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해서 더 완벽해 보이는 보수의 수사학
-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역효과 명제
“산업재해보험제도를 도입하면 노동자들은 일부러 자신의 손발을 자를 것이다”
역효과 명제는 단순히 어떤 정책이나 운동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나 좋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회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시도는 당연히 사회를 움직이기는 하지만 의도된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하는 대단히 대담한 지적 책략이다.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용 명제
“혁명의 성과들은 이미 구체제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혁명으로 도대체 바뀐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용 명제는 변화에 대한 시도가 허사라고 말한다. 즉,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어떤 변화라는 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표피적이고 외형적이고 표면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깊숙한’ 사회 구조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위험 명제
“투표권을 확대하면 가난한 바보들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다수파와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다”
위험 명제는 새로운 진보를 위해 옛 진보를 희생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판단하려 한다. 만약 새로운 개혁이 시행된다면 어떻게 해서 귀중한 이전 개혁을 특히 최근에야 이루어낸 그것을 치명적으로 위태롭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세 가지 힘
허시먼은 1980년대 미국에서 세력을 얻어가는 보수주의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을 보며,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가치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의 담론, 주장, 수사법과 같은 언어적 현상이 발휘하는 힘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약 200년간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역사적 변환의 국면마다 작동하는 ‘반작용 레토릭’의 근원을 밝혀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성공과 인권선언, 19세기 보통 선거권의 도입, 20세기 복지국가의 수립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유명한 논쟁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하여 변화에 ‘반동(react)’하고자 하는 세 가지 논리를 추출해낸다. 그 세 가지는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누구나 ‘보통선거권’을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지만, 18세기에는 진보적 비판자였던 입센과 같은 이들도 ‘무능한 다수의 지배’이며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라고 이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렇듯 우리가 지금은 아주 초보적이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도,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하던 당시에는 다양한 정치적 의도가 펼치는 공세들에 직면해야 했다. 허시먼이 주목한 것은 이 ‘의도’를 가진 공세들에게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 실패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 패턴이 발휘하는 ‘힘’은 막강하다는 것이다.
예들 들어 그는 토크빌이 “프랑스 혁명이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이미 그 변화는 혁명 전에 존재했었다”라고 분석하는 데 대해, 그것이 혁명의 성과를 어떻게 ‘무용화’하는 힘을 발휘하는지 등을 밝힌다. 이런 그의 분석은 에드먼드 버크, 토크빌, 메스트로, 귀스타브 르봉, 조지 스티글러, 하버마스 등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에도 미치는데, 고전에서 현대, 좌에서 우를 아우르는 그의 폭넓음이
역사에도 ‘반작용의 법칙’이 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래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이 세 가지 명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어떤’ 풍경들이 떠오른다. 20여 년의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우리는 ‘민주적으로 논쟁하는 법’에 대해서는 조금도 얻은 바가 없는 듯하다. “과잉복지가 되다보니 일 안하고 술 마시고 알코올 중독이 된다”라는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보수 정당의 대표가 지역구에 내려가 ‘복지’를 이야기했다고 해서 같은 보수 정당의 정치인에게 ‘빨갱이’라는 종류의 비난을 듣는다. 그런 형태의 ‘정치적 수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지?”라는 불쾌함과 당혹감으로 결론이 날 뿐이다. 사실은 서로가 거울을 비친 똑같은 ‘상’을 무기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앨버트 허시먼은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빌어 “가장 발전된 민주 정치에서조차 많은 토론들은 ‘다른 방법으로 내전을 계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모습들은 한국에도 재현되고 있다. 하지만 허시먼의 의도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학’의 틀을 ‘드러냄’으로써, 그 주장이 어떻게 ‘비실효적인’인지를 밝히는 데 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가 인류의 역사에 대한 한편의 재미있는 보고서임과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주는 것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러한 레토릭이 ‘자동차 속도 제한에 대한 규제 정책’이나 ‘자녀부양가족지원제도’와 같은 정책적인 문제에 발동하는 측면에 더 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인류 역사의 ‘발전 법칙’이 아닌 ‘반작용의 법칙’을 밝힌 앨버트 허시먼의 저서가 한국에 유효하다면, 바로 이와 같은 현실적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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