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Lifestyle/책Book

《도비문답》이시다 바이간

by Retireconomist 2020. 12. 12.

ㆍ 일본 상도(商道)의 경전 이시다 바이간의『도비문답』

동양의 애덤 스미스라 불리는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은 “생각 있는 기업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석문심학’을 창설한 장본인”이다. 그가 1739년 출판한『도비문답』은 이후 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기업인들의 경전’이라 불릴 만큼 많은 기업인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은 흔히 듣게 되는 ‘고객만족’, ‘품질관리’, ‘사회공헌’ 등이 이미 이시다 바이간이 이 책에서 일찍이 주창했던 가치이다.


지금도 일본 기업인들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할 경전으로 꼽히는 이 책이, 공유경제와 윤리적 소비 등이 새로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때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되어 선보인다. 기업의 경영과 윤리를 함께 논한 이 책을 두고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일본 산업혁명의 사상적 동력이자 일본판 청교도윤리!”라고 극찬했다.


천지자연의 이치에 합당한 ‘사람의 사람다운 길’로서의 ‘상도’를 주창한 이시다 바이간의『도비문답』은 1935년 이와나미 문고에서 새롭게 발간된 이래, 2016년까지 18쇄를 거듭하며 일본인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고전이다. 또 경영의 신이라고 불렸던 파나소닉 창업자 마츠시타 고우노스케가 가장 애독한 책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교세라와 KDDI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21세기 기업의 존재 방식을 이시다 바이간에게서 배워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처럼 오늘날 일본의 저명한 기업인들의 철학과 윤리관에 이시다 바이간은 큰 정신적 축을 제공하고 있다.

ㆍ “돈은 사람을 돕는 공복이며, 부의 주인은 세상 모든 사람이다.”

『도비문답』은 다양한 고민을 지닌 이들이 이시다 바이간을 찾아와서 던진 질문들과 거기에 대한 그의 대답을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다. 생산량이 증가하고 재화와 인력이 도시로 집중되던 에도 시대는, 상인 계층의 성장 및 급격한 경제 발전에 발맞춰 사회 전반을 통치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가 요구되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출현한 이시다 바이간의 사상은 당대의 상업 윤리와 일상에서 지켜야 할 덕목을 어렵지 않은 말로 설명하여 많은 사람에게 널리 전파된다.
이시다 바이간이 쉬운 말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학문이 이론적 연구에만 치중하지 않고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시다 바이간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상인의 길을 걷다가, 37세라는 당시로 치면 그리 젊지 않은 나이에 승려 오구리 료운과의 만남으로 ‘마음(道理)’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45세에 그의 고향 집에 강의실을 열어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펼친다. 일반적인 학제 시스템 속에서 정해진 책들을 순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독학으로 학문을 닦았기에 그의 시각은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글 쓰는 방식도 기존의 문학(文學)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물에 하늘이 부여한 도리는 평등하다. 하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형태’에는 귀천(貴賤)의 나누어짐이 있다. 즉 귀의 형태를 가진 것이 천의 형태를 가진 것을 먹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하늘의 도리이다. 또한 불교의『열반경』에는 “초목국토실개성불(草木國土悉皆成佛)”이라고 되어 있기에 만물은 모두 부처인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형태에는 귀천이 있어 귀의 형태를 가진 인간불이 천의 형태를 가진 오곡불(五穀佛), 과일불(果物佛), 수화불(水火佛)까지 먹으며 이 세계가 성립되어 있다.
-도비문답 ‘속인들은 왜 살생을 하는가’ 中

이시다 바이간에 따르면 만물은 평등하나 형태에서 귀천이 나뉠 뿐이며, 귀한 것은 언제나 천한 것의 도움을 받아 ‘길러진다’. 온갖 생명과 사물의 귀천을 떠나서 그것들의 ‘마음(道理)’에 집중한 이시다 바이간이었기에, 그의 사상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시다 바이간의 사상이 ‘석문심학(石門心學, 마음공부)’이라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리하여『도비문답』은 서민에서부터 통치자에 이르기까지 에도시대 모두의 상식으로 널리 통하게 된다.

ㆍ 수많은 경영인 및 일본인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이시다 바이간은 이 책에서 경영자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돈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지 않고 ‘자신은 이러한 일을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주인의 뜻은 그야말로 세상에서도 아주 드문 것이라 할 것이다. (…) 위급한 처지에 있는 이를 돕는다는 것은 곤궁한 이를 돕는 것이다. 부유한 이에게 보태는 것이 아니라 함은 부유하여 여력이 있는 이에게는 도움이 필요 없다는 의미이다. 그대의 주인이 물욕을 버리고 돈을 내놓아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성인의 의지와 통하는 것이다.
-도비문답 ‘경영자란 어떠해야 하는가’ 中

이시다 바이간은 돈을 좇아 인정을 저버리는 세태를 경계하며, 부의 축적이 개인의 영달에 국한되지 않고, 곤궁한 이들과 ‘공존’하게 하는 도리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정직, 배려, 검약, 신뢰 등의 가치를 강조하는데, 이는 당대를 넘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쳐, 우리가 일본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실로 근현대 일본인의 사고방식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인 한일관계상 우리가 그토록 진저리를 치는 일본의 중요성과 장점을 거론하는 것은 스스로 토착왜구라는 명패를 세상에 내보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만큼 우리는 일본에 관한 한 학문의 영역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감성적 분노로 임할 것을 주문받는다. (…) 고대에 그랬듯이 미래에도 일본은 우리와 가까울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라도 이 책을 꼭 일독하기 권하는 바이다.
-추천사 中

과거 양피지에 문자를 기록했던 시기, 동물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는 워낙 귀했기 때문에 쓴 내용을 물에 빨아서 지우고 그 위에 덧쓰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다 보면 양피지 위에는 이전에 쓴 자국이 희미하게 남게 되는데,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글이 함께 있는 상황을 ‘팔림세스트’라고 한다. 에도시대 사람들의 생활철학이었던 『도비문답』은 이후 일본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된다. 이를 살펴보면, 이시다 바이간이 의도했던 바가 긍정적으로 실현되었던 때도 있으나, 그의 사상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때도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21세기에『도비문답』을 읽는 것은 이 책이 통과해 온 시대의 여러 흔적을 읽음으로써 이시다 바이간의 사상이 지닌 공과를 점검하고, 그것과 긴밀히 연결된 과거와 현재의 일본을 더욱 분명히 바라보는 작업이다. 더불어 그가 내세운 도리, 검약, 배려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책이 나왔던 당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생명력을 지닌 ‘명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도비문답』. 약 300년 전 이시다 바이간을 찾았던 수많은 이가 그와의 대화를 통해 ‘삶을 위한 지식’을 전수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품었던 여러 의문에 대한 조언 역시 책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