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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Publication

[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18] 눈폭풍에 길이 막혀 어쩔수 없이 지식의 터널을 뚫으며 하루를 보내다.

by Retireconomist 2011. 1. 23.

어제 저녁 그렇게 눈폭풍이 불어서 오마하의 거의 모든 교회는 일요예배를 보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TV를 보니 일요 예배를 하지 못한다는 교회 명단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마하한인장로교회에 전화를 걸어 '오늘 예배를 보나요?'하고 물어볼 생각도 있었지만, 오마하 사람들도 두려워할 수준의 눈이 내린지라, 타국에서 위험을 자초하는 것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교회 출석을 미루었다. 교회에 가지 않기로 하고는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는 발칙한 생각도 들었지만, 덕분에 체온으로 더워진 침대 밑에서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10분 20분 까먹다가 여덟 시가 되어서 어기적거리며 일어났고, 집에서처럼 잠옷 바람으로 침대에서 딩굴 거리며 도서관 입실 시간에 맞추어 신문이며 책이며 뒤적이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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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홈스테이를 나서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눈이 너무 부신 일요일 한낮이다.]

일요일 오마하 시내는 눈을 길가로 밀어내는 트럭들만이 분주할 뿐, 적막강산 고요가 가득 차 있다.

길가에 차를 타고 주문을 받는 커피숍들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내세워 어김없이 영업 중이다. 길가 별다방에서 제일 큰 크기의 커피와 함께 스콘 세 개를 사들고는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고독한 쉰 살 한국 아저씨의 일요일 아점은 이렇게 간소하게 마무리 되었다.

낮 열 두 시 반쯤 10여 명의 학생과 도서관에 들어서서는 저녁 시간이 되도록 꼼짝없이 자리를 지켰다. 복습도 이 정도는 해야지, 바깥에 추운 바람을 따뜻한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운치는, 어린 시절 마루 끝에서 앉아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며 밤톨만 한 작은 모래 웅덩이를 만들며 아주 맑은 우물을 만드는 광경을 목격하듯 여유롭고 한가하며 즐겁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설명: 저녁을 먹으러 홈스테이로 가는 길. 유령만이 사는 동네 같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도 없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홈스테이로 가는 길에선 단 한 사람의 행인도 볼 수 없었다.

눈폭풍은 그쳤지만, 설탕가루처럼 가벼운 눈은 높이 쌓였고, 일부 길은 통행금지까지 내려졌다. 도서관에서 밀린 숙제를 하다가 돌아가던 참이다. 길거리의 인적이라곤 찾을 수 없고. 무섭기까지 하다. 역설적이다. 정말 나이 오십에 이 답답하고 작은 시골도시에서 휴식과 여흥과 오락이라는 것과는 모두 담을 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블로그를 통해서 글을 적는 것이 그나마 세상과 소통하는 문이라고 생각하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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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폐쇄된 해피할리 교차로. 홈스테이로 바로 가려면 날마다 이 교차로를 지나는데 눈폭풍으로 폐쇄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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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홈스테이에 들어서면서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고요한 저녁이다.]

오마하가 좋은 세 가지 이유! 역설적이라고나 할까.

좋은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서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닌가?  추운 날씨도 정말 싫어서 뛰쳐나가고 싶고, 작은 바늘에 날을 달아서 얼굴에 베고 지나는 것과 같이 아프로록 매서운 바람, 그리고 길바닥 재질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눈. 이 모두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무엇을 사랑하랴? 그러다 보니 오마하가 좋을 수밖에 없다.

음산한 기분을 이해했는지 '코니' 아줌마는 근사한 저녁을 준비하고 기다리셨다.

역시 '코니' 아줌마의 음식 솜씨는 우리 어머니 다음! 최고예요. 최고!. 오늘 식사라고는 스콘 세 조각에 큰 커피 한 잔이 전부였다는 것을 '코니' 아줌마가 알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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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샐러드 그리고 상큼한 드레싱, 오븐 구운 양념한 생선, 그리고 양파와 볶은 채소에 찐 밥 그리고 디저트까지 완벽한 저녁을 풍성하게 마쳤다.

높이 쌓인 눈이 방음장치처럼 세상의 잡음을 잡아주고, 찬 기운이 나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막아주고, 세찬 바람이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이 완벽한 저녁.

건성으로 배운 비즈니스 세상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온 지금의 오마하 유학 환경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저녁을 먹고는 바로 학교로 돌아섰다. 아직도 배울 것이 그득한데, 저녁은 빛을 따라 밤으로 기울고, 자정이 되어서야 홈스테이로 발길을 되돌이켰다.

오늘은 어린 시절 장맛비에도 평안했던 그 순간을 기억해 낸 것과 같이 머릿속은 맑게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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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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