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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21] 준비 안 된 자여! 그대는 수업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by Retireconomist 2011. 5. 23.

이른 아침 학생회관의 식당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7시가 되면 도서관이며 강의장이며 학생회관이 동시에 열리지만, 오늘의 UNO의 아침은 천천히 열리는 모양이다. 학생회관 식당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다. 거의 1등으로 들어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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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O의 학생식당, 벽시계가 오전 7시 25분을 가르키고 있다.]

오늘 아침식사 메뉴는 아주 적은 양의 간편식으로 곡물가루를 넣어 죽처럼 떠먹는 요구르트와 별다방 커피 한 잔으로 정했다. 연일 고칼로리의 음식을 먹고는 있지만 단 한 번도 운동을 하지 않고 생활하는 이곳에서는 아침을 먹는 것은 오히려 고역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몸이 받아주질 않는 것 같다. 애꿎은 커피만 틈만 나면 들이키는 이상한 습관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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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침식사, 특별히 오늘은 소박하지만 맛있고 부담없고 깔끔하다. ]

간단 아침을 마치고 강의장으로 들어서면서 우뚝 솟아 보이는 시계탑은 막 7시 30분이 지났음을 가리키고 있다. 교정의 불빛이 아직은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녹이는 듯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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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지나 작은 라운지에는 '오스틴'이 홀로 앉아서 열심히 영어단어를 찾아가면서 오늘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복도에 걸린 비상전화도, 강의장 앞에 긴 의자도, 정보 검색을 위한 키오스크도, 강의장에 들어서도 아직은 누구의 발걸음도 오늘 아침에는 닿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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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의 중 하나가 '토론 시간(Discussion Group)'이다. 자원봉사로 오마하 시민이 대화 상대자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메리 팻' 교수가 진행하는 이 강의는 배우기 보다는 대화하는 용기를 주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으로 가장 긴장도가 떨어지는 수업이다.그렇다고 미국인과의 대화를 방심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은 교수들과는 달리 그저 미국 시민이기 때문에 우리의 배경을 전혀 모른다. 그러니 그들은 양보하는 것도 없이 그들의 속도와 방식대로 말하고 이해한다. 그들에게 이해시키거나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시민이 볼 수 있도록 개발된 대학 게시판에 '오는 몇 일 몇 시부터 몇 씨까지 무슨 내용을 진행할 때 참여할 자원봉사자를 구합니다.'라고 글을 올리면 시간이 있는 시민이면 득달같이 참가 신청을 한다고 한다. 오늘은 백인 남성 두 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덴(Dan)'과 '아담(Adam)'이다.

'덴'은 투자회사에서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을 한 경험이 있는 조기 은퇴자이고 나이는 40대 중반, 그리고 '아담'은 30대 초반으로 트럭운전사를 직업으로 하는 자원봉사자이다.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자신이 밝히기 전에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것을 '메리 펫' 교수가 강조했다. 나 역시 나이차별주의(Agesim)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이를 궁금해하는 문화권에 살고 있으니 대략 알려주는 것이 우리 문화권에 대한 예의로 수용하는 정도. 토론은 1시간의 강의시간과 점심때 1시간까지 이어져서 총 두 시간 이어진다.

강의 직전에 '메리 펫' 교수가 나누어주는 주제와 토론할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씩 짚어가면서 대화를 하게 되는데, 보통 한 미국인에 대해서 두세 명의 학생이 함께 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토론 수업이 아니라 듣기 시간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서로 주제를 이어가려고 경쟁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사진찍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메리 펫' 교수가 오늘은 '덴'과 '아담'의 협조 덕분에 단체 사진에 합류했다. 특히 '아담'의 밝은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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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의 주제는 '미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비즈니스 속어'에 대한 설명과 이해이고 얼마나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설명해주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굳이 비즈니스맨이라고 안 쓰는 것은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해서 비즈니스맨 (Business Man)이 아닌 비즈니스 우먼(Business Woman)들도 있고, 인종차별을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퍼슨 (Business Person)' 또는 '비즈니스 피플 (Business People)'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둘 중에서도 정중한 표현이 '비즈니스 퍼슨(Business Person)'이라고 한다. 영어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나에겐 거듭할수록 외워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오늘 토론은 총 70개에 가까운 '비즈니스 속어'를 목이 타들어가도록 자원봉사 시민이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가족 오락관'에서 귀를 막고 입으로 소리를 듣고 옆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임 같을 정도로 서로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한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오후에는 북미에서 가장 큰 식품회사인 '콘에그라(ConAgra)' 기업 탐방이 예정된 날이다.

'에드 퀸' 주임교수가 기업탐방을 진행하는데, 오늘 역시 출발 전 강의실에 모여서 30분 동안 한 사람 한 사람씩 기업탐방이 준비되었는지를 점검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예고가 있었다.

"준비가 안 된 자여! 그대는 수업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그대는 기업 탐방이 아닌 집으로 즉시 보내주마."
 
'콘에그라(ConAgra)'란 어떤 회사인지? 북미지역에서 이 회사를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듣는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절대적인 식품회사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이번 IPD 과정에 오기 전에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생소한 회사이다. 어제 저녁에 회사 웹사이트를 방문해서 이곳저곳 정보를 기웃거렸지만, 이 작은 오마하에 이렇게 큰 회사의 본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결론은 '이곳 오마하에서 많이 나는 옥수수를 가지고 간편 조리 식품을 만들게 되었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대표적으로 조리법을 아주 간단하게 만든 간편 조리 식품을 만드는 회사 '콘에그라' . 간단하게 이 회사를 설명하자면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 설립되었고, '땅과 함께'라는 라틴 어에서 이름을 따온 식료품 및 잡화, 음식재료, 냉동식품을 생산하는 회사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다. ConAgra (NYSE:CAG). 북미 가정의 98%가 이 회사의 식품을 애용하고 있고, 총 26개 식품 세부 분야에서 1등 또는 2등을 자랑하는 회사라고 한다.
 
기업 탐방을 위한 준비란 것이 그 기업의 역사나 매출 및 이익 규모, 주요 제품과 같은 공개된 정보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웹사이트에 나타나 있지 않은 궁금증에 대해서 질문서를 만들고 예상 답변과의 차이점이 있을 때 그것을 짚어나아가는 것이 준비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네 보이스카우트와 똑같이 이곳 보이스카우트도 '준비'라는 인사를 한다고 한다. 오늘은 보이스카우트처럼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열리지 않는 문이 바로 '콘에그라 (ConAgra)'이다.

기업 탐방을 온 외부인들이 가장 예의 바른 사람들은 선물 같은 것을 가져온 사람들이 아니라, 질문을 많이하는 것이 미국 기업들의 특징이라는 것을 '에드퀸' 주임교수에게서 듣고 조금이나마 준비를 위해 수고한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이바타'와 '다치로'는 선물을 준비해오지 않은 것이 못내 불안한 모양이다. 귀국해서도 다른 기업을 방문할 때는 우리가 궁금한 것을 많이 묻고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에 '에드퀸' 주임교수의 강한 요구가 있어서인지, 30여 분에 걸친 사전 준비확인 절차를 모두 무사히 마치고, 시계탑 주차장에 세워진 전세낸 승합차에 올라탔다. 수학여행가는 기분이 들었다. 운전하지 않고 오마하 거리를 지나치는 기분 또한 좋았다.

기업의 규모답게 길거리 이름도 '콘에그라' 거리에 '콘에그라' 본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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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는 몇 번이고 지나친 경험이 있는 올드마켓과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있었다. 수십 개의 미국국기가 걸려 있는 출입구를 지나니, '콘에그라' 본사가 나타났다. 우리네 대기업의 본사는 높게 올라간 모습이라면 이곳은 낮고 넓게 퍼져 있는 형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이 올라갈 일이 별도 없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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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이 얼마나 삼엄한지 출입자 개인별로 사진촬영을 하고 여권 같은 사진 있는 공적인 신분증을 제출하고 30여 분동안 대기한 후 각자의 출입증을 발급받고서야 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조금은 풀어진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아이들 같은 천진한 모습으로 잠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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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래 사진은 '에드퀸' 주임교수의 사진, 나와 동갑인데 나름 서양식으로 노화진행이 되고 있다.]

놀란 것은 거의 모든 직원들이 지독한 비만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판매 식품을 먹으면 비만이 된다.'라는 것을 설명하는 듯한 인상이 짙어서, 사전에 생각했던 대외적인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에 대한 질의 보다는 사내 직원 복지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콘에그라(ConAgra)' 회사 소개를 맡아 진행하는 직원의 설명 중 한 부분]

또 이 기업의 방문에서 아쉬운 것은 '방문자'를 위한 형식적인 진행이었고, 직원들은 본인의 일과 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설명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에드퀸' 주임교수에게 '사전에 우리는 철저히 준비하고 기업 탐방을 갔지만, 정작 기업은 탐방객을 위한 준비가 전혀 없었던 이유를 물었다.' '에드퀸' 교수는 "'콘에그라'를 대신해서 사과한다."라는 간단한 사과로 답변을 했지만, 회사 소개서 한 장, 기업에서 판매하는 상품 목록 하나 보지 못하고, '인터넷을 참고하라.'라는 성의없는 답변과 직원들의 자기관리 소홀함에 기업에 대한 사전이미지와는 다른 괴리감을 넓히고 돌아왔다.

오늘 저녁, '코니' 아줌마는 따뜻한 옥수수 죽에 쇠고기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저녁을 주셨다. 간편조리식품을 먹지 않고 지내도록 배려하는 '코니' 아줌마가 오늘따라 고맙게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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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녁 메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늘은 간편하고 건강한 식단이었다. 여전히 코니 아줌마의 음식은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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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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