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턱이 옛날보다 무척 높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는 은행에 방문하면 으레 창구에 있는 직원들에게 모든 고시서와 통장을 한 뭉치 던져놓고 모두 해결될 때까지 잠깐 다른 일을 보고 돌아오면 한 무더기 통장과 영수증을 챙겨주곤 했습니다. 행원과 안면이 있으면 맛볼 수 있는 혜택이겠지요. 그런데 직원들 만나는데 돈을 내야 할 판입니다.
지금은 분초 단위로 업무의 생산성을 관리하고, 전산으로 처리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으면 기계를 이용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처리해야만 하는 일까지도 기계가 처리하도록 개선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통장기장부터 세금납부까지 예전에 은행직원들이 처리하는 업무의 많은 부분을 기계와 마주하며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행원들을 마주하는 일들이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날이면 은행에 들러 사랑방처럼 그간의 안부도 묻고, 혼기 찬 여행원은 늘 상 사윗감을 찾는 어른들의 타깃이 되어 혼사 얘기로 화제 만발했던 사랑방 같은 정감이 있었습니다.
생활의 속도가 빠른 쪽으로 기울다 보니 단순히 소액 예금 인출 같은 업무는 현금자동지급기를 이용하게 됩니다. 카드나 통장을 맞는 방향으로만 맞추어 넣고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기계가 돈을 세어서 뱉어내니 고객입장에서 보면 신기하고 신속한 일처리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은행입장에서도 ‘은행업무자동화기기’가 효자 중의 효자입니다. 보통 하루에 1천 건 이상의 입출금업무를 감당해 냅니다. 이는 창구에 근무하는 직원의 2~3명에 해당하는 업무량입니다. 그저 전원 연결해 놓고 돈만 넣어주면 감기도 들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완수해냅니다. 점점 하는 일을 고도화되어 이제는 은행직원 한 명도 없는 무인점포까지 생겨납니다.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배워두지 않으면 난감할 때를 만나게 되지요.
범죄자들이 카드를 통해 현금 인출하는 장면이 은행업무자동화기기 카메라에 찍힌 장면을 신문이나 방송에 노출되는 것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은행업무자동화기기 (ATM, Automatic Teller Machine)앞에서도 점점 더 서둘러 일처리를 한다는 것 같습니다. 뒷사람이 보나 안보나 신경도 쓰이고...
얼마 전 친구가 은행자동화기기 앞에서 현금을 강탈당했다고 억울한 얘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이 친구가 은행자동화기기에서 예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비밀번호'까지 입력하고 '거래내역을 받으시겠습니까?' 하는 단계 중에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입니다. 마침 걸려온 전화는 국제전화라고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친구를 아는 듯 근황을 물어와 아니라고 답을 하고 끊으려 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본인 확인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금새 끊지를 못했지요.
전화 통화하면서 운전을 하면 위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화를 받으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높은 집중도가 필요합니다. 정중하게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답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로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은행자동화기기’에서 자동으로 나온 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눈앞에서 돈이 사라진 것이지요. 본인 이외에 다른 사람이 주변에 서성인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지요.
뜻밖에 쉽게 사건은 해결되었습니다. 은행자동화기기는 일정시간 동안 돈을 고객이 가져가도록 문을 열었다가 30초가 지나면 기기 안으로 돈을 다시 가져가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현금 인출을 시도했다가 찾아가지 않으면 돈은 다시 은행 측이 보관하는 것입니다. 깜빡 건망증 증세가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훌륭한 안전장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는 다음날 은행을 찾아가서 본인이 **월 **일 **시 **분 경 인출을 시도했으나 돈을 찾아가지 않아서 사실 확인을 하고자 하러 왔다고 하니, 직원들이 상냥하게 관리하는 장부를 보고 확인하더니, 틀림없음을 확인하고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경우가 생각보다 주변에서 많이 발생하였더군요. 자신이 찾아가고도 억지를 부리거나, 정말로 다른 사람이 가져가도록 내버려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전하게 관리된다는 것을 기억해 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은행업무의 자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그렇다면 자동화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을 위해 좀 더 배려하고 특화된 기기가 서비스 일선에 배치되기를 기대합니다.
김형래 (주)시니어파트너즈 상무. COO (hr.kim@your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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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조선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28/20110128009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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