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사회와 경제가 직면한 과제는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성장률도 끌어올리고 양극화도 완화하고 공동체 문화도 복원해야 한다. 성장 대 분배, 시장 대 정부, 작은 정부 대 큰 정부, 기업 대 노동. 이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척하는 이분법적 사고로는 이 과제를 풀어나갈 수 없다. 굳이 진영 논리로 말하자면 성장을 중시하는 ‘오른손’과 분배를 중시하는 ‘왼손’을 다 같이 써야 한다.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방전도 실용적이고 융합적이어야 한다. 진영의 논리는 이상적이지만 경직돼있다. 현장의 논리는 현실적이며 유연해야 한다. 이 책에서 살펴본 한국과 미국의 역대 정부들은 실제로는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 성격의 정책을 모두 사용했다. 현실이 요구할 땐 상대 진영의 정책도 과감하게 빌려 썼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 경제의 위기 돌파를 위한 방안으로 ‘왼손’과 ‘오른손’ 정책을 다 쓰는,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양손잡이 경제’를 제시한다.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문제는 중국 쪽에서 생겼다. 저임금에 바탕을 둔 저가의 상품을 경쟁력으로 삼아온 중국이 어느 순간부터 제조업과 중화학공업의 기술 수준을 높이더니 첨단기술에서는 우리를 추월해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120개 중점 과학 기술에 대해 미국, EU, 일본,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 대비 한국의 기술 수준은 76.9%로 중국의 76.0%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미국과의 기술격차를 기간으로 표시하면 한국과 중국 모두 3.8년으로 차이가 없다. 기술 수준에서 중국에 따라잡힌 것이다. 120개 중점 기술을 11개 분야로 분류해서 보면, 한국은 건설·교통, 재난 안전, 기계·제조, 소재·나노, 생명·보건의료 등 7개 분야에서 중국을 근소하게 앞서고 있으나 에너지·자원은 기술 수준이 같다. 특히 우주·항공·해양과 국방 기술은 오히려 중국이 한국에 2~3년 앞서 있고, ICT와 소프트웨어 기술도 중국이 우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1장 양손잡이 경제가 답이다!〉 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에는 적대감, 불만, 경계심,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중국은 1979년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 명함을 내밀기 시작한 데 이어 2001년 세계무역기구 WTO에 가입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의 일원이 됐다. 미국은 중국이 이런 변화를 통해 저임금에 바탕을 둔 저가의 상품을 공급하고, 대규모 내수 시장의 문을 열어 세계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중국이 내수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하는 상태에서 제조업에서 미국을 제친 데 이어 단숨에 첨단기술에서까지 미국의 턱밑에 접근하자 80년대에 ‘일본 경보’를 울린 것처럼 이번에는 ‘중국 경보’를 발령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분위기는 미국 공화당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제2장 미·중 패권 경쟁, 대충돌로 가는가〉 에서
영향력 있는 미국 CEO 181명의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2019년 8월 주주 우선주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이례적인 선언을 했다. BRT는 1978년 이래 ‘기업지배구조의 원칙(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에 대해 정기적으로 발표해왔는데 1997년 이후 발표된 원칙은 기업은 기본적으로 주주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주주 우선주의였다. 주가를 최대한 올리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에게 ‘현금선물’을 하는 게 기업의 목적으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BRT는 이번에 새로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원칙에서 기업의 목적은 고객, 근로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기업이 중시해야 할 이해관계자 중 주주의 순위가 맨 뒤로 밀렸고, 주주에게는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는 게 기업의 목적이라고 밝혀 단기이익을 배제했다는 점이다.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기본 틀이 돼온 주주 우선주의에 대해 CEO들이 종지부를 찍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선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제3장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깃발〉에서
한국 경제는 현재 어떤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회에 우리 경제가 앞으로 걸어갈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와 공감대가 존재하는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현안 처리에 몰입하다보니 ‘항로’ 자체에 대한 논의가 실종돼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과 영국이 한때 깃발을 들었던 신자유주의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좌초했다. 전 세계적인 양극화 심화와 이에 따른 포퓰리즘의 확산 등 큰 상처를 남겼다. ‘유러피안 드림’으로 상징되는 유럽식 복지 시스템도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간판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지금 세계 경제를 점유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큰 두 축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판이 서로 충돌하면서 저성장 국면의 글로벌 경제에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고부담·고복지의 자생적 해법을 유지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 행복을 가져온 ‘노르딕 모델’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어느 길을 가려 하는가? 아니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저자의 에필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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