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샤워시간은 유독 길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떄문이었다.
'2분 연설'에서 발표할 내용을 외우고, 시간에 맞추어 반복해서 시간을 맞추어보고, 또 맞추어보고 하는 반복의 반복을 거듭했다. 샤워기에 물 떨어지는 소리와 나의 연설 연습이 휩싸여서 "왕.. 왕.. " 대는 소리로 욕실이 가득했다.
초침에 맞추어 연습을 해보면 10초가 이르거나 15초가 늦거나 한다. 꼭 맞추어서 완벽하게 하려고 했지만, 내가 이렇게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2분이라는 시간으로 정확하게 골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연습을 거듭할 수록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아침 시간은 저녁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후다닥. 등교시간에 맞추기 위해 1층 현관을 향해서 내닫듯이 2층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쿵쿵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니, '데이빗' 아저씨가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팔짱을 끼고 '턱' 하니 나의 진로를 가로막는다.
"헨리, 네가 연습하는 것 밖에서 다 들었지. 그 정도 연습하는 학생은 본적이 없어.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행운을 빌어."라는 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고맙습니다. 오늘 테스트는 비디오로 녹화되어 아마도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날카로운 지적을 부탁합니다." UNO에서 홈스테이로 지정된 곳들 대부분은 학교의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마치 집에 있는 교수같이 일거수 일투족 도움이 되는 것에는 사사건건 개입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얼마나 큰 소리로 연습했는지, 욕실 밖에서도 들릴 지경이었다면 이것 참 곤란한 일이구먼.' 속으로 되뇌면서 학교로 향했다.
오늘 역시 바람불고 춥고 눈이 가득한 오마하 시가지가 등굣길 시야에 들어온다. 학교 앞쪽에 넓은 눈밭이 여름은 넓은 잔디밭으로 야외수업을 나가기도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상상이 가질 않는 풍경이다. 두꺼운 장갑을 착용했는데도 운전하는 손끝으로 한기가 숨어들어 온 듯 아리게 추워 온다.
오늘은 등교시간을 아껴서 바람에 휘날리는 성조기, 학교기와 시계탑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정말 추워서 아침 저녁에 손을 주머니나 장갑 밖으로 꺼내 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좋은 사진을 위해서 손을 꺼내어 최대한 감각을 끌어내기 위해서 장갑을 벗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무슨 청승인지? 무슨 열정인지? 구분가지는 않지만, 이곳의 새로운 풍경은 그 모두 하나 하나가 호기심 탓에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래 이 추운 아침에 허옇게 손을 내놓고 사진을 찍는 이는 나 말고 누가 있겠는가? 존재감. 나는 여기에 이렇게 존재한다.
[발그레한 아침 빛이 시계탑에 은은히 물들고, 바람에 살짝 수줍은 듯 고개를 쳐드는 깃발이 멋있다.]
사진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주 근사한 장면을 만을어 주었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성조기가 시계탑과 정겹게 어우러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오늘 강의장에 들어서니, '차우'가 대뜸 나에게 '레이' 교수의 생일이란다. 나보고 어쩌라고?
[우리를 아침마다 유혹하는 'USA TODAY' 변함없이 건물 입구에는 매일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그래 이 문제를 해결할 자는 바로 나밖에 없다. 만일 생일 같은 좋은 기회를 놓치면 언제 '레이' 교수와 친해질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바로 강의 시작 전인데도 불구하고 '차우'의 허리춤을 끌어당기며 강의장 밖으로 나와 학생회관을 향해서 달렸다. 우선 문방구에 들러서 선물이 될 만한 것을 골랐다. 그런데 '레이' 교수에게 생일선물로 적당한 것을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그저 빨간색의 후드 티나 점퍼가 전부 일뿐인데 그것을 고를 수도 없고. 마침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를 골랐다. $130. 그저 나만 쳐다봤던 이유가 설명되는 장면이다. '레이' 교수가 강의장에서 사라진 둘을 향해 '버럭' 할 것 같은 느낌에 서둘러 준비하자는 생각만이 들었을 뿐 누가 얼마씩 분담하자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바로 2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식당에서 '생일 케익'을 찾으니 원형으로 제대로 모양을 갖춘 케익은 없단다. 마침 학생식당에서 일하는 '메릴린' 아줌마가 주스캔을 옮기다가 우리를 발견했다. "헨리, 수업시간에 무슨 일로 식당에 왔어요? 아침에 다녀간 것을 봤는데."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메릴린' 아줌마, 우리 '레이' 교수님이 생신인데 '생일 케익'이 없네요? 어쩌죠? 강의는 벌써 시작했을 시간인데." '메릴린' 아줌마는 호탕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소리를 질렀다. "주방에 있는 케익 다 가져 나와!"하고. 잠시 뒤에 나온 케익은 모 두다 조각난 케익 뿐이었다. 그 케익을 큰 은박지 쟁반 위에 돌아가며 붙여놓고는 다 됐다며 가져가란다. 이 비싼 조각케익으로 '생일 케익'을 대신한다고?" 할 수 없다. 여덟 조각의 치즈와 초코 케익을 합친 '생일 케익'까지 준비되었다. 다행히 '메릴린' 아줌마는 냅킨이며 포크며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종이봉투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커피까지 또 $150이 내 주머니에서 나갔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뿐, 뭔가 '레이' 교수와의 관계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일념으로 강의실로 단숨에 달려갔다.
'레이' 교수는 어설픈 생일 축하와 선물에 진정 감동한 듯 펑펑 "고맙습니다."를 반복하며 울었다.
훈육 주임 같던 '레이' 교수도 우리 둘이 빠졌음에도 강의를 열심히 진행했었나 보다. 조금 섭섭하기는 했지만, 본인 생일 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운 나와 '차우'가 강의실에 선물과 케익을 들고 들어오자 수줍은 15살 소녀가 된 듯 어찌할 줄 몰라했다. 여섯 명의 남학생 중창단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고, 선물을 전달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생일을 준비한 우리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심연의 미소가 얼굴에 나타났다. 항상 두 박자 늦은 우리 착한 '차우'는 어떻게 '레이' 교수의 생일을 알았을까? 미스터리였지만 이로 인해서 관계 개선은 많이 진척이 된 셈이다.
['레이' 교수는 우리와 처음으로 화해하듯 웃었다. '다치로'의 우스꽝스런 표정 또한 일품이다.]
'레이' 교수 생일 덕분에 무참하게 봉변을 당할 수 있었던 상황을 회피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가족과도 교류할 수 없고, 타지의 정보도 제한된 이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있으나, 혼나가면서 배운다는 것을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 자신이 아무리 하나의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불도저가 밀어붙이는 것 이상의 압박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에 대해서는 피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후에는 '메리 펫' 교수의 '효과적인 발표(Effective Presentations)'강의에서는 비디오 카메라까지 동원된 '2분 연설'이 실제로 녹화 테스트를 받는 시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초 30초 안에 관중으로부터 호감을 얻어내라."
'메이 펫' 교수는 비디오 촬영에 앞서서, '2분 발표'를 왜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첫인상은 최초 30초에서 60초면 판가름이 난다고 합니다. 청중들은 당신의 전달하는 예의(manner of delivery)' , 행실 (demeanor), 외모 (appearance) 그리고 눈 마주치기(eye contact)로 판단합니다."
"여러분의 옷차림, 머리상태, 자세 그리고 다른 기초적인 요소들은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빨리 받아들여지고 중요하게 판단되는 요소입니다. 따라서 좋은 첫인상의 시작은 관객들을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게 됩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인상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인상 최초 30초 안에 관중으로부터 호감을 얻어내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2분 연설'은 "상대방에게 여러분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따라서 '2분 연설' 반복 연습을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세요. 사교의 모임이 되었던, 비행기 안에서건, 엘리베이터 안에서건, 충분히 여러분 자신을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언제 어떤 장소에서 얼마나 많은 관중이 있건 간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남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좋은 첫인상을 얻을 수 있는 비법을 알려 드립니다. 바로 부드럽게(SOFTEN)입니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노력하는 이들에게 제가 가진 비법을 전수하겠습니다." '메리 펫' 교수의 비법이 전수되는 순간이다.
"부드럽기(SOFTEN)"입니다. 아마도 이것을 잊으신다면, IPD 전체 과정을 잊으신 것과 같습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단어입니다.
먼저 S는 미소(Smile)입니다. 유학생 중에서는 길가에서도 미소를 지어야 하는 것이 정말 싫어서 귀국하고 싶다는 학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기본 예의는 미소입니다. 수백 명, 수천 명과의 악수는 불가능하지만, 여러분의 미소는 더 많은 사람에게 당신의 좋은 인상을 전달할 것입니다.
그 두 번째로는 O입니다. 열린 자세(Open Posture)입니다. 팔을 교차해서 관중이 보았을 때 마치 X처럼 보이는 것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저항감을 낳게 합니다. 공격하듯 손을 뻗어 관중을 향하면 모욕입니다. 가볍게 손바닥을 펴서 하늘을 향하게 하고 팔을 양옆으로 가볍게 뻗어서 위아래 향해 보십시오. 하늘을 나는 나비와 같이 가볍게. 열린 자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세 번째로는 F입니다. 앞을 향해 숙이세요(Fowrad lean)입니다. 마이크를 한 손에 들면 배를 내놓고 허리는 뒤로 재껴지기 마련입니다. 거만한 자세이지요. 숙이듯 앞을 향하세요.
그다음은 T입니다. 분명하게 말하라(Talk clearly)입니다.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들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합니다. 이 역시 연습이 필요하고,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연습을 점검하는 매서운 청중의 눈을 가진 주변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강의시간에 다른 모든 학생이 지적하도록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된 점을 찾아서 개선하지 않으면 이 강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강한 어조로 분명하게 전달하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다음은 가장 어렵다고들 하는 E입니다. 눈을 맞춰라 (Eye contact), 모든 관중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그 연설은 성공한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좌우서 우로, 앞에서 뒤로 모든 관중과 눈을 마주치세요. 단, 조는 사람은 예외입니다.
마지막은 N입니다. 고개를 흔들어서 동의하라(Nod fo the head) 긍정의 표현이지요. 나 자신이 얘기하면서 고개를 긍정의 모습으로 흔들면 관중도 따라서 머리를 앞뒤로 흔들게 됩니다. 그럼 행동이 의식을 지배하게 됩니다. 관중도 동의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긍정의 답을 얻어내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설득력 있는 연설을 하라는 것입니다. 부드럽게 (S.O.F.T.E.N)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연설에 있어서의 표현방식입니다.
'자 이어서 표현해 볼까요?" 살랑살랑 '메리 펫' 교수는 실제로 시범을 보인다. "미소를 띠면서, 열린 자세로, 앞으로 자세를 숙이듯 다가서며, 분명한 어투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세요." 이것을 끝나지 않았다.
"자, 모두 일어서세요." '메리 펫' 교수의 구령이 우리는 퍼들짝 놀란 듯이 일어나서 애써 연극을 하듯 모양을 갖추어 보았다. 서너 번 반복해서 자세를 연습하고는 발표 순서를 숨죽여 기다렸다.
"자 누가 먼저 녹화에 참여해 볼까요?"라는 질문에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이번에도 나섰다.
"누가 먼저 할까요?"하는 '메리 펫' 교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가 하겠습니다." 역시 내 오른손이 올라갔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학창시절부터 난 항상 먼저했었다.
평가점수가 꼴찌라도 처음 순서는 절대 빼앗기지 않으리. "놀랍군요. 저는 용기 있게 처음 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의 거의 없거든요. 이렇게 먼저 하겠다는 학생이 있으면 강의 성과도 좋고 경쟁심리가 작용해서 좋은 결과가 있기 마련이지요." '메리 펫' 교수는 칭찬으로 나를 높여주었으나, 내 입속은 이미 가뭄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메리 펫' 교수는 운동경기에서나 쓰는 스톱워치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비디오 카메라의 시작 단추에 손가락을 올려 놓은 채 나에게 외쳤다.
"김씨, 준비되었으면 신호를 보내요! 녹화가 시작됩니다. 시간은 2분입니다."
"큐~!" 나는 6초 지난 2분 6초 만에 준비된 연설을 마감했고, 동기들의 세심한 지적도 그다지 문제 되지 않은 소소한 것들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강의가 끝나고 나서 확인되었다. 모두에게 비디오 녹화된 DVD가 다시 나누어 주면서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아오라는 것이 강의의 마무리였다. 오는 토요일 오전, '데이빗' 아저씨와 '코니' 아줌마에게 평가를 부탁하기로 하고 준비하느라고 지친 나는 '메리 펫' 교수가 준 녹화된 비디오를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또 다른 유학의 날이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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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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