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에서 애국적인 미국의 도시로, 미국적인 도시에서 다시 세계적인 국제 도시가 되기까지 뉴욕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펼쳐진다. 이 책은 신세계 도시들간의 치열한 경쟁, 식민지로부터의 독립, 관리들의 부패, 빈곤, 본토박이들과 새로운 이민자들과의 갈등, 매춘 · 알코올 · 범죄 등 사회 문제들의 발생 등 도시의 틀이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부터 명실공히 자유와 저항 문화의 본산지, 지식과 예술의 도시, 세계 제일의 정치 · 경제 도시로 발돋움하기까지, 뉴욕의 성공을 상징하는 마천루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 세계 최대의 범죄 도시라는 오명도 함께하듯, 뉴욕의 역사 저편에는 해적질로 부를 축적하고, 이웃 나라 전쟁을 경제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부끄러운 과거도 함께 그려진다.
1920년대 말엽에 폴 모랑은 브로드웨이의 불빛에 매혹된다. "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연보라색, 푸른색이 어우러진 불빛이다. 그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늘어지고, 구부러지고, 흐르는 듯하고, 좌우로 펄럭이고, 회전하고, 수직으로 수평으로 춤을 추고, 미친 듯 발광하는 불빛이다." 뉴욕, 그 '영원한 격동의 도시'는 전기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 아마도 모랑은 어렴풋이 브로드웨이가 저속하고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활력과 새로움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듯하다.
브로드웨이의 풍경이 제공하는 것은 분명 대중 문화의 새로운 형태였다. 도시 중심은 물론 외곽에서도 볼 수 있는 뉴욕의 상업적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인 그 형태는, 1890년대부터 생산과 분배 그리고 집단 소비 구조의 발전에서 비롯되었다.
브루클린 남쪽에 있는 코니아일랜드의 유원지와 해수욕장은 많은 사람들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부유한 뉴욕인들이 별장 생활을 하면서 19세기 중반에 얻었던 명성을 상실했다. 때때로 '바다의 소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코니아일랜드는 매춘과 도박, 범죄의 명소로 변했다. 그러자 약삭빠른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덜 수상한 고객을 끌어들이려고 애쓴다.---pp. 273~274
대서양의 베니스
"나는 나폴리 만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어서 딱히 비교는 못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뉴욕 항보다 아름다운 곳은 어디에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방으로 보이는 것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다채롭기 그지없다. 그것들을 일일이 지칭한다는 것은 그저 어휘들을 나열하는 것일 뿐 그 장면을 생생히 그릴 수는 없다. 심지어 터너가 그린다 해도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영광과 광채를 제대로 살려서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마치 황금빛 물결을 타고 뉴욕 항으로 들어가는 듯, 울창한 녹음으로 뒤덮인 섬들 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그 아름다운 도시를 지키는 보초병처럼 뉘엿뉘엿 지는 태양은 매순간 점점 더 멀리 수평선 너머로 빛을 던진다. 흡사 우리에게 빛나는 풍경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하다. 사실 뉴욕은 화창함이 덜한 날에 보더라도 여전히 아름답고 고귀한 도시로 보인다. … 그 어떤 곳도 그처럼 유리한 상황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섬에 있는 그곳은 마치 베네치아처럼 하루 종일 바다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마치 도시들의 여왕처럼 영광의 시대에 육지의 온갖 풍부함을 공물로 받는다."---p. 93
'세계의 수도' 영욕의 400년
‘뉴욕’. 왠지 화려하고 ‘부티’나는, 그러나 9·11테러이후에는 저주받은 풍경으로 가득한 뉴욕. 뉴욕은 세계 제일의 정치·경제도시, 예술과 지식의 보고, 자유와 저항문화의 본산지로 우뚝 섰다. 인디언의 이름없는 정착지에서 대서양 무역의 중심항으로 떠오른 뉴욕의 역사는 참으로 진진하다.
뉴욕. 1624년 네덜란드인들이 상업망을 확장하기 위해 이주한 뉴암스테르담은 어설픈 도시에서 대서양의 베니스 ‘뉴욕’으로 탈바꿈한다. 1776년 독립전쟁후 한낱 이름없는 항구에서 매력적인 도시로 발전한 뉴욕이 미국 그 자체를 대표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미국의 강력한 ‘잠재력’임에 틀림없다.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들에게 24달러를 주고 사들인 맨해튼을 보라. 자본주의의 아성이자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의 표본이 되어버렸다.
뉴욕의 상업적 미술애호 취향, 산업적인 유연성, 자금망을 형성하는 자력(磁力)은 뉴욕을 탁월한 기회의 도시로 만들었다. 센트럴 파크, 소호, 그리니치 빌리지, 브로드웨이, 워싱턴광장, 타워레코드, 피가로카페, 타임스퀘어…. 거기에 푸른 신호등이 이어지면서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뉴욕의 쭉쭉 뻗은 대로변. 그러나 뉴욕은 더 이상 달콤하고 낭만적인 도시가 아니다. 도시의 화려함은 세계 최대의 범죄도시라는 오명과 함께 한다. 1940~50년대에 문화적 헤게모니를 자랑하며 절대권력을 독점했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로스앤젤레스가 뉴욕을 위협하고 있다. 아직은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남아있지만 뉴욕이 미국역사를 주도하려면 타협하는 방법, 조직적인 운용방법을 배워야 한다. 더 이상은 미국문화의 최고봉이 아니라는 현상을 자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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