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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Publication

[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15] 홈스테이 '데비빗' 아저씨와 벽난로 앞에서 오랜 시간 한담을 나누다.

by Retireconomist 2011. 1. 21.

매시간 마다 강의의 점점 깊이를 더해간다.

 '에싱거' 교수의 '비즈니스 작문 (Business Writing)' 시간이야말로 중요한 수업이다. 첫 시간이 바로 비즈니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 주제이다. '에싱거' 교수는 아주 차분하고 예의 바르고 조용하고 배려 깊은 교수이다. 이 교수의 문제라면 그저 대답을 하건 안 하건 본인의 강의에 대해서 온 힘을 다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제출할 논문에 대해서도 재촉도 하지 않고 주제를 빨리 제출한 학생을 골라서 칭찬 할 뿐이다. 이 교수의 첫 강의 내용은 너무도 단순하면서도 쉬운 주제인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수업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는데, 이 수업마저 다를 바 없었다.

우리 모두를 향해 '에싱거' 교수는 조용히 깃털 같은 질문을 날렸다. "글을 통해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레이' 교수 같으면 "자, 한 사람씩 얘기하세요."할 텐데, '에싱거' 교수는 아무런 강요가 없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 않을 우리가 아니다.

"예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바타'가 맨 먼저 답변을 드렸다. '에싱거' 교수는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 흔들 뿐이다. '다치로'가 뒤를 이어서 "간단하게 쓰는 것입니다." 역시 '에싱거' 교수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차우' 가 뒤따라 "빨리 응답하는 것입니다." 라고 답을 했지만 이 또한 정답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의사전달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 나의 노력도 무산이었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은 "결과"를 향해야 한다.

'에싱거' 교수는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글을 통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은 결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Written business communication is focused on the results.)"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고자 하는 목표는 '결과'라는 것이다. '아,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알 것 같기도 한데' 매번 수업은 이렇듯 원론적인 얘기로 시작되지만 '정답' 또한 아주 기초적인 곳에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분명한 방향을 잡고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공부하는 '국제 전문가 개발과정 (International Professional Development)'이 아닌가 싶다.

또한, 무작정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쓰지 말고, 사전에 세심한 준비를 한 후에 의사전달을 하라는 것이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지만, 우리는 수 없이 반복적인 실수를 이러한 준비 없는 실행에서 맛보질 않았는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의 습관적 실수로 줄여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어로 의사전달할 때는,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전달하는지를 염두에 두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논리적인 글을 쓰는 방법으로는 마치 신문기사를 쓰듯이 6하 원칙에 따라서 쓰라는 것이다. 5W+1H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안다, 다 아는 얘기이다. 그런데 영어로 물어보니 대답이 어눌하고, 실제 칠판에 써보라고 하면 왜 그리 쉽지 않은지.

사실 오늘은 '에싱거' 교수의 두 번째 강의가 있는 날이다. 주제는 '메시지의 수위를 정하기(Setting the Tone of a Message)"이다. 단순한 내용을 다루었지만 놓치기 쉬운 내용을 다룬 아주 괜찮은 수업이었다. 그 방법이 '샌드위치 기술(Sandwich technique)'이라는 것이다.

시작과 끝을 긍정적인 문장으로 감싸라. 마치 샌드위치의 빵이 내용물을 감싸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멋진 방법이다. 특히 나쁜 소식을 전할 때, 이런 방법은 아주 유용하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 문장은 '긍정문'으로 써야 함을 강조하셨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세계에는 '긍정문'만 있다. 나쁜 소식은 '샌드위치 기술'로 커뮤니케이션 하라.

받는 사람과 어느 정도의 친밀한 관계인가? 받는 사람이 같은 계급인가 높은가? 낮은가? 정중하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직선적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공식적인 문서 형태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아주 편안한 사이로 보낼 것인가? 문화적 차이가 있거나? 이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가? 등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칠판에 한 문장이 쓰였다. "나는 월요일까지 당신의 보고서를 받아야겠다.(I must have your report by Monday.)" '에싱거' 교수는 이 문장을 한 사람씩 나와서 칠판에 수위별로 작성하라고 '차우'에게 펜을 건넨다. 이어서 한 사람씩 칠판에 정답을 적는다. 그래서 마지막에 도달한 아주 정중한 부탁의 문장으로 "나는 당신이 월요일까지 보고서를 보내준다면 정말로 감사하겠다. (I would really appreciate it if you could send me the report by Monday.)"가 완성되었다. 중학생 수준의 영어이지만, 상대방에게 어떤 방식으로 정중한 대화를 할지를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은 배움의 즐거움이 아닐까?

더욱 개인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든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비인격적인 이메일을 쓰게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등이 수업의 토론을 통해서 정리되었다. '인사를 빼먹었거나,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은 경우, 문장 마무리에 '친애하는 (sincerely)'을 빼먹는 경우, 명령조로 전달하거나 압박하는 경우'가 바로 그럴 때 해당하는 것이다. '에싱거' 교수는, "반대로 '무례하게 보내는 메시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매 수업은 어느 하나 뺴놓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귀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도저히 소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동등한 발표와 모두 참여하는 토론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오후 3시 또는 4시가 되면 아주 곤죽이 될 지경이다. 그런데 여지없이 과제가 있고, 또 다음 주제 발표가 있고 어눌하게 준비를 했다가는 토론 시간에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 경쟁이나 하듯이 교수들은 숙제를 내고,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숙제를 낸다. 그리고 틈을 내어서 반복해서 복습도 해야 한다. 그러니 완전히 돌연 변이된 거북이 모양으로 등짐을 내려놓을 사이가 없을 정도이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지금까지 달리는 직장생활에서 빼놓고 지나친 것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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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추운 겨울이라서 그런가? 길거리에 사람을 볼 수 없다. 너무 한적한 홈스테이 주변의 풍경]

그래서 거의 매일 저녁을 먹고는 도서관으로 향해야 한다. 오늘은 금요일. 그런데 아이스하키 경기가 없는 주간이다. 내일은 '조슬린 발물관(Joslyn Art Museum)'에 단체로 관람을 가는 날이어서 한결 마음은 가볍다.

금요일, 오후 5시면 도서관은 문을 닫는다. 아이스하키 경기도 없다. 뭘 하지?

주말을 즐기는 이들의 일상은 정말로 철저하다. 그래서 'TGIF(Thanks God its Friday)'가 있나 보다. 평일에 지독하게 공부를 해서 그런지 금요일은 오후 5시, 토요일도 오후 5시면 도서관은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학교는 암흑이다. 나같이 어딘가 박혀 앉아서 책과 씨름하려면 대안은 '반즈앤노블(Bans and Noble)' 이거나 '보더스(Borders)' 책방뿐이다.

오늘은 맘먹고 '데이빗' 아저씨하고 한담이나 나누자고 작정했다.

'데이빗' 아저씨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눈이 만만치 않게 내려서 인지 외식 계획이나 극장 구경 계획도 없다는 대답이었다. 홈스테이로 돌아오니 '코니' 아줌마는 저녁 준비에 한창이었다.

"새~로~ 나~온~  식~물~성 소시지랍~니다." 마치 오페라 가수의 열창처럼 음정을 넣어가며 음식을 만들고 있다. 나도 잽싸게 카메라를 찾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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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코니' 아줌마의 '식물성 소시지로 만든 미국 가정식 핫도그 백반']

오늘 저녁은 맘 먹고 '데이빗' 아저씨을 붙들었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대화 좀 나누시죠?" 기다렸다는 듯 '데이빗' 아저씨는 나를 식당 옆 거실로 이끌어 가신다. 거실에는 TV가 없다. 책을 보는 공간일 뿐이다. 거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눠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냥 지나쳤던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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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데이빗' 아저씨가 창문을 막고 직접 만들었다는 '벽난로' 손재주에 놀라다.]

'데이빗' 아저씨는 내가 수업시간에 발표한 '한옥'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두셨다. 나는 즉시 한국에서 가져간 잡지 속에 한옥을 보여 드렸다. 중국과 일본의 전통가옥과 다른 점을 설명한 잡지였는데, 차이점을 들으시고는 자신이 보고 계신 역사책을 가지고 오셔서 직접 확인하셨다. 그런데 보고 계신 책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영어로된 동양역사책인데 한국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조악한지 새로이 발간된 영어로 된 한국 역사책을 선물 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홈스테이 학생의 모국 역사를 공부하는 홈스테이 주인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다시금 나의 길을 열어주신 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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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아줌마는 '데이빗' 아저씨와의 정담에 시기가 났는지 설거지를 마치고는 이내 대화에 끼였다. '케이'라고 하는 UNO에 다니는 손녀딸이 학업을 중단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둥 생각지도 않은 여러 주제의 대화가 오갔다.  더구나 한국에 있는 가족이 몇 명인지? 아이들 영어 이름이 무엇인지? 사는 집은 방이 몇 개인지, 대중교통은 얼마나 자주 오는지 등 궁금한 한국 생활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한국 관광가이드가 된 기분이었고, 기회가 되면 이 두 분을 한국 관광의 목적으로 모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나의 영어 대화 수준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듣고 싶었지만, "너무 훌륭해서 평가가 필요없다."는 등의 과장된 표현에 더 이상의 평가와 조언을 들을 수 없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후일 나의 발표용 비디오 자료와 '차우'의 비디오 자료를 두고 평가할 때 그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에 찍힌 벽난로는 꼭 집에 들여놓고 싶은 기물이었다. 아쉽게도 이 벽난로는 '도시가스'를 원료로 스위치만 올리면 진짜 장작불같은 불길이 만들어지는 '가공된 벽난로'라는 것이다. 물론 그을름도 재도 없다. 불과 서너 시간의 간단한 조립과정과 가스연결만 하면 끝이 나는 가정용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조립품 중에 하나라는 말에 집안일을 전혀 거들지 않는 '한국의 남자!' 중 한 명인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어떻게 짐으로 실어 나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맘에 들었다.

뱃속에 빵빵하게 자리 잡은 '식물성 소시지'의 위력이 따뜻한 벽난로와 함께 스멀스멀 졸음으로 몰려왔다. 세 시간 동안의 대화자리를 정리하고 방에 올라와 창밖을 보니 여전히 눈바람의 기세가 꺽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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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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