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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27] 그러고 보니, 오늘은 민속의 날, 구정이다. 기온은 살짝 추운 영하 27도.

by Retireconomist 2011. 7. 5.

다행스럽게 눈폭풍은 큰 피해를 주지 않고, 기온만 잔뜩 떨어뜨려 놓고 지나가 버렸다.

난, 춥고 맑아서 머리가 쨍하도록 시린 날이 좋다. 오늘이 그렇게 춥고 맑고 머리가 쨍하도록 시린 날이다. 유독 차 안에서도 손이 아프도록 시린 몹시 추운 날이다. 눈폭풍의 흔적을 사진기에 담으려고 카메라를 오른손에 들고 자동차를 몰았다. 위험하기는 하나,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이 그나마 진행을 방해하지 않고 찍는 방법. 만일 아내가 옆에 타고 있다면 잔소리가 몰려 오겠지만, 누구에게도 제지를 당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장점을 그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눈폭풍의 흔적이 자동차 유리창부터 문고리까지 덕지덕지 눌어붙었지만, 추위 때문에 겨우 고양이 세수하듯 빠곰하게 앞차 보일 만큼만 긁어놓고 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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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운전을 해야 하는데 다르다고 느끼는 풍광만 보면 카메라가 들썩거려서 어쩔 수가 없다.]

케이트 쿠르거(Keith Kruger)라는 이름의 독일계 아저씨가 자원봉사로 토론시간에 참석했다.

시민 자원봉사자가 와서 대화하는 '토론기술(Discussion Skills)'시간이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진행된다. 이제는 토론 시간도 적응하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나 언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함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오늘은 기온이 영하27도까지 떨어지니 자원봉사자들도 집에 머무르는 모양이다. 많을 때는 다섯 명에서 10명까지 온다고 들었는데, 달랑 크루거 씨 한 분만이 등장했다. 이분은 처음 느낌이 단정한 목사님 같다고나 할까? 봉사에 참여시켜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은 학교 직원에게 거듭해서 인사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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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기술' 시간의 한 장면, 수업시간에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누가 찍었을까?]

오늘 한국에선 민속의 날, 미국에선 2월2일을 그라운호그의 날(Groundhog's Day)이라 부른다.

미국의 민간 속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그라운드호그(Groundhog)는 동물 이름이다. 북미 지역에 사는 마못(Marmot)을 부르는 말로, 생김새는 토끼와 비슷하고 또 두더지와 비슷하고 온몸이 회갈색 털로 덮여있다. 나무를 갈아 먹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우드 척(Woodchuck)이라고도 한다. 2월 2일은 이 그라운드호그가 겨울이 이후 처음 땅속에서 나오는 날로 입춘을 의미하는데, 땅 밖으로 나와서 빛이 그려놓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너무 큰 동물로 착각하여 다시 굴속으로 돌아가서 6주간 겨울이 더 지속한다고 한다. 188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라운드호그의 땅 밖으로 나온 날이 바로 2월2일이었기에 그때부터 2월2일이 그라운드호그의 날로 정했다고. 만일 2월2일 날씨가 흐리면 그해 봄은 다른 때보다 빨리 온다고 하는 속설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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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호그데이의 한 TV 장면]
 
결론은 아직도 겨울이 6주나 남았고, 오늘 날씨가 맑은 것으로 보아 올봄은 늦게 올 모양이다.
 
1886년 펜실베이니아 (Pennsylvania)주의 펑수토니(Punxsutawney)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 풍습으로 오전 7시30분쯤 한 마리의 그라운드호그(Groundhog)가 굴 밖으로 나왔다가 아침의 햇살로 긴 그림자가 생긴 것에 놀라 굴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모습으로 풍습이 생겼다고 하는데, 이날은 펑수토니에서 그라운드호그를 굴속에서 꺼내는 장면이 미국 전역으로 방송되고, 이날 펑수토니의 일기예보를 함께 보는데 마치 만우절처럼 엉터리 일기예보를 하는데, '믿지 마' 일기예보를 전 미국인들이 즐기듯 시청한다고 한다. 오늘 아침 홈스테이에서 등교 전 7시 TV뉴스에서 그라운드호그를 치켜 들은 검은 중절모 신사의 모습을 잠깐 보았다. 바로 그 뉴스가 오늘 토론의 주제였던 것이다.
 
나는 오늘이 한국의 민속의 날이라고 소개하며 떡국과 세배를 통해서 '나이 먹음'을 축하하는 날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설날에 먹는 음식을 열거하니, 음식을 만드는 재료와 조리법을 크루거씨가 짖궂게 물어왔다. 당연히 진땀을 뺄 수밖에 없다. 잡채를 설명하는데 손발이 꼬인다. 만두에 들어가는 재료를 설명하다가 실어증에 걸린 환자처럼 그야말로 콱 막히고 말았다. 왈칵 구정 음식들이 눈앞에 어린다. 아무튼, 버벅거리는 내 모습이 내가 봐도 안쓰러운데, 마침 또 오늘이 구정이다.
 
당면을 영어로 뭐라 해야 하나?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는 내 언어의 한계이자 장벽이다.
 
다행스럽게 베트남 친구 '차우'가 내 얘기에 끼어들었다. 베트남 역시 '구정 축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오마하 시내에서 큰 축제를 벌인다고 자랑했다. 수백 명의 베트남인들이 이곳 오마하 대로에서 길거리 신년 축하공연을 한다고 한다. 중국인보다 더 많이 정착한 오마하에서의 베트남 인들의 입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녁에 구정 기념으로 딤섬을 사겠다고 호기를 부린다. 베트남 사람들도 중국사람처럼 딤섬을 즐긴다. 새로운 정보이다.
 
조그만 시골도시로만 알고 있었던 오마하에 가볼 곳도 많구나.
 
이어서 '오마하의 문화 당일여행지(Omaha Cultural Outings)'를 소개받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가 다녀왔던 '조슬린 예술 박물관(Joslyn Art Museum)', '남북전쟁과 국가인디안 전쟁을 이끌었던 1875년부터 크룩 장군이 살았던 집인 '크룩 장군 자택 박물관 (General Crook House Museum)', '유니온 패시틱 철도 박물관 (Union Pacific Railroad Museum)', '미국에서 철도를 가장 잘 건설했던 닷지 장군의 집(Historical General Dodge House)' '미국에 있는 11개의 라틴 박물관 중의 하나인 엘 무지오 라티노(El Museo Latino)'. '야생 사파리 여행(Wildlife Safari Tour)',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자주 찾는 '헨리 두어리 동물원(Henry Doorly Zoo)'. '고아들을 돌보아주는 '보이스타운(Boys Town)', '지난번 '코니' 아줌마 친구들을 만났던 '로리첸 정원(Lauritzen Gardens)', '비행기들의 무덤인 '전략 공군 우주 박물관(The Strategic Air & Space Museum)', '교육 과정 중에 다녀올 예정인 '듀람 서부 유산 박물관(Durham Western Heritage Museum)' 그리고 '1930~40년대 재즈의 중심이었던 오마하를 기념하는 '사랑의 재즈와 예술 박물관(Love's Jazz and Art Museum)'등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내비게이션도 장만했겠다. 이제 주말에는 오마하의 주변을 많이 둘러보아야 겠다.
 
점심시간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카고까지 차를 몰고 떠나봐?"라는 나의 농담에 동기들이 우루루 주변을 에워쌌다. 괜한 발언이 나를 힘들게 할 줄이야.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갈 줄이야.

기업 방문 수업은 '퍼스트 내셔날 은행(First National Bank)'에서 직원이 강의실로 와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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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진행한 사람은 로리 로리(Lori Rohrig). 그룹 매니저(Group Manager)라고 한다. 미국에서의 직책은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대부분이 수평적인 업무 협력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직급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오마하에 가면 거의 모든 은행이 진출해있지만, 투박하게 짙은 초록색 간판의 '퍼스트 내셔날 은행(First National of Nebraska)'을 볼 수 있다. '퍼스트 내셔날 은행은 지방은행이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본사를 둔 이 은행은, 미국 지주은행 중에 50번째 규모이고, 신용카드 발급 규모로는 미국내 20위권에 있다. 6백6십만의 고객을 두고 있는 '퍼스트 뱅크'에 대해서 로리 로리(아무리 발음해 보아도 한국어로 옮기면 같이 쓸 수 밖에 없다.)는 자신에 찬 회사 소개를 한다.

주제는 '왜 고객들을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서 고객을 유치하고, 고객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지'에 관한 것이었다. 온라인 마케팅에 대해서 다들 관심이 많았는지, 예정된 강의시간을 훌쩍 넘어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고, 강의가 끝나고 나니 수 많은 질문 공세에 대해서 '에드 퀸' 주임교수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정중한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렇지, 가장 큰 선물이 '질문'이라는 것을 잠깐 잊었구나. 그래도 우리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머슥하게 쳐다보며, 적극적인 강의 참여에 서로 격려하며 헤어졌다.

도서관에서 책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을 읽느냐고 저녁시간을 놓쳤다.

배꼽시계가 고장났나보다, 저녁 여덟 시가 되어서야 배꼽시계가 울렸다. 1층에 있는 별다방에서 '구은 베이글과 커피 한 잔'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다시 곱씹으면서 읽는 맛이 정말로 씹으면 씹을 수록 고소해지는 베이글과 다름없다. 벌써 책은 1/3을 넘어서 책갈피가 꽂혀있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나는 혼자서 이런 말을 중얼 거리고 있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정말 행복하다. 행복하다...'

시험기간에 벼락을 태우러 갔던 곳이 도서관일진데, 스스로 찾아서 책을 읽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얼마나 달콤하고 즐거운 일인지...

설날에 떡국은 먹질 못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는 행복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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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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