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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Publication

[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08] '효자손 보내주세요.'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적(敵)으로 오인되어.

by Retireconomist 2011. 1. 15.

영어로 꿈꾸고 싶다.

'홍수가 났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길을 걷다가 물벼락을 만났다. 물살에 쓸려가면서 길가에 있는 나뭇가지라도 잡으려고 팔을 뻗어 무엇이라도 잡으려 다는 놓치고 나뭇가지를 잡았으나 꺾이고 하면서 흐르는 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힘없이 미주리 강까지 쓸려 갔다. 강물에 얼음덩이까지 합세하고 밀려온다. 얼음덩이에라도 붙잡아야 숨을 쉴 텐데… '어푸, 어푸' 거듭해서 얼음덩이를 놓치고 힘을 잃어간다. 아…'

꿈이다. 홍수 난 물에 쓸려가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빠진 강물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 다행이기도 하지만, 온몸이 물에 빠진 솜처럼 축 처진 생태가 되었다. 2011년 1월 15일, 토요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마하 도착 7일째. 귀국까지 50일 남았다.

차라리 다른 꿈을 꾸고 싶다. 영어로 말하는 꿈을 꾸고 싶다. 오마하에 있는 동안이라도 꿈은 영어로 꾸고 싶다.

토요일 오마하 시내는 유령의 도시처럼 적막하다.

시계를 보니, 시침이 7시에 걸려 있다. 천정에 붙은 선풍기 가운데 등은 바로 내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비추고 있다. 14인치 TV는 밤새 시청자 없이 영화를 보냈나 보다. 24시간 방송이 되니 '치직'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리가 없다. 무게가 10kg이 족히 되는 검은색 '양가죽 코트'를 그냥 입은 채로 잠들었으니 흠뻑 땀에 젖었을 테고 그 땀범벅 때문에 홍수 난 꿈을 꾸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제 홈스테이에 들어서자마자, 서울에 있는 웹호스팅 업체에 전화하고 사이트 접속하고 하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서성이다가 그렇게 잠이 든 것이다.

홈스테이 난방은 박카스 박스 정도의 작은 통로 하나에 온도에 맞추어 열기가 들어온다. 물론 거의 춥지는 않았지만, 어떤 날은 보일러가 고장 나서 열기 공급이 안되면 자다가 일어나서 '양가죽코트를 입고서야 잠이 드는 불편한 날도 있었다. 어제저녁, 홈스테이에 들어설 때 방이 썰렁했다는 느낌이 떠올랐다.

늦기는 했지만, 토요일이니 다행이다. 땀에 푹 담겼던 몸을 말끔히 씻어내고 책상에 앉아 일주일간 공부한 것을 점검했다. 대부분이 강의 소개와 한 두 차례 강의가 진행되었을 뿐인데, 자료만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매일매일 해야 할 과제를 모두 마치지 못했다. 도서관으로 가자. 간단히 결정했다. 느린 인터넷과 씨름하다간 지치기 십상이고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은 홈스테이에서 제공하지 않으니 어쨌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젖은 듯한 '양가죽 코트'는 옷걸이에 걸어두고 출국 전에 '유학용'으로 산 모자 달린 초록색 점퍼를 외투 삼아 입었다. 몸은 한층 가벼웠으나 추울까 걱정도 따랐다. 마침 매주 토요일은 세탁물을 '코니 아줌마'에게 내어 드리는 일. 마침 젖은 내복과 속옷 그리고 일주일 내내 입고 다닌 검은 색 바지와 양말을 주섬주섬 '빨래통'에 넣어서 '세탁방' 앞에 옮겨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매일 '데이빗' 아저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자리는 적막하게 아무도 없었다. '데이빗' 아저씨도 '코니' 아줌마도 토요일 늦잠을 즐기고 계시는가보다. 아침 여덟 시. 주방에 있는 커피메이커에는 식은 커피도 없다. 이참에 나도 여유 있게 오마하의 토요일 아침을 느껴보자는 생각으로 홈스테이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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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눈 녹지 않은 홈스테이 집 앞 도로, 도착한 지 40일이 지나서야 바닥이 아스팔트인 것을 알았다.]

커피점에 들러가자. 대부분의 커피점은 자리도 없이 차를 타고 주문을 하고는 쪽문으로 받아들고 떠나는 '드라이브인(Drive-in)'이 대부분이다. 72번가로 차를 몰았다. 금요일 저녁 혼잡했던 상황과는 달리 아주 조용하게 자동차들도 드문드문 지나간다. 늘 그렇듯이 길가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은 전혀 없다. 자동차만이 움직이는 유령도시와 다름없다. 별다방에서 갈색 종이 봉지에 종일 마실 크기의 커피와 컵 케이크 그리고 블랙베리 스콘 두 개를 사서 담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을 들어서는 순간이 제일 행복했습니다.

학생 주차권을 사서 처음으로 주차하는 날. 토요일 아침 아홉 시,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홉 시에 도서관이 열리는데, 아홉 시 정각 도서관 옆 주차장은 겨우 한 자리만 남아있었다.  도서관 주차장은 만원이다. 책과 자료 거리에 노트북 컴퓨터까지 들어 있는 배낭은 등짐 지듯 묵직하게 몸에 달라붙었다. 남들이 쉴 시간에 나는 한 걸음이라도 앞서기보다는 뒤늦은 두 걸음을 보충하겠다는 일념이 기분 좋았다.

도서관에 있는 바깥쪽 여섯 개 문 중에서 가장 오른쪽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순간, 카펫이 깔렸고 적당하게 맞춰진 온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감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오마하에서 공부하는 유학기간 내내, 나는 '도서관에서 제일 행복하다.'라는 변하지 않는 강력한 느낌 때문에, 아내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장래를 상의한 적도 있다. 주립대학이라 오마하 시민까지 도서관을 찾았다. 남녀 시니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축복 같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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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도서관에 들어서면 우측에 컴퓨터로 열람할 수 있는 수 십개의 좌석이 있다. 시민들도 많이 찾는다.]

토요일 도서관에서 복습하는 나는 정말 안정적이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구의 전화나 이메일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내가 알고 있던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씩 깨우쳐가는 것이 어쩌면 평생 처음인지도 모른다는 만족감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정말로 감사할 시간이다.

효자손 좀 보내주세요. 저에겐 정말 절실한 품목입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은 지쳐갈 무렵 기지개를 켜고 잠시 몸을 움직여 보기로 했다. 꼼짝없이 몇 시간을 한자리에서 앉아있으니 풀어주는 것은 나의 몸에 대한 예의. 일어서서 2층 열람실로 지하 열람실로 눈치를 보아가며 어떤 모양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몸을 준비운동하듯 이쪽저쪽으로 틀어가며 짧은 산책을 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등 한가운데가 가렵기 시작했다. 가렵다. 참을 수 없다. 참고 싶은데 참을 수 없다.

손을 뒤로 재껴서 긁어보았다. 책상에 놓여 있는 볼펜을 등으로 찔러 넣어 보았다. 어림도 없는 길이이다. 30cm 자를 배낭에서 찾아보았다. 닿을 듯 말듯 가려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하는데 도무지 공략이 되질 않는다. 처음 가려웠던 그 부분이 시간이 갈수록 성을 내며 가려움을 더하며 나를 공격해왔다. 맞다, 나를 공격해 오는 것이다. 등을 의자 등받이에 비벼 보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의자 등받이에 장갑을 걸쳐놓고 등을 좌우로 비벼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갑이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아 남방 윗단추 두어 개를 풀고 등 쪽으로 밀어 넣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밀착에서 좌우로 비벼보았다. 시원해야 하는데, 뭔가 아쉬움이 더 남는 기분이다. 좀 심하게 비벼 보았다.

그러다 이상한 시선에 고개를 들어 앞쪽에 시선을 고정하니… '뜨아… !' 도서관에 있는 가시권 학생이 모두 나를 향해서 시선을 꽂아두는 것 아닌가? 그럴 만도 하다. 등받이에 등을 붙여두고 그렇게 삐걱대고 있으니, 도대체 소음과 진동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아이고, 부끄러워라. 도서관 밖으로 뛰쳐나왔다. 도서관 밖에 세워진 기둥이 등을 대고 비벼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화장실 문고리. 아무도 안보는 조용한 공간이고 문고리가 있으니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것 같았다. 서둘러 화장실 뛰어들어가 문고리에 등을 비벼보았으나 그 '시원한 맛'을 볼 수 없다. '아, 10만 원이라도 살 테니 효자손을 구해다오. 효자손~!'

갑자기 구세주처럼 해결점이 생각났다. 박 팀장이 1월 말에 교육받으러 오마하에 온다고 했으니, 그편에 '효자손 공수'를 부탁하면 되겠구나. 잊지 말아야지.

공부와 가려움 사이에서 졸지도 못한 사이에 토요일 도서관은 폐관안내 방송과 함께 밖으로 나를 내몰았다.

이제 모두 잊고,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주말을 즐기러 가자.

학교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에 배낭을 옮겨놓고, 유치원생처럼 냉큼 '통학 버스'에 몸을 실었다.

Omaha_UNO_Mavericks_07_57_7759[사진설명 : '통학 버스'를 타고 '퀘스트 센터(Qwest center)'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가다.]

19살 대학생부터 온갖 국적의 학생들이 다들 '퀘스트센터 (Qwest center)'에서 열리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이곳은 그 흔할 것 같은 맥줏집도 못 보았고 식당이나 책방, 커피점이나 쇼핑몰이 거의 전부인 '수도승'이 사는 동네 같다는 유학생의 얘기를 들을 정도이다. 그러니 아이스하키 경기처럼 격렬한 경기에 대한 관심은 정말 하늘을 찌를 듯 지대했다. 경기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은 TV 중계를 통해서 집중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뭔가 즐길 거리가 정말 없을 정도로 아주 조용한 곳. 그러다 보니 오마하에 있는 네브래스카 대학의 아이스하키팀의 홈경기는 그야말로 온통 도시가 광분하듯 즐기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맵카드 (Mav Card)를 소지한 학생들은 $20짜리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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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입장하는 네브래스카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하는 '퀘스트 센터(Qwest center) 직원]

1997년 시즌부터 변함없는 아이스하키 개최 시간. 금요일은 7시 37분, 토요일은 7시 7분. '세븐 세븐'. 오늘 경기는 미네소타주의  베미지 대학(Bemidji State)과의 한판승이 기다리고 있다. 미네소타 주는 네브래스카 주보다 북쪽에 있는 곳으로 추운 곳일수록 결빙기간이 길어서 강팀이라는 속설이 있단다. 어제는 2:2 무승부로 끝났단다. 아주 잘한 경기다.

오늘 경기는 1 피어리드에 1:0으로 앞서다가 2 피어리드에 2골을 잃어 1:2로 지다가 3 피어리드에 1골을 만회해서 2:2 동점이 되었다. 그리고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난 적이 아니란 말이야, 할 수 없다. 적군과 같은 색의 내 초록색 점퍼를 벗자

오로지 오마하 시민에게 주어진 겨울 오락이란 겨우 '아이스하키 경기'인데, 승부에 집착하는 것을 지나친 관심으로 볼 수는 없어 보였다.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메브릭스 셔츠(Mavericks shirts, 빨간바탕에 들소가 그려진 셔츠)'를 입혀서 경기장을 찾는 모습에서 금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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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네브래스카대학의 아이스하키 마스코트 '매브릭스(Mavericks)']

물론 지긋한 시니어들마저도 빨간색의 '메브릭스 후드 티셔츠'를 입고 활보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마치 오마하시의 공식 복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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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매브릭스'와 보호 유리를 사이에 두고 주먹 다짐을 했다. 나만 장난이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입은 옷 색깔이 문제가 된 것이다.

베미지 대학의 옷이 짙은 녹색이고, 네브래스카 대학의 옷은 빨간색이다. 내가 네브래스카 응원단이면 당연히 빨간색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점퍼 색깔이 문제가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어쨌거나 난 녹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적의 응원단이 아군 응원지역에서 광분하는 모습을 그냥 둘 리가 없다. 아무리 신사적인 응원단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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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상대방의 경기복이 분명 '초록색'이다. 네브래스카 대학은 흰색 바탕에 빨간색과 검정색]

경기가 연장전에 들어서자, 관객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로 열심히 운동경기와 관객들을 촬영하고 있는데, 관객을 향해 사진을 찍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한 미국 학생이 나를 향해 엄지손을 하늘로 향했다가 아래로 향하면서 "그린~맨, 나가라 (Green man, get out!)" 하는 것이다. 갑자기 옆자리에 앉았던 또 다른 두 명의 학생이 동조하면서 "그린 맨, 나가라."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확산하면, 나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 난국을 어찌 헤쳐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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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다시 보아도 베미지 주립대학의 경기복은 선명한 '초록색'이다.]

내가 '그린 맨'으로 불리는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내 녹색 점퍼가 원인 제공이었다. '그래, 알았다.'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두 명이 네 명, 네 명이 열 명으로 그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린~ 맨, 나가라."를 외치며, 나를 공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어~억" 하는 수 만 명의 관중 소리가 났다. 베미지 대학의 공격이 우리팀 골문을 흔들었다. 순식간 2:3으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나는 관중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몰리는 순간을 이용해서 잽싸게 점퍼를 벗어 뒤집고 둘둘 말았다. 다행히 안쪽에는 빨간색 바람막이 스웨터가 나타났다. 더는 '그린 맨'에 대한 공격은 없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을 맞이했었던 것이다.

빨간색 점퍼를 사던가 아니면, 아이스하키장에 오질 않던가. 갈림길에 서서 경기장을 나섰다. '통학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돌아가는 길, 버스 안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시끌벅적 정신이 없는데, 위험에서 벗어난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며, 다시금 가려운 증세가 재발하였다.

홈스테이로 돌아와 웃통을 훌훌 벗어젖히고 침대 모서리에도 비벼보고 책상 귀퉁이에 몸을 잔뜩 구부려 보았지만,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결국, 지쳐서 잠이 들 때까지 가려운 등은 계속 나를 쉼 없이 괴롭혔다. '효자손이 필요합니다. 꼭, 유학길에 챙기셔야 합니다.' 꿈속에서 효자손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효자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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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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