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나는 에스키모인 모양으로 양가죽 코트를 입고 잠자리에서 깨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어제 일요일은 지난 토요일부터 눈폭풍의 여파로 행동의 반경도 줄어들면서 마음의 여유까지 주었던 하루였다. 추위를 견디자는 심사에 내의까지 두둑이 입고 도서관을 오갔으니 홈스테이에 돌아왔을 때,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그 따뜻한 방 기운 때문에 그저 녹듯이 몸이 풀어졌었다.
그리고는 배낭을 던져놓듯 침대 발끝 방향으로 밀쳐놓고 복습과 예습의 흐뭇한 소명 완료의 기분을 잠에 들었던 기억까지.
자다가 추워서 옷을 끼어 입고, 그래도 모자라 또 끼어 입고, 꿈인지 생시인지 깊은 잠결에 추위가 엄습해오니 이유를 찾기 전에 옷을 껴입고 또 껴입고 하다 마지막에는 가장 두터운 양가죽 코트까지 입고 잠이 들었나 보다.
온 방이 그야말로 냉장고 냉장실 아니 냉동실 같은 한기가 돌았다. 몸은 찌뿌등하게 춥고, 지난번 피곤함에 지쳐서 양가죽 코트를 입고 잤던 적에는 땀에 흠뻑 졌었던 기억이라면, 이번에는 추위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을 자다 깨어보니 허리가 새우등처럼 아프다.
방이 추운 원인은 금세 찾아냈다. 보일러에서 온기를 타고 방으로 들어오는 '환풍구'가 배낭이 밀려가면서 닫으므로 막아버린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도 없고, 억울하고 억울하다. 사소한 부주의로 이렇게 '환풍구'를 막아놓고 추위에 덜덜 떨면서 영하 20도의 오마하 겨울밤을 보내다니...
[사진설명: 침대 발끝 쪽 벽 맨 아래 있는 '환풍구' 지금은 안쪽 하단부가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열려 있는 상태를 나타냄]
요상하게 생긴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하니? 이것은 바로 '환풍구' 겸 '난방조절기'이다.
이 환풍구가 나의 홈스테이 방 온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홈스테이는 낡아가기 시작해서 그런지, 이렇게 생긴 모양에 위쪽 가운데 꼭지로 더운 공기 유입구를 조절한다. 물론 모두 열어놓는 것이 영하 20도의 이곳 날씨를 견디는 방법. 얄궂게도 이 녀석을 저녁에 건드렸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들었다가, 그 무거운 양가죽코트를 입고 잠에 들어야 하는 실수를 겪었다.
'난방조절기'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곳 생활은 너무 단조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수용소에서 개미를 수 백 장 그린 죄수의 심정을 이해한다고나 할까. 그저 공부, 토론, 숙제, 발표... 예습, 복습, 토론, 발표, 숙제...
오늘은 새삼스럽게 악수하는 법을 배웠다. 글로벌 비즈니스 수준에 맞춘 악수법.
아침 여덟 시, '레이' 교수의 '글로벌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시간. 역시, 그녀답게 오늘도 변함없이 "좋은 아침!"하는 인사로 정신을 바짝 깨워놓는가 싶더니 갑자기 우리 모두에게 손을 내밀어 일일이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동양인들은 예의가 바르지 않는가? 나이야 나보다 어리지만, 교수님이시니 존경의 뜻으로 앞으로 손을 내밀고 다가오자 벌떡 일어서서 허리를 90도 숙이며 악수를 받았다. 살갗이 닿는 민궁함을 피하기 위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살~살. '레이' 교수의 표정이 떫다. 무슨 벼락같은 반응이 나올까? '이바타'는 여지없는 일본인 손을 빼려 해도 붙잡고 늘어져서 90도에서 100도의 허리 굽힘으로 매달리듯 인사한다. 별로 예의 바르지 않아 보인다. 나중에 물어보니 '황공해서'라고 한다. 이해는 가지만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정답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셉'은 조금은 건방지게 보이도록 몸을 옆으로 틀어서 허리를 세우고 턱을 치켜들고 악수를 받는다. 베트남의 '차우'는 히죽거리는 모습 그대로 히죽거리며 특징없는 악수를 건넨다.
'레이' 교수는 쾌재의 손뼉을 치면서 강의실 가운데에서 호방한 반응을 보인다. "예상한 바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의 악수는 모두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는 낙제점입니다." 우리는 모두들 휘둥그레 주변을 살폈다. '그래도 우리가 악수한 것이 적게는 10년 아니 50년이 다 되어가는 데 낙제점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억지아냐?' 대충 우리 모두의 표정은 만장일치를 보고 있었다.
'레이' 교수가 지적하는 몇 가지는 이랬다. "악수는 우호의 상징입니다. 무기를 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세요?" 모두는 엉겁결에 "네~!"하고 합창하듯 대답했다. "악수는 상호 신뢰의 상징입니다. 잘 해보자는 뜻이 가득 담긴 것입니다. 따라서 악수를 할 때는 굳게 잡으세요. 꽉 잡으세요. 빠지지 않게 잡으셔야 합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반항없이 동의의 뜻을 보냈다. 그리고 "악수는 간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몇 번 흔드는 것이 정답일까요?"
악수할 때, 손을 흔드는 횟수에 정답이 있다? 정답이 있다!
모두 그저 입에서 나오는 숫자대로 대답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레이' 교수가 나를 앞으로 불러 세운다. "김씨, 가장 많은 악수 경험자 같아 보이는데 몇 번 흔드는 것이 정답인지 실험적으로 악수해 보세요." 나는 '오스틴' 과 '이바타', '차우', '셉' 마지막으로 '이바다'와 악수를 했다. 그러면서 얻은 결론은 네 번. "네 번 흔드는 것이 정답입니다." '레이' 교수의 표정에서 거의 무시하듯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하는 것이다.
"두 번 흔들고 터세요." 그것이 악수의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자, 그럼 모두들 나오세요. 그리고 돌아가면서 실습하세요."하면서 '레이'교수는 투툼하기로는 내 손등의 세 배쯤 되는 손을 내밀면서 거의 20~30분의 실습시간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25년 직장생활에 악수하나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달하지 못했었다니.
내가 질문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가 악수를 하면서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악수한 적이 있습니다. 동양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었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로서의 판단은 옳은 예절이라고 생각합니까?"
'레이' 교수는 내 질문에 "우선 묻겠습니다. 악수하는 손이 꽉 잡혔었나요? 사진으로 판단할 수 있었나요?" 나는 "그것은 당시의 판단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왼손이 바지 주머니에 들어간 것만이 관심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레이' 교수의 답은 이랬다. "우선 빌 게이츠는 잘못한 것입니다. 한 손으로 악수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벗어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한국의 예절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는 서구 또는 미국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국 문화와 예절에 기초해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말에 무언가 글로벌 비즈니스가 우리네 정서를 해치며 주장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 다소간 안도감도 생겼다.
"손가락 끝만 살짝 잡는 악수는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모욕하는 것입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방으로 기억합니다. 계약에 깨지는 경우도 빈약하고 메마른 악수 때문에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깊이 강하게 잡으세요." 계속 '레이' 교수의 열띤 강의는 계속되었다. 또 하나, 상대방이 여성이라고 해서 상대 여성이 악수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성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당당하게 여성의 손도 잡으셔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알고 계신 여성분이 있다면 '먼저 본 사람이 악수하기'를 실천하는 연습을 하세요. 여러분에게 교육과 학습의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주변 분들에게도 가르치셔야 합니다.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예의입니다."
오늘은 '꽉 쥐어 두 번 흔들고 털기' 글로벌 비즈니스 스탠다드를 익히기 위해 팔이 아프도록 악수 연습에 빠졌다.
오후 강의에서 '메리 팻' 교수는 20일의 '3분 스피치'에서 '녹화'를 할 예정이라는 엄포를 하면서 수 백번 연습하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3분 스피치' 라... 아직 57일 유학 초반인데, 숨 쉴 틈을 주질 않는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코니' 아줌마가 준비한 저녁 메뉴는 '칠면조 다리' 오븐구이와 삶은 감자, 그리고 파인애플. 기분이 상쾌해진다.
[사진설명: '코니'아줌마가 준비한 저녁. 칠면조 다리 하나가 진돗개 뒷다리만 하다. 감자도 물론 대단히 크고!]
[사진설명: 어찌나 맛이 좋았던지 남은 다리 하나를 또 해치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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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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