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들이 사라진 부족이나 잊혀진 문화를 연구하듯" '주부 아빠(stay-at-home dad)'들을 집중적으로 살핀 책
사실 아빠의 '가정 회귀'는 시대적 대세다. 2007년 미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살림하는 아버지는 15만9000명으로 1995년 6만4000명에 비해 10여년 만에 2.5배 늘었다. 이 수치에는 살림을 하면서도 파트 타임이나 재택근무 등 일을 하는 아버지들은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이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실태를 온전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참고로 같은 해 우리나라는 '육아'를 맡고 있는 남성이 5000명, '가사'가 13만8000명으로, '집안일'을 책임진 남성이 14만3000명이었다. 미국과 비교해 인구 대비로 우리가 훨씬 높다.
물론 가사 측면에서 남녀평등의 유토피아는 아직도 먼 얘기다. 인구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전업 주부 어머니는 560만명인 반면, 전업 주부 아버지는 언급한 대로 16만명이 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엄마의 80%가 일을 하고, 심지어 아내의 3분의 1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있다.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일례로 미국 대학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으며, 젊은 여성이 또래 남성보다 수입도 낫다고 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 돈벌이를 하는 어머니는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했고,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1980년에서 2007년까지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60%에서 77%로 뛰었다. 현재 미국 내 개인기업 전체 770만개 소유주의 과반수가 여성이다. 이는 1996년에 비해 5~6년 만에 42%가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육아·가사=여성'이다. 위스콘신대학교 가족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적인 어머니는 평균적인 아버지보다 육아에 5배나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맞벌이의 경우에도 엄마가 육아에 들이는 시간은 아빠의 4배다. 아빠의 가사 기여도가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엄마들이 하는 수준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그럼에도 2007년 조사에서 미국 남성의 68%가 아기를 키우며 '전업 주부(主夫)'로 사는 것을 고려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런 면에서 책에 나오는 '애 키우는 아빠에 대한 5가지 신화(또는 편견)'는 흥미롭다.
①전업 주부 아빠는 가방끈 긴 엘리트들의 사치다→아빠가 주부 노릇을 하는 가정은 현금 수입이 엄마가 주부인 가족보다 낮다. 주부 아빠 가정은 15% 이상이 빈곤층인 반면, 엄마가 주부인 가정은 12%가 빈곤층이다.
②주부 아빠는 게으른 가장(家長), 무관심한 아빠다→연구 결과 저소득 실직자 아빠의 경우에도 예상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애들을 보살핀다.
③주부 아빠는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 탄생한다→자녀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남성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④아빠는 원래 애 키우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놀이·안전·자상함·분위기 등 남자들은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영역을 관할한다.
⑤남자들은 육아휴가나 탄력근무시간제를 쓰지 않는다→스웨덴·독일·캐나다의 사례가 보여주듯 유급 육아휴가나 보조금 지급 등 국가정책·직장문화가 아버지의 육아를 촉진하면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저자가 3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시카고·캔자스시티·뉴욕 등 미국 전역의 수백 가정과 나눈 대화, 육아를 전담하는 아빠 12명과의 심층 인터뷰가 책을 생생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 자신이 주부 아빠가 된 이유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은 애틋함마저 전한다. 명백한 칭찬에 인색한 '뉴욕타임스'가 "이 책이 소개한 현실은 훗날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변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을 것"이라 언급한 책이다.
남성들이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지면 그 결과는 참담했다. 실직한 남자들은 일자리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성으로서, 가장으로서 정체성 자체를 잃었다. 남성들은 실업이나 고용 불안 상태가 지속될 경우 일 없는 시간을 자녀 양육이나 가사에 쏟지 않았다. 아내가 직장에 나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주변에 장벽을 쳤다. “남편은 항상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놀아줬어요. 집에서 놀 때를 빼고는요.” 1920년대에 한 어머니가 한 증언이다. “실업자 신세일 때는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하지 않아요. 늘 이렇게 말해요. ‘나 좀 귀찮게 하지 마, 나 좀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럼 당연히 아이들은 아버지가 왜 그렇게 달라졌는지 어리둥절해 하지요.”_“현대식 아버지의 등장” 중에서
아버지들은 1966년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가족을 보살피는 역할을 좀 더 공평하게 나눠서 하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그 뒤로 강한 압력이 밀어닥치자 평균적인 아버지는 집안에서 “왕초 노릇”하면서 누렸던 권력과 안락함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 남성들이 집에서 보이는 행태는 1970~80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내들은 이미 남편과 같은 만큼의 시간을 바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회학자 알리 혹스카일드는 1980년대 말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는 맞벌이 부부 50쌍의 직장과 가정에서의 행태를 연구한 결과 워킹맘들이 여전히 육아와 청소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게 퇴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는 일을 혹스카일드는 “2차 근무second shift”라고 칭했다. 2차 근무는 사회학에서 유명한 개념이 된다._“직장 다니는 엄마의 ‘2차 근무’” 중에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이룩한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남편은 집안 잡일과 육아를 분담하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취를 두려워하면서 돈벌이를 전담하는 가장이 되려고 하지 않는 남자를 남편으로 삼아도 될까 걱정이 앞선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옛날에 들었던 테이프(“좋은 남편 얻어야 팔자 편하다”)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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