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에 학교에 가면 학생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을까? 아침 기상 시간을 더는 앞당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섯 시 기상 시간은 지키기로 했다. 아침 일곱 시, 커피와 토스트 두 쪽을 입안에 구겨 넣듯 먹고 홈스테이를 나섰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 다행스럽게 도서관 옆 주차장에 주차할 공간이 있다. 멋스럽게 차를 세웠다. 이 얼마나 뿌듯한 순간인가? 오늘만큼은 식은땀, 더운 땀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섯 번째 날. 1월 13일 목요일은 이렇게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사진설명 : 도서관 옆 주차장에 세워진 나의 애마 시보레 코발트, 좋은 한국차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국제전문가개발과정 (IPD International Professional Development) 과정의 거의 모든 수업이 이른바 참여형 수업(Participatory-Class)이다. 듣기만 하고 이해하는 수업은 없다. 사전에 충분히 책이나 자료를 읽고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파워포인트 또는 워드로 작성하는 가공을 하고, 대중 앞에서 설명하고 설득하고 의문점에 대해서 답변하고 서로 간 토론하고 서로의 발표 내용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수업마다 공격과 방어로 치열했고 심지어는 학생들 간이 아닌 국가 간의 경쟁이 일어나듯 열심히 수강하는 분위기로 학생들의 준비 부족으로 수업이 지연되거나 연기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도서관에서 자료출력이 우선 급하니 학생증 발급을 해 달라고 하는 나 홀로 자리를 비웠던 경우뿐이었다. 교수 중에서 가장 강단 있고 주관 있는 교수가 '레이' 교수였다. '레이' 교수의 '비즈니스 리딩 (Business Reading)' 강의가 끝나자 나는 아무런 서류도 챙기지 않고 바로 교수님 뒤를 따라나섰다. "부탁드립니다. 맵카드(학생증) 발급하러 같이 가 주실래요?" 다른 동기들은 벌써 도서관에 출입하고 그곳에서 자료를 출력해서 형광색으로 칠을 해대며 공부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 학생증이 없어요? 그동안 뭐했어요? "까다롭게 '레이' 교수는 반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이 갑시다." 학생증 발급처가 있는 학생회관으로 가면서 "김씨, 다들 일주일 전에 학교에 와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어요.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는데, 불쑥 수업을 시작하는 날 나타나면 정말 우리도 곤란하지요. 그렇게 바빴어요? 남들처럼 일주일 전에 도착하지 않았어요 ?"라는 학교 입장에서의 설명을 늘어놓았다. 난 짧은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제가 이번 일요일 오마하에 도착한 것은 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증 발급처로 가서 직원들이 요구하는 서류에 대해서 '레이' 교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를 사진 촬영용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는 "큰 웃음 (Big Smile)"한다. 5분 만에 따뜻한 학생증이 나왔다. 야호~! '레이'교수는 역시 여장부다. 도서관에서 자료 출력도 맘 놓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사진설명: 나 홀로 뒤늦게 발급받은 맵카드. 도서관에서 자료 출력하고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입장하려면 필수인 학생증]
일본에서 온 '이바타'와 '다치로' 그리고 한국 유학생 '오스틴'과 말을 섞었다. 말을 섞었다는 것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대화 했다'는 뜻이다. 옳게 쓰였는지는 몰랐지만. 그러면서 꾀었다. 하이퍼 (HYEPR 학생건강센터)에서 결핵반응검사 (TB TEST)결과를 보고 나서 올드마켓에서 저녁을 먹자고.
당당하게 하이퍼에 입장했다. 지난 화요일 결핵반응검사를 했던 '이바타'와 '다치로' 그리고 세 사람은 30여 분 동안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결과는 양성 (Positive). 나는 완벽하지도 않고 특히 동양인에게 양성반응이 많이 검출되는 결핵반응검사(TB TEST)의 부당함을 주장했으나, 다음 주 화요일 82번가에 있는 메소디스트 병원(Methodist Hospital)으로 가서 가슴 엑스레이(Chest X-ray) 사진을 찍으란다. 동행자도 생겼다. '다치로'가 바로 다음 주 함께 가자고 한다. 이 순간, 예외 없이 모든 사건마다 빠지지 않았던 며칠의 상황을 상기하고는 포기하듯 네 시로 약속시각을 정했다. 하이퍼 간호사는 반기듯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약속확인을 하고서야 우리는 풀려났다.
기분을 풀자. 말을 섞기 시작한 일본이 두 명과 한국인 두 명이 함께 오마하에 그나마 도심 같은 분위기의 '올드 마켓(Old Market)'으로 외출을 감행했다. 데이빗 아저씨에게는 올드마켓에 가기 전에 핸드폰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늦게 귀가할 것이라고 전해 드렸다.
[사진설명: 좌측부터 '다치로', 나, 그리고 '오스틴'. 내가 입은 유행 지난 무스탕 코트. 영하 40도를 견디게 해주었다.]
'올드 마켓'은 서부로 떠나는 열차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유물처럼 옛모습 그대로 살리려 애쓴 흔적이 많고, 주로 음식점과 예술품을 판매하는 상점들로 날씨만큼이나 '썰렁' 해 보였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소중한 경험. 나의 지론이다. 길거리 동전 주차를 처음으로 해 보았다. 3시간에 3불. 그런데 25센트 동전을 넣어야만 한다. 쿼터(Quarter, 1달러의 1/4. 25센트)가 없으면 주차도 못 할 판이다. 난 돈이 없다. 동전도 없다. 알아서 갹출해서 길거리 주차를 강행했다. 우리네는 동전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임에도 어디 곤 25센트는 참으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사진설명 : '올드마켓'의 최신 길거리 주차설비. 오가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이 주차기를 관리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녁을 별식으로 하자는 의견에 다다랐다. 그래서 정한 것이 고작 스파게티 '스파게티 웍스(Spaghetti Works)'에서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사진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아직 한국 음식이 생각나질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사진설명: 스파게티 웍스에 주문한 스파게티, 신선하고 상큼하고 쫄깃하고 짭짤하고, 코니 아줌마 음식만은 못했다.]
이곳 오마하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콜라에 대한 기호도가 나뉘는 것처럼, 커피에 대한 기호도도 반반으로 나뉘었다. 별다방 커피를 선호하는 사람 반, 그리고 스쿠터(Scooter) 선호하는 사람 반이다. '레이' 교수는 철저한 스쿠터 선호자이다. 그러나 '메리 팻' 교수는 별다방 커피만을 마신다. 은근히 두 교수의 싸움 사이에 우리가 끼어 있다.
오늘 우리는 스쿠터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곳의 '작은 크기'는 한국의 '작은 크기'와 다르다. 아는 사실이지만, 새삼. '오스틴'은 한국인이지만, 서로 한국말을 안 쓰기로 약속했다. 서로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
[사진설명: 한 커피점의 내부 풍경. 긴 훌라후프가 열쇠고리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열쇠고리 중 하나다.]
그나저나 오늘은 오마하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올드마켓까지 그리고 '이바타'와 '다치로' 그리고 캐피탈 코트에 사는 '오스틴'까지. 길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오로지 닷지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다니면 틀림없다는 데이빗 아저씨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수첩에 적은 나만의 메모장만을 가지고 오마하 시내를 누비기 시작했다. 좌회전이 없는 닷지 스트리트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동기들 각각의 홈스테이마다 내려다 주고, 나는 홈스테이로 향하지 않았다. 학교 도서관으로 차를 돌렸다. 시간은 아홉 시 반. 아직 하교를 하기에 이른 시간이다. 두 시간이 넘게 남지 않았는가.
도서관에 들어서자 묘한 즐거움을 주는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왔다. 수강생 대부분은 이미 6개월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마지막 귀국 전에 이 IPD 과정을 듣는다고 한다. '이바타'는 뉴욕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다치로'는 보스턴에서 6개월 어학연수를, '셉'은 수 삼 년을 미국에서 연수 중이다. '차우' 는 이번 IPD가 두 번째다. 경쟁 때문이 아니다. 내가 공부하러 온 이상, 배우고 가야겠다는 의지와 의무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불법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모든 강의를 아무도 모르게 녹음을 했다. 이어폰을 꽂고, 교과서와 노트를 펴들고 복습 상황으로 전환했다.
"에엥~! 지금은 오후 11시 30분입니다. 30분 뒤에 도서관을 패장 할 예정이니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에엥~!" 경고 방송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찬 공기가 폐의 구석구석을 깨우는 듯 무섭게 추운 겨울에 나는 이렇게 도서관에서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부족함을 채우고 있다. 도서관을 나서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나에게 설탕 같은 눈보라가 샤워처럼 하얗게 감싼다. 나는 오마하에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다.
홈스테이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계기판이 나와 대화를 하자고 신호를 보낸다. 기름이 없단다.
'자··· 어디에서 기름을 넣지?' 경험한 이에겐 별거 아닌 그렇지만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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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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