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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은 믿을 수 없다.

by Retireconomist 2008. 4. 30.
 영국이 ‘음식’을 ‘자원’으로 파악하고 식량을 지배함으로써 세계경제를 지배하였다면 프랑스는 음식을 ‘문화’로 파악하여 식문화로 패권을 추구하고자 한 나라이다.  2005년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영국인을 빗대어 “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사실 그러한 사고방식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전통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요리 이외의 독일 요리, 영국 요리 등은 상류사회 요리가 아닌 농민 요리로 치부한다.  “독일 요리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영국 요리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주장이다.  자신들이 세계 음식문화의 중심이라는 프랑스인의 강렬한 자의식, ‘식(食)의 중화사상’에는 때로 소름끼치지만, 그만큼 자기네 음식에 대한 열정이 특별한 것만은 사실이다.

와인으로 상대의 격을 매기는 프랑스 외교 :

파리의 엘리제궁에서는 요리와 와인을 무기로 전략적인 외교를 펼친다. 흥미로운 것은, 내놓는 메뉴와 와인을 통해 프랑스 정부가 상대의 문화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이나 와인에 대한 지식은 몇 세기 전부터 유럽의 귀족이나 왕족이 갖춰야 할 교양의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인이 특히 더하기는 하지만, 음식에 대한 화제는 유럽인들에게 기본적 교양인 것이다. 따라서 외교에서도 식문화의 수준은 중요하다. ‘외무성이 기밀비로 고가의 와인을 사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지적을 종종 받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메디치가와의 결혼이 프랑스 요리의 시작 

15세기 백년전쟁부터 부르봉 왕조 탄생에 이르기까지 절대왕정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로부터 우수한 식문화가 건너온다. 프랑스 요리에 관한 한 역사책을 찾아보면 “1533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앙리 2세와 결혼하여 피렌체의 요리사를 동반하고 프랑스에 도착한 시점을 근대요리의 기원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 프랑스에서 나이프, 포크를 사용하여 음식을 먹게 된 것은 메디치가의 아가씨가 시집오고 나서부터이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개별 접시에 음식을 먹는 스타일도 메디치가로부터 들어왔다. 카트린이 데려온 요리사들은 수프와 베사멜 등의 소스류, 트뤼프, 그린피스, 아티초크, 브로콜리 등의 요리법을 전해주었고, 잼과 케이크, 마카롱, 프랑부아즈, 프티푸르 등의 설탕과자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도 프랑스 왕궁에 들여왔다. 또 와인 마시는 법도 프랑스 왕실은 카트린의 매너를 채용하였다.

왕궁에서 시민사회로 :

부르봉 왕조는 사치와 낭비가 심했다. 이로 인해 국고가 바닥나고 급기야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왕족과 귀족들의 요리를 담당하던 요리사들은 고용주를 잃고 파리에서 레스토랑을 개업한다. 궁정의 문화가 시민사회로 나오게 된 것이다. 파리는 세계 최고의 미식의 도시가 되었고 1803년에는 유럽 최초로 미식 정보지 『미식가의 연감(Almanach des Gourmands)』이 발행되었다.

빈 회의에서 요리를 외교의 수단으로 :

부르봉 왕조 이래 프랑스에서는 요리가 권력의 과시와 외교의 수단으로서 이용되었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왕정복고 시대까지 외교관을 지낸 탈레랑은 요리를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한 대표적 인물이다. 프랑스는 당시에도 이미 요리를 외교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당시 프랑스 요리의 수준은 그만큼 다른 나라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1814년부터 15년에 걸쳐 열린 빈 회의에서 프랑스의 외무대신이었던 탈레랑은 마리 앙투안 카렘이라는 요리사를 데려가 교섭 상대에게 음식 공세를 퍼붓는다. 현대 프랑스 요리가 확립된 것은 빈 회의 이후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서 일. 19세기에는 로트렉, 알렉상드르 뒤마,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 미식가로도 유명한 저명한 예술가들이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보르도 와인의 등급이 매겨진 것도 19세기의 일. 당시 나폴레옹 3세는 만국박람회에 출품할 보르도 와인에 등급을 매길 것을 명령하였고, 수많은 샤토 중에서 88개소가 선정되어 1급에서 5급까지 등급이 매겨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요리는 문화다 :

유럽이 세계를 석권하고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된 이 200년 동안은 프랑스 요리가 발흥하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국제 정치의 패권은 유럽과 미국에 있었지만 식문화로서 전 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 요리였다. 프랑스 요리는 한마디로 말하면 ‘음식의 문화’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가 영국, 미국과 다른 점이다. 음식을 단순히 영양을 취하거나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서 파악하는 것이고, 또한 와인과 요리와의 복잡한 조합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그것이 때로는 외교상의 미묘한 밀고 당김에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 것이다.

  식탁 밑의 경제학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지음, 유주현 옮김
세계적 경제분석가인 저자는 책에서 바로 이런 '식(食)'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흐름과 역사를 살핀 살피고 있다. 경제와 역사를 읽는 데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그런데 왜 저자는 하필 음식을 통해 경제와 역사를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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