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 데이(Valentine Day)'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방문 앞에 놓인 '초콜릿' 때문.
며칠 전 저녁 시간에 '코니' 아줌마께서 한국에서의 '밸런타인 데이' 풍습에 대해서 듣고는 많이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셨었다. 서양의 그것도 특정 종교와 관련된 풍습이 동양에 전파되어서는 나름대로 새로운 모습으로 정착되어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란 모양이다.
내가 이해하는 한국에서의 '밸런타인 데이' 풍습은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사하는 날.'이다. 뒤에 이어서 사랑을 고백하는 둥 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고 (물론 그 이상은 나도 잘 모른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밸런타인 데이에는 남자들이 전혀 준비에 신경 쓰지 않는 날이고, 한 달 뒤인 3월14일에 다시 화이트 데이라는 것을 통해서 박하사탕으로 보답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연인 간의 풍습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을 할 때마다 내가 바르게 알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을 하고는 식은땀이 흐르는 경우도 생긴다. 아무튼 '코니' 아줌마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적 '밸런타인 데이'에 맞추어 초콜릿을 방문 앞에 놓으신 것 같다.
항상 실천으로 사랑을 베푸는 '코니' 아줌마, 덕분에 한국 생활을 잊게 해주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곧 돌아갈 곳이니 잊어서도 안 되는 곳이니 진퇴양난. 땅콩을 감싼 초콜릿의 달콤하고 쌉싸래한 맛이 등꾯길 내내 입안 가득 흥겹게 만들었다.
'비즈니스 리딩(Business Reading)'의 '메리펫' 교수의 수업이 시작이었는데, 교수님 역시 종이 가방에 한가득 초콜릿을 담아서 나누어 주시고, (이분 역시 동양적 풍습을 이해하신다.) 영어로 밸런타인 엽서를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Be my valentine' 또는 'Be mine' 부족한 내 영어실력으로 해석하자면 '내 것이 되어주세요.'라는 뜻일까?
내 느낌에는 두세 개의 단어로 조합된 문장치고는 파괴력 있고 호소력 강한 의사전달로 느껴졌다.
우연의 일치인지? 홈스테이 '코니' 아줌마가 방문 앞에 놓아주신 초콜릿과 '메리펫' 교수가 나누어주신 초콜릿 제조 회사는 같은 회사. Russell Stover.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 지난주에 다녀온 캔자스시티에 본사를 둔 회사가 아닌가? 맞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바로 나온다. www.RussellStover.com (4900 Oak Street Kansas City, MO 64112-2702 United States) 1923년에 설립된 가장 대중적인 초콜릿 회사 중의 하나다. 비즈니스 공부하러 왔으니, 모든 기업에 관심이 있어야 할 것!
['밸런타인 데이'이기에 빨간 스웨터로 '드레스 코드(권장 옷차림)'까지 맞추고 온 '메리펫' 교수]
[개구쟁이 '차우'가 초콜릿 뒤에 얼굴을 숨기며, 본인은 '한류스타'만큼 얼굴이 작다고 자랑]
이곳에 와서 조금의 변화가 있다면 하나의 물건을 접하더라도 예사롭게 지나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고나 할까? 불과 몇 시간을 다녀온 곳이지만, '캔자스시티'라는 이름이 뉴스에서나 대중 매체에 나오면 관심이 끌리는 것은 체험이라고 하는 귀중한 경험이 만들어준 유산이 아닐까 싶다.
['메리펫' 교수는 자신이 먹을 초콜릿을 자랑했다. '딸기에 묻힌 초콜릿'이다. 유통기한이 얼마나 될까? 시든 꼭지]
미국에서의 풍습은 변함없이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여자가 고백의 날로 아는 사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복도에는 새로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꽃 배달업체에서 쪽지를 들고 꽃을 전달하러 오는 배달원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이 바로 그것.
'메리펫' 교수는 거의 강의에 신경을 못 쓰는 듯, 배달을 오는 배달원들이 강의실을 확인하러 밖에서 서성이면 "빨리 들어와요~! (Hey, Come On~!)"하면서 손짓까지 보이는 적극성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하였다. 우리에게 나누어 준 초콜릿은 빨간색 하트 모양의 포장 안에 세 개의 다른 모양 초콜릿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감사합니다. 유후~!"
[이런 선물을 받는 경우는 처음이다. '교수님'께 받은 '밸런타인 데이' 초콜릿]
물론 선물을 받으면 "지금 열어봐도 되나요?" 하는 물음을 하고 주는 이의 답을 얻고 나서 여는 것이 예의!
[정면으로 보아서는 멀쩡한 모습. 좀 더 두터운 재질을 사용하지, 이게 무슨 망신?]
강의가 끝나도록 끝내 '메리펫' 교수의 부군께서는 꽃다발을 보내지 않았고, '메리펫' 교수는 풀이 죽어서 강의장을 빠져나갔다. 나가시면서 '메리펫' 교수는 "밸런타인 데이에 맞추어서 빨간색의 스웨터를 입었는데..." 하면서 쓸쓸한 말씀을 남기셨다.
'밸런타인 데이'는 이렇게 입안 가득 초콜릿 향기만을 남기고 아무런 인적교류 없이 조용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도서관에 있을 때 '데이빗' 아저씨의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급한 일이 있나?
"헨리, 한국에서 큰 상자로 물건이 도착했다. 내가 방 앞에 같다 두었는데, 궁금하면 지금이라도 집에 와서 보렴, 혹시 오늘이 '밸런타인 데이'라고 해서 선물이 온 것이 아닐까?" 이렇게 '데이빗' 아저씨가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신 경우가 드문 경우라서 반가웠지만, 내일까지 제출할 '졸업 논문 초고'를 마무리해야 하게 때문에 늦어진다는 대답으로 '데이빗' 아저씨의 흥분된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혹시나 아내나 딸이 보낸 '밸런타인 데이' 선물???
늦은 밤, 홈스테이에 도착하니 커다란 종이 상자가 방문을 가로막고 있다. 단박에 지난 2월 초에 한국에 있는 인터넷 서점에 책을 주문했던 책이 닷새 만에 도착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물이 도착한 것이 아니라 실망이 컸다. 굳이 한국에 책 주문을 한 것은, 내가 쓴 책을 보고 싶다는 동기들의 성화 때문에 교수님들과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보여줄 생각 때문이었다.
[정면으로 보아서는 멀쩡한 모습. 좀 더 두터운 재질을 사용하지, 이게 무슨 망신?]
영문으로 인쇄된 송장을 제외하고는 한글로 잘 설명되어 있었다. ' 책과 문화를 사랑하는 OOO 고객님의 물건입니다. 부디 소중하게 다루어 주십시오.'라고! 영어로 표현하지 않아서일까?
[송장에 내 이름 전체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Hyeong Rae Kim. 보통 Hyeong Kim으로 Rae는 중간이름 생략]
종이 상자의 옆구리는 터져서 책이 막 쏟아질 정도로 다 닳아 있었다.
[송장에 내 이름 전체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Hyeong Rae Kim. 보통 Hyeong Kim으로 Rae는 중간이름 생략]
신용카드로 주문한 총금액은 259,490원. 책값을 제외한 배송비는 83,990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인데, 이렇게 옆구리를 다 닳도록 보내주었으니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필시 '데이빗' 아저씨가 1층에서 무겁게 들고 올라오셨을 터인데, 이렇게 훼손된 종이상자를 보고 '대한민국'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때는 지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나는 대한국민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생활하려고, 몸가짐을 조심하게 생활하고 있었건만 이렇게 인터넷 책방 한 곳에서 물거품을 만들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내도 무슨 일로 이렇게 많은 금액을 결제했는지 궁금했을 터인데, 그 많은 돈을 쓰고도 실망 대실망하는 마음으로 가시질 않았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좋았을 것을... 조금만 더 고객의 처지를 생각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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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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