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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제학》

by Retireconomist 2020. 12. 14.

√ 불평등, 격차를 넘어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한 새로운 모색
√ 레온티예프 상 수상자, 세계적 경제 석학 새뮤얼 보울스의 30년 연구
√ “인간 선택에 숨겨진 작동원리를 규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 조지 애커로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추천

19세기와 20세기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끌어온 것은 노동자와 소농, 도시 빈민의 운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자유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다시 한 번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유주의가 불평등을 심화하는 경제모델과 결합해버린 이상, 이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보호주의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그저 지역 중심적 사고방식만을 확산시킬 뿐입니다.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약자와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데 헌신하는 사회에서라면, 그리고 급격한 기술 변화와 세계화에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경제적 불안정성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사회에서라면, 사라질 위험에 처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가치들을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적 자유주의가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필요합니다.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라는 이 책의 부제가 가리키는 것처럼, 《도덕경제학》에서 제시된 여러 증거들은 새로운 경제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줄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 ‘한국 독자들에게’ 중에서

보상, 처벌, 규칙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의 비밀을 파헤치다
레온티예프 상 수상자, 세계적 경제 석학 새뮤얼 보울스의 30년 연구 역작

2001년 보스턴 시 소방청장은 소방대원들의 병가가 이상하게도 월요일과 금요일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해 12월 1일 무제한 유급 병가제도를 폐지한다. 대신 연간 유급 병가를 최대 15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그만큼 급여에서 삭감하도록 했다.

 

소방청장의 의도대로라면 새롭게 도입된 인센티브 정책에 따라 소방대원들의 병가가 줄어들어야 했다. 현실은 어떠했을까? 소방관들은 같은 해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전해에 비해 무려 열 배가 넘는 병가 신청을 내며 제도에 저항했다.
그러나 소방청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보복조치로 소방대원들에게 지급하던 휴가 보너스를 폐지했다. 소방대원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듬해 소방대원들이 신청한 병가 일수는 총 1만 3,431일로 아무런 제한이 없던 전해의 6,432일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많은 소방대원이 새로운 인센티브 제도에 모욕감을 느꼈고, 제도를 남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앞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윤리의식, 즉 부상을 당하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공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렸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얼핏 멍청하기까지 보이는 소방청장의 모욕적인 제도는 사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이론을 반영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로부터 흄을 거쳐 근대 경제학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상가들은 제도(법질서 혹은 시장)를 설계할 때 이로부터 영향을 받게 될 ‘시민들은 부정직하며 자신의 이익 말고는 어떤 다른 지향도 갖지 않다’고 전제했다. 따라서 제도란 개인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는 전제하에 보상과 처벌을 중심으로 고안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보스턴 소방대의 사례처럼 경제학의 신성불가침한 전제로 여겨지는 ‘이기적 인간’이란 명제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저명한 경제학상 ‘레온티예프 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의 지평을 넓혀온 선구적 학자로 주목받아온 새뮤얼 보울스(Samuel Bowles)는《도덕경제학》에서 ‘보이지 않는 손’ ‘이기적 인간’이란 주류 경제학의 명제가 실제 사회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이를 통해 인간 행동에 숨겨진 작동 원리를 정리했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불평등이 심화되는 전 세계적인 현상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몰아냄 효과 :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다

 

인센티브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과 수준으로 이끌기 위해 고안된다. 쉽게 말해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것이 인센티브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인센티브에 둘러싸야 살아간다. 교육기관은 학생들의 학업을 독려하기 위해 상장을 수여하는 등의 여러 인센티브를 만든다. 회사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성과급 체계를 설계한다. 일상에서도 이런 인센티브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늦지 않도록 벌금을 매기거나 자녀가 책을 읽으면 용돈을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인센티브다.

 

하지만 인센티브가 의도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상이나 돈 등 물질적 보상의 결과를 측정하기 어렵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진정한 동기가 왜곡(용돈을 받기 위해 책을 읽는다)기도 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했는데,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거나 효과가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켜 ‘몰아냄 효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새뮤얼 보울스는 사람들은 보상과 벌금이라는 인센티브를 주지 않더라도 타인을 도우려는 성향이 있으며, 인간 본성의 이타심에 호소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데 경제적 인센티브가 이런 인간의 성향을 ‘몰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도덕경제학》은 몰아냄 효과를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던 인센티브와 인간 행동의 상관관계를 밝혀낸다.

 

첫째, 인센티브는 인센티브를 설계하거나 제공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예컨대, 특정 행동에 대해 벌금과 처벌이라는 인센티브를 설계하게 되면, 그 제도를 적용받는 사람들이 감시나 벌금 없이는 올바른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정보가 함께 전달된다. 이렇게 인센티브와 함께 전달되는 ‘불쾌한’ 정보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손상되고, 이것이 앞에 살펴본 보스턴 소방대의 사례처럼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둘째, 경제적 인센티브는 자칫 도덕적인 판단 없이 이기적인 선택만으로 의사결정을 해도 된다는 사인을 주어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경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금전적 인센티브가 제공되면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도덕과 거리두기를 해도 좋다는 식의 맥락적 암시(여기는 시장이다. 네 맘대로 이익에 따라 행동해도 된다!)를 주게 된다.

 

셋째, 인센티브는 내 행동이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되는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더 이상 자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든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계속 상을 주면 상을 주지 않아도 흔쾌히 했던 일에 더 이상 의미나 흥미를 두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세 번째 효과가 지칭하는 바가 이것이다.
이처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여겨지는 보상, 처벌 중심의 경제적 인센티브는 인간의 이타적 본성을 마비시키고 때론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자유주의 사회, 개방된 시장일수록 시민 사회가 건전하다

 

그렇다면 인센티브 제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장은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행동이 줄어들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가득한 불공정한 사회로 변화시킬까? 새뮤얼 보울스는 오히려 아니라고 답한다.
산업화 이후 여러 사상가들이 시장의 확대가 도덕성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센티브의 몰아냄 효과를 보더라도 이런 우려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새뮤얼 보울스는 여러 역사적 사례와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가 길고 시장이 지배적인 사회일수록 시민적 덕성이 더 잘 관찰되었음을 증명해 낸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곳일수록 도덕적 시민이 더 많이 발견된다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저자는 시장은 도덕적 덕성을 몰아내는 경향을 갖고 있지만 자본주의 발달(시장의 확대)와 함께 등장한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토대들(국가적 차원의 사회보험, 자유주의적 법치 등)이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는(혹은 도덕적 행동에 따르는 비용을 감소시키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시장은 비록 인간의 도덕적 행동을 몰아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시장의 확장은 족벌이나 일부 계층이 좌우하던 닫힌 사회를 변화시켰다. 지리적, 직업적 이동성과 법치 같은 자유주의 사회의 여러 측면이 시민적 덕성을 유지시키고, 사회적 질서를 보존하는데 기여한 것이다.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해 경제학은 어떤 해답을 줄 것인가

 

그렇다면 최근 자유주의가 불평등을 심화하는 경제모델과 결합하면서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른 불공정, 격차를 경제학은 어떻게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도덕경제학》의 세 번째 주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학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간 자유주의적 지향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포함한 제도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첫째, 모든 경제주체들이 제도(조직)에 참여하거나 이탈하는 데 어떠한 제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자발적 참여조건). 즉 진입과 이탈은 자유로워야 하며, 현재의 상황이 내게 좋지 않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그 상황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조건은 달리 말하자면 어떤 관계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완전히 개인의 자유여야 하며, 따라서 개인을 억압하는 어떠한 족쇄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설계된 제도 하에서 나타난 경제적 결과는 효율적이어야 한다(효율성 조건).

 

셋째, 사람들의 본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된다(선호의 중립성 조건). 즉, 개인의 선호란 외부자(타인이든 국가이든)가 간섭해서는 안 되는 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로부터 시작해서 흄을 거쳐 근대경제학에 이르는 동안 많은 이들이 생각했던 부정직한 자들을 전제로 한 제도(법질서 혹은 시장)란 바로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제도이다. 이들은 모든 시민들이 부정직하고 자신의 이익 말고는 어떤 다른 지향도 갖지 않는다고 전제한 다음, 그런 시민들이 자신의 이익에 비추어 자유롭게 선택한 행동들이 효율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하고자 했다. 주류 경제학에서 이상향으로 삼고 있는 완전경쟁시장도 바로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향은 극도로 비현실적인 가정이 충족되어야만 가능하기에. 그리고 현실의 (불완전한) 시장이 이러한 비현실적 가정을 충족하지 않기에, 그 이상형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장을 좀 더 이상형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정책적/제도적 개입이 요구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 세 가지 조건은 결코 동시에 충족될 수 없음을 논증한다. 이를 통해 진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선호가 중립적인 상태에서는 효율성 조건이 위배될 수밖에 없으며, 효율성 조건과 선호의 중립성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제도는 자발적 참여조건을 위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보울스는 만약 이 조건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선호의 중립성 조건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무엇에 따라 동기부여가 되는지를 사적 영역의 문제로 간주한 채 이에 대해서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적(그리고 경제학의) 제도 설계가 요구하는 조건이지만, 그러한 전제하에서 제도를 설계하는 경우 몰아냄 효과 등으로 인해 실패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대신 ‘도덕적이고 시민적 덕성 갖춘 개인’이란 전제아래 시민들의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덕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제도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도덕경제학》은 주장만을 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30년 동안 여러 동료 학자들과 연구하고 토론하며 다양한 연구와 사례 분석을 통해 촘촘히 논증해낸 결과물이 담긴 책이다. 근 반세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손’을 맹신하는 불평등한 시장구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불평등, 차별, 공정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19~20세기 자유주의 확대를 가져온 시민의 덕성과 연대를 복원하고, 약자와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갖춘 사회일수록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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