이번 주 금요일이 되어야 주차공간이 나오니 그때까지 차를 가져오지 않거나, 주임교수 사인을 받으면 1주일은 무료 주차가 가능한 임시주차권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아침에 등하교 독립을 선언하고 나왔는데, 금요일까지 데이빗 아저씨께 다시 차량지원을 부탁할 수도 없고. 임시주차권을 받아서 다시 에드퀸 주임교수 방으로 찾아갔다. 책상에서 다른 업무 중인 아무 말 없이 임시주차권을 들이밀었다. 미안했는지 바로 사인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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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임시주차권. 1월 11일부터 1월 14일까지로 되어 있고, 에드퀸 주임교수의 사인과 IPD 클래스가 적혀있다.]

임시주차권을 받아들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가 주차된 직원용 주차장으로 갔다. 시보레 코발트 나의 애마는 아무런 상처나 딱지를 받지 않고 주차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배낭을 뒷자석에 던지듯 올려놓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부르릉"하는 시동 소리를 내야 하는데 소리가 나질 않는다. 

이유가 뭘까? 수십 차례  키를 돌려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배터리 방전!' 가만 생각해보니 아침에 문을 완전히 잠그지 않고 강의장으로 달려갈 때, 뒷좌석에서 배낭을 가져가면서 문을 꽉 닫지 않은 모양이다. 조금 전 배낭을 넣으려 뒷문을 열었을 때 잠긴 느낌이 없었던 것이 그것을 설명하는구나.

차에 내려서 보닛을 열어보았다.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마는 내부 엔진룸은 깨끗했고, 배터리도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뭐하나? 시동이 걸려야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오가는 사람이 없다. 모두 자동차로 이동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날씨마저 추우니 걸어 다니는 사람을 전혀 못 보는 곳도 있을 정도이니 사람이 없다고 이상하게 보일 일도 아니다. 차 밖에서 서성거릴 일도 아니고, 다시 차 안에 들어가서 학교생활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자동차 배터리 방전되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곳이 어디 있는지?

학교생활 자료에는 이발소가 어디 있는지도 나와 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런데 자동차 배터리 방전을 해결해 주는 곳은 없었다. 데이빗 아저씨에게 전화하면 바로 학교로 찾아와 해결해 주실 텐데,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당시에는 그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끝에 다시 '학교 경찰'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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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교직원과 교수 주차장 중 하나, 이곳 사람들은 세울 만한 자리가 있어도 주차금이 없으면 차를 안 세운다.]

학교생활 자료를 뒤적이는 가운데 학교 경찰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 경찰이죠? 제 차 배터리가 죽었어요! 살려주실 수 있나요?" 시동 안 걸려 점점 추위가 사방팔방으로 엄습해 오는 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뜻밖에 친절했다. "어디에 계십니까? 5분 안에 도착합니다." 얼마나 반가운 답변인지.

불과 2~3분 만에 학교 경찰이 도착했다. 아주 튼튼하게 생긴 점퍼 선을 꺼내서는 단번에 시동을 걸어주었다. 냉장고처럼 얼어버린 자동차가 소리만으로도 열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시동이 걸린 차에 성애까지 긁어주고는 "또 시동이 죽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건장한 학교 경찰 두 분의 서비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공부이고 뭐고 미국에서 생활한다는 하루하루가 정말로 다이내믹하고 볼만하고 극적이지 않은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었다 말았다. 소설을 쓰자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일상의 모든 일 그 자체도 배움이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그저 잘 대응할 뿐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홈스테이로 돌아가는 하굣길은 문제없이 지름길을 찾아 잘 도착했고, 데이빗 아저씨에게는 묻지 않기 전에는 오늘의 배터리 방전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던 중 끊긴 대화를 잇기 위한 주제가 필요한 시점에 '배터리 방전'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나에겐 비밀이 없어. 부끄럽기 그지없구먼.' 이번에는 코니 아줌마가 한걱정하신다. "당신 당분간 헨리 좀 태워다 주구려. 요즘 바쁜 일도 없잖아요?" 무슨 황당한 대화인가? 그런데 데이빗이 맞장구를 친다. "그래 자동차는 천천히 가지고 다니고, 내가 태워다 줄게." 무마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았다. 좁은 책상에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놓으면 책 한 권 겨우 펴 놓을 공간만이 남는 아주 열악한 학습환경. 어제보다  인터넷이 쉽게 접속이 되었다. 눈이 침침해져 스텐드를 가까이 켜 놓고, 그간 이메일도 확인하고 한국 뉴스도 보고, 유어스테이지 사이트도 보고 하면서 인터넷을 보고 있자니 저녁 식사가 잘 소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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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홈스테이에 준비된 책상과 책꽂이. 미국인 스케일에 맞지 않게 책상이 너무 좁다. ]

그런데 어디선가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솔~ 솔~ 나기 시작한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벌떡 책상에서 일어났다. 불?!!! 방에 있는 유일한 가전제품인 TV를 살펴보니 냄새가 나질 않았다. 문을 열고 문밖 냄새를 맡아보니 이 또한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무슨 조화일까?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노트북 컴퓨터 윗부분 가운데가 녹아내리는 것이다.
Omaha_4_57_7615[사진설명: 노트북 상단, 할로겐 스텐드 가까이 두어서 녹아 버렸음]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스텐드를 끄고 노트북 컴퓨터를 살폈다. 스크린은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잠금장치는 녹아내려 작동이 불가하고 완충작용을 하든 고무받침도 눌어붙어 버렸다. '이만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데이빗 아저씨와 코니 아줌마에겐 귀국 때까지 비밀이다. 만약에 아신다면 내쫓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열악한 학습 환경을 극복할 대안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루하루를 쉽지 않은 유학생활이지만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을 그것도 나 스스로 바닥부터 체험하는 지금이 더없이 소중한 순간들이다.

일찍 잠을 청하려 침대에 누웠지만, 심장 뛰는 '두근두근'하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오늘 잠자리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게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아니면 '오늘도 고난 속에서 살아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맞을까? '내일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주시고 용기 잃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아멘'으로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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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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