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회사에 하루가 멀게 금융기관 직원들이 서류 뭉치를 들고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가을쯤에는 지나가는 길에 사무실에 들려 아는체 눈인사만 하려해도 쉽지 않았는데, 금융기관 직원들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가볍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
기존의 고객들이 더 이상 수익을 못내고 있으니, 새로운 고객이 필요하겠지요.
지금까지 열심히 금융기관에 드나든 분들은 금융기관에 좋은 고객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수익을 안겨드렸으니, 그런데 지난해 공헌했던 분들이 올해 상반기까지 꾸준히 공헌을 하시다가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많이 위축이 되셨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금융기관들이 그냥 영업을 중단할 수 없으니, 새로운 수익원인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서 발벗고 나섰던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분명 신선해 보입니다.
오랫만에 금융기관 직원들이 고객과 눈높이를 함께 하려는 것 같습니다.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 금융기관 직원들의 잦은 방문을 보고 느낀 점은 차별성도 없고 서비스가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별 조치로 영업점 밖에서도 계좌개설이 가능하도록 되었다면서 상담때문에 자리를 절대로 못뜬다던 금융기관 직원들이, 계좌개설을 위한 금융기관 방문의 절차를 생략해주는 아주 착한 서비스를 해주시더군요. 그런데 요즘들어 갑자기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금융기관들이 앞다투어 방문하십니다. "요즈음 캠페인을 쎄게 합니다. 도와주세요" 하면서, 그런데 국내굴지의 금융기관 계좌개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함께 전달된 한 부속 서류를 보면서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직도 고객을 무시한 서비스 정신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1월 4일, 너무도 친절하게 투자목적을 설명없이 미리 확인해온 서류 중 하나]
"전 지금부터는 적극적 위험감수하고 싶지 않은데,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적극적 위험감수, 위험감수, 위험중립, 위험관리, 위험회피 다섯가지 중에서 제가 제일 선택하고 싶지 않은 한 곳에 형광펜으로 그어져 있었습니다. 금융위기 때문에 걱정들을 많이 하는데, 이 시기에 적극적으로 위험 감수할 용기가 과연 있겠습니까? 그저 자의반타의반에 울며 겨자먹기식의 계좌개설에 동참해 주었는데, 옛 관행은 전혀 버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저에게 전달된 투자목적 기재서만 형광펜으로 그어졌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금융감독원에서 이 글을 보시더라도 혼내달라는 얘기가 아니니 모른척 지나쳐 주세요.
이 서류를 전달해 준 금융기관은 얼마전 일간지 전면광고로 차별화된 서비스로 믿을 수 있는 금융기관이라고 자사 홍보성 광고를 낸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데 정작 고객서비스는 차별성이 없네요. 공부하세요! 공부!!
해외 금융기관의 차별 서비스 사례를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모 금융기관은 대기시간이 제로(0)이라는 서비스를 내세웠습니다. 대기번호표가 없습니다. 오는 즉시 처리. 또 다른 곳은 근무시간을 바꿔 직장인들의 퇴근길에 업무를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아침 늦게 시작, 저녁 늦게 마감. 참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큰 목소리로 시선도 없는 인사를 하는 곳과는 달리, 하이카운터에서는 행원이 일어서서 고객과 눈높이를 같이하면서 고객을 맞이하는 곳도 있습니다. 또 시니어 전용 팜플릿을 만들어 시니어들이 안경없이 계좌개설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하는 곳도 있습니다. 등등 아주 많습니다.
어르신 지팡이를 뺏는 서비스가 과연 칭찬받을 일일까요?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은 불완전판매 사실을 통해서 증폭되고 있습니다. 고객에게 약관을 제대로 이해시켜주지 못한 것이지요. 그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면 불완전판매입니다. 기존 고객의 복지부동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고객을 발굴해야 하는 절박성은 이해합니다만, 과하게 광고로 경쟁하는 모습이나, 그러면서도 준비도 안된 서비스를 남발하는 것은 고객에 대한 태도로는 불손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믿을만하고 차별화된 금융기관이 위험에 대한 태도를 고객께 여쭐 때 형광펜으로 처리하는 것이 차별화된 서비스일까요? 물론 단 한 명의 직원 과잉태도를 빗대어 금융기관 전체를 얘기하는 것은 분명 비겁한 발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단지 이 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 지적당할 일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말로만 하지말고 직접 보여주세요.
일간지 전면 칼라광고에 그저 '차별화 서비스와 믿을 수 있는 금융기관'이라는 것을 구호성 말로만 하지 말고, 시니어를 비롯한 투자자들 모두의 마음은 직접 보이는 서비스를 원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컨설팅 회사에 서비스 컨설팅을 받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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