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구미-“공고구미가 흔들리면 일본 열도가 흔들린다”는 말이 있다. 한신 대지진 때는 공고구미가 시공한 사찰의 스님이 공중에 몸이 뜰 정도의 강진이었는데 절은 서까래가 조금 비뚤어졌을 뿐이었다. 공고구미의 사장은 아직 시텐노오지 건설 당시 현장 사무소였던, 그리고 지금은 사옥으로 사용하는 건물에 살고 있다. 사장은 현장에 살아야 한다는 철저한 경영 철학이다.
스이료켄-스이료켄의 창업주 마쓰즈카 마고자부로는 처음에 담배 가게를 운영했다. 그런데 한여름, 냉방 시설 없던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오사카역 구내 우물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히야시 아메’ 즉 ‘차가운 비’라는 이름의 빙수를 팔기 시작했다. 빙수 장사에 이어 도시락, 초밥, 맥주 등을 팔기 시작했는데, 맥주병은 훗날 오사카 맥주(오늘날의 아사히 맥주)가 그 특허권을 사기도 했다.
회전 초밥-시라이시 요시아키 씨는 동오사카 공단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공장 직공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빴기에 값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회전 초밥을 떠올린다. 결정적인 단서는 아사히 맥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같이 연구하던 기술자는 90도 급커브 설치에 한계를 느껴 중도 포기했지만 시라이시 씨는 스테인리스 조각을 이어 붙여 회전 초밥 시스템을 완성했다.
가가이로-요정 가가이로는 일본의 역사를 바꿔놓은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다.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오 히로부미 등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비밀 회담을 가진 곳이 바로 가가이로였다. 가가이로(花外樓)라는 이름은 요정을 찾은 기도 다카요시가 ‘花外樓’라고 써준 편액에서 비롯되었다.
요도야 죠안-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 ‘천하의 부엌’을 만든 역발상의 대가. 후시미 성을 쌓으려는 곳에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어 모두 공사를 망설였는데, 요도야 죠안은 공사 발주 금액인 금 500관의 10분의 1인 50관에 공사에 착수했다. 바위 밑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바위를 밀어넣은 것. 요도가와 하천의 제방 공사 때는 돌이 든 가마니를 쌀이 든 가마니와 바꿔준다고 하여 순식간에 제방을 쌓았다. 도요토미가와 도쿠가와가의 전쟁에서는 시체를 치우겠다고 자청한 뒤 당시 고가였던 갑옷을 모조리 수거해가기도 했다.
닛신 식품-안도 모모후쿠 사장은 전후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라면 개발에 나선다. 결정적인 힌트는 부인이 준비하던 튀김요리. 면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 ‘순간 유열 건조법’을 발명한 것이다. 해외 수출을 모색하던 그는 미국 사람들이 젓가락을 사용하지 못해 라면을 컵에 담아 먹는 것을 보고 컵라면을 개발하기도 했다.
뒤늦게 읽은 감이 없지 않지만 흥미와 재미가 그득했습니다. 일본과 용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아쉬움도 남는다.
특히 요도야 죠안의 역발상이 인상적입니다. 도요토이 히데요시 시절, 후시미 성을 쌓으려는 곳에 엄청나게 큰 바위를 발주금액의 1/10에 공사를 맡았다. 바위 밑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바위를 밀어넣은 것. 요도가와 하천의 제방 공사 때는 돌이 든 가마니를 쌀이 든 가마니와 바꿔준다고 하여 순식간에 제방을 쌓았다. 도요토미가와 도쿠가와가의 전쟁에서는 시체를 치우겠다고 자청한 뒤 당시 고가였던 갑옷을 모조리 수거해가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오사카 골목을 샅샅이 뒤져보고 싶다.ⓒ 개구리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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