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등교해서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우리 IPD 동기들의 각자 하루 출발은 너무도 색다르다.
'차우'는 매일 정각 또는 조금 늦게 등교한다. 베트남 출신의 '차우' 역시 나처럼 홈스테이 하고 있는데, 아주 젊은 부부가 홈스테이 주인. 홈스테이 아줌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남편되는 분은 직업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매일 늦게 등교하면서 수업이 시작되면 아주 어색한 표정으로 조용히 들어와서는 의자에 궁둥이부터 붙이고는 눈치를 힐끔거리고 보는 일들이 있어 이유를 물어보니, 이슬람 종교를 가진 홈스테이 학생이 있는데 그 친구의 기도 끝나는 시간까지 모두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6km 정도 떨어진 거리이니, 혹한에 걸어서 등교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늘 지각하는 '차우'가 불쌍하기 그지 없다. 내가 등교를 시켜줄 것을 제안했지만, 한 마디로 거절당했다.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베트남인인데.
'이바타'는 혼자 살고 계신 은퇴한 교수님 집에서 홈스테이 하고 있다. 이 친구는 등교거리가 3km 정도 되는데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 와서는 학생회관 식당 귀퉁이에서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구석에서 샐러드 박스와 별다방 커피를 시켜 놓고 명상에 잠겼다가 수업시작 10분 전에 자리에 앉는다. 우리 동기 중에는 가장 많은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있어 수업 시간에 가장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 '이바타'는 본국의 회사에 교육기간을 연장받으려고 수업이 끝나면 주임교수를 찾아가서 '추천서'를 써 달라고 애원한다고 한다. 결국, 성취하고 만다.
'셉'은 아프가니스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 아프간 북부지역의 경찰간부 집안의 장남으로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란다. 셋째 아이가 두 살인데 딱 한 번 지난해 귀국했을 때 한 번 보았을 뿐이고, 그 역시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서 '달리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다섯 개라고 하는데, 가족보다 '친구'를 우선시하는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수업시간에도 아프간 친구가 전화하면 언제라도 전화를 받아주는 '철없는' 행동을 보인다. 이후 이 친구의 이러한 행동때문에 외부 행사 때에서 말없이 사라지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곤 해서 우리는 그를 '미스터 사라짐(Mr. Disappear)' 이라는 별명으로 흉을 보곤 했다. 순진하지만, 거친 환경에서 살아온 본성이 언제곤 드러나서 맹수가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것 같은 길들긴 했지만, 야생의 본능을 간직한 친구이다. 불행한 과거 때문인지 오른 팔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남의 도움을 청하거나 하지 않는 자존심을 굳건히 지키는 '아프가니스탄' 인이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IPD 과정이 끝나면 또 다른 과정을 미국의 장학재단에서 도움받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셉'은 학교 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고 있지만, 등교시간은 수업시간 딱 1~2분 전이다.
[사진설명: 이 친구가 '셉'이다. 본명은 세불랍둘라. 너무 길어서 전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다치로'의 책상 위에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먼 산을 향해서 시선을 응시하던 '레이' 교수가 "여러분 중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서 수업을 듣고 있지 않은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말을 꺼냈다. 물론 손을 드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여러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문은 셋 중에 어떤 것인가요? 유에스에이투데이, 월스트리트저널, 오마하 헤럴드 트리뷴" 느낌이 이상했다. '이번에 손을 잘 들어야지 뭔가 있을 무언의 벌칙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좋지 않은 느낌이다. 눈치만 늘어서 아마 세계 공인 100단을 될 듯싶다. "자, 첫 번째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가 가장 좋아하는 분?" '레이' 교수의 질문에 손 다섯이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나는 겁도 없이 손을 들지 않았다. "알았습니다. 그 다음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을 가장 좋아하는 분?" 내 오른손만 올라갔다. 5:1이다. "마지막 오마하 헤럴드 트리뷴(Omaha Herald Tribune)을 가장 좋아하는 분?" 아무도 없었다.
칠판에 '레이'교수는 유에스에이투데이에 5라고 벅벅 긁듯이 숫자를 새겼다. 그리고 그 밑에 '월스트리트 저널'에 1이라는 숫자를 가볍게 썼다. 그리고 독설이 시작되었다. 유에스에이투데이(USATODAY)에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 (Elementary 4th grade)'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에는 '직장인 수준 (Business Level)'이라고 표기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여섯 모두는 "으에엥"하는 경악의 소리를 짐승 울음처럼 터뜨렸다.
다양한 '사실(Fact)'에 의존할 것입니까? 다양한 '의견'을 듣고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까?
아침 등교해서나, 점심때 식사를 마치고 오후 수업 준비 중, 강의가 끝나고 도서관에서 잠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확인하기에는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우리에겐 친근한 매체이다. 더구나 편집도 깔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이 필요없는 신문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이렇게 편한 신문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레이'교수의 결정적인 한마디에 다시 우리는 긍정의 상황으로 변하게 되었다.
특별히 지목된 '다치로'는 지난 12개월의 보스턴에서 시작된 어학연수 과정에서 매일매일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를 챙겨보았는데, 이곳 오마하의 IPD 과정 중에 그 친구를 어느 날 갑자기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로 바꾸라는 강요에 가까운 '레이' 교수의 강권에 거의 실신에 가까운 표정으로 답답한 심경을 그대로 쏟아내었다.
이제는 우리들 아침 구독 신문은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로 바뀌게 되었다. 친구와의 이별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비즈니스 세계의 비정함을 감내해야 한다고나 할까. 험하고 심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어디에 서곤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그 상황에 대해서 하나씩 접해 간다는 신선함이랄까? 자부심으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누가 먼저 하겠습니까?"에 대해 나는 본능적으로 "제가 제일 먼저 하겠습니다."로 답했다. 그래서 오늘!
지난 '레이' 교수의 '비즈니스 리딩(Business Reading)'에서는 '신문을 읽는 법'에 대해서 함께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TV에서 뉴스를 접하는 것은 시간적인 여유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방식인 것에 반해서 '신문'을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다양한 능동적인 방식이 적용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내가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내 생각을 반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설명해 나갔다. 기사를 읽으려면 TV를 꺼라! 뉴스를 보려면 TV시작 10분이면 충분하다.
신문기사를 읽기 전에, 이 기사를 왜 썼는지? 어느 정도의 중요도로 다루었는지? 제목은 왜 이렇게 선정을 했는지? 알리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인지? 기사를 쓴 사람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인지? 등에 대해서 기사를 읽기 전에 검토하고 읽기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신문 읽기가 갑자기 싫어진다. 언제고 기사를 이렇게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배웠다면, 빨리 읽는 법정도?
"누가 먼저 할까요?" 나는 지체 없이 손을 들었다. "제가 제일 먼저 하겠습니다."
오늘 '비즈니스 리딩' 두 시간은 내가 진행하는 날이다. 지난 '비즈니스 리딩' 시간에 주제 선정과 내용 요약 그리고 발표를 묶어서 우리 여섯 명이 원하는 순서에 따라 발표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레이'교수가 선언했다. "여러분 수준은 내가 이 강의를 진행한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더 좋은 과정 수행을 위해서는, 비즈니스 관련 문서를 어떻게 읽는가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여러분이 직접 발표문서를 정하고 그것을 우리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학생이 주도해가는 수업방식을 설명하고는 첫 시간 발표자를 손들어 선정하겠다고 했다. 나는 지체 없이 손을 들었다. "제가 제일 먼저 하겠습니다." 수줍은 동양인들 여섯 중에서 이렇게 먼저 나서는 것은 용기라기보다는 만용에 가까웠지만, 어릴 적부터 붙은 언제든지 내가 제일 먼저 하고 말아야 한다는 습관에 가까운 행동이 여기에서도 발휘된 것이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매는 먼저 맞아라.' 물론 이 강의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발표' 등 모든 수업에서 나는 항상 가장 먼저 발표할 사람을 선정할 때, 예외 없이 난 항상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그것이 나를 단련시키고 가장 많이 배우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발표 원천 자료로 지난 2008년 10월 20일 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글로벌 비즈니스(Global Business)' 난에 게재된 "신흥시장이 주는 교훈들(Emerging Lessons)"이라는 칼럼을 택했다.
인용문 Emerging Lessons - Wall Street Journal
이 칼럼은 '비스와나탄' (MADHUBALAN VISWANATHAN, 일리노이주립대 마케팅) 교수와 '로자' (JOSé ANTONIO ROSA, 와이오밍주립대) 교수 그리고 '루스' (JULIE A. RUTH, 루터스대학) 교수가 공동으로 쓴, '다국적 기업이 신흥공업국가에 진입할 때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접근한다면 더 큰 시장이 열릴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발표 방법은 저자들의 학풍과 배경을 이해하고, 전체 내용을 파악하며, 전달하려는 주요 메시지를 정리하고, 그들이 제시한 방향에 대해서 요약하며 그 해결책을 점검하며, 사용된 단어의 적절성을 확인하고, 우리 교육생 모두가 논의할 10가지 토론 주제를 선별하고, 오늘 진행된 전체 내용을 정리하여 다시 한 번 공유하고, 마지막으로 더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응답하면 오늘의 발표는 마무리된다. 물론 '비즈니스 리딩' 강의는 이전에 학습했던 글로벌 스텐다드 15가지 순서에 따른 진행방법을 적용해서, 체계적으로 발표되어야 한다.
[사진설명: '신흥시장이 주는 교훈들'의 발표자료 첫 페이지]
[사진설명: '비즈니스 리딩(Business Reading)'의 시작을 장식한 나의 발표물, 새삼스럽다.]
이 칼럼에 대해서 나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나의 설명은 끝이 났다. 내가 사용한 언어가 한국어인지, 아니면 영어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흥분 되고 긴장된 순간이 지나간 것이다.
두 시간에 걸친 '나의 발표'는 무사히 잘 끝났다. 특히나 동기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무리 없이 답변을 잘 해낸 것 같았다. 배운 데로 빠짐없이 마무리 인사까지 정색하면서 마쳤다.
'레이' 교수가 한껏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당신은 내 예상보다 아주 잘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배낭을 챙기는데 '레이' 교수가 내 책상으로 다가와 "당신은 내 예상보다 아주 잘했습니다. 최고입니다." 그 두 마디 말에 준비하고 긴장하던 피곤이 싹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정말로 인색했던 '레이' 교수의 칭찬이기에 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동기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뒤로하고 수업을 마치자마자 도서관을 향했다. 내 뒤를 이어서 동기들이 나를 모방하고 개선해서 준비할 것이다. 그 사이에 나는 더 앞으로 나갈 것이다. 어차피 나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러 오지 않았는가?
자. 아직 초반에 불과하다. '동기들아. 내가 이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마.' 오늘은 유학 17일째 되는 날. 1월 25일 화요일이다.
[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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