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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가치를 정하는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by Retireconomist 2012. 5. 9.

모든 것에 값 매기면 공동체정신은 힘잃어

시장 가치에 매몰돼 새치기도 사고파는 현대사회는 건강한가?



2012년 신간에서 샌델 교수는 “우리 사회가 시장을 품은 게 아니라 아예 ‘시장사회’가 돼버린 것 아닌가” 묻는다. 도를 넘어버린 듯한 시장만능주의. 그것이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덕성을 밑동에서부터 갉아먹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지상(紙上) 강의를 펼친다.


◇범람하는 상업화 물결: 그의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어딜 가나 ‘시장적 접근’이다. 여가활동·임신·출산부터 건강·교육·환경·국가안보 문제까지. 초창기 야구장은 빈부 구분 없이 함께 즐기고 어울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 뉴욕 양키스 구장 박스석은 260달러, 시야가 가리는 외야석은 12달러다. 스타 선수들 사인은 물론, 작년 양키스 유격수 데릭 지터가 3000번째 안타를 기록하던 날엔 그가 밟은 구장 흙까지 팔렸다.


상업화는 예외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2005년 미국 유타주의 30세 여성은 1만달러를 받고 자기 이마에 온라인카지노 웹사이트 주소를 영구 문신으로 새겼다. 2011년 콜로라도주의 한 교육청은 성적표에도 광고를 허용했다. 중국에는 대리 사과(謝過)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선물도 현금과 같은 상품권이 인기다. 상품권은 다시 인터넷에서 거래된다. 생명보험마저 가족을 위한 안정망에서 죽음을 담보로 한 투자상품으로 전락했다.


돈은 새치기도 떳떳하게 만든다. 공항은 우등 고객에게 출입국 심사를 간소화해 준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45달러만 내면 보안검색대와 엘리베이터 줄 앞쪽에 세워준다. 병원에서도 돈을 더 내면 더 빨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인기다. 줄 서기 대행회사도 성황이다.


 ◇비용-편익의 ‘제국주의 경제학’ : 정책 결정에도 경제적 효용 논리가 앞선다. 오바마도 3년여 임기 동안 연설문에서 ‘인센티브’란 단어를 29번이나 썼다. 댈러스의 한 초등학교는 학생이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2달러를 줬다. 2006년 미 의회는 교사 인센티브 기금까지 만들었다. 비만 치료에 예산 5%를 쓰는 영국 국립보건원은 체중을 줄여 2년간 유지하는 사람에게 최대 425파운드를 준다. 국가들도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고판다. 자유시장론의 근거는 명료하다. 모든 재화·서비스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해결될 때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값을 매겨서는 안 될 것들 : 저자의 반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공정성의 문제. 자유 거래는 능력의 평등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 시장에서는 경제적 약자가 불리한 거래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 있다. 가령,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펴면서 위반자에게 벌금을 물리는 것은 부자에게만 출산권을 주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는 가치의 타락. 고상한 것도 상품화하면 본래 가치가 변질되는 수가 있다. 시장은 모든 것을 사고파는 상품(goods)으로 볼 뿐, 좋은(good)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시장 자체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재화의 분배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교환되는 재화에 대한 어떤 태도를 드러내고 부추긴다. 아이에게 돈을 줘서 책을 읽히면 독서량은 높일지 몰라도 독서를 그 자체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수단으로 여기게 한다. 외국인 용병을 쓰면 국방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공동체 내 시민정신이 퇴색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를 물어야 : 그러면 시장주의에 반기를 들어야 할까? 아니다. 저자도 시장의 효용을 인정한다. 다만 그것이 무소불위의 힘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민의 덕성과 공공 정신이 위협받게 된 지경을 걱정한다.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목록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선을 긋기가 애매한 것들이 많다고 시인한다. 다만 저자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경우 값으로 매기려 들 때엔 불편함이 느껴지고, 그것은 바로 공공성과 덕목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 미덕을 일깨우고 공론을 촉발하는 것이 저자의 역할임을 자임한다.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이번 책도 답이 아닌 되물음이다. 그 물음은 ‘어떤 것이 살 만한 삶인가’에 대한 숙의를 부른다. 저자의 화려한 변론이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우선하는 자유주의를 넘어 공동체주의로 비상하는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나 시장주의 때리기에 편승한 상투적인 비판서를 넘어선다. 오히려‘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두고 끝없이 반문했던 고전철학의 길로 인도하는 입문서에 근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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