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적 세계관’ 하면 대개 ‘신 중심의 비합리적 중세를 타파하고 인간과 이성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게 된 합리적 관점’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과학적, 합리적, 휴머니즘적 사고조차 2천여 년 동안 도도히 흘러온 기독교의 저변 위에서 생겨나고 발전한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서구 사회와 서양인의 세계관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톰 홀랜드의 《도미니언》은 이에 대해 명쾌하면서도 깊은 통찰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탁월하게 직조하는 이야기꾼
톰 홀랜드가 펼쳐내는 신과 인간의 2500년 연대기
세계적인 역사 저술가 톰 홀랜드는 《루비콘》(2003)으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논픽션 분야 상인 새뮤얼 존슨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헤셀-틸먼상을 수상했다. 이후 《페르시아 전쟁》(2005), 《이슬람제국의 탄생》(2012), 《다이너스티》(2015) 등 걸출하고 묵직한 고대 제국사를 주로 집필해오면서,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일관되면서도 확장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정평이 났다. 이는 그가 소설가 출신이라는 데 기인한다. 《뱀파이어》(1995, 당시 27세)를 시작으로 《뼈 사냥꾼》(2001)까지 여섯 편의 소설을 쓴 경험은, 이후의 논픽션에서도 소설 같은 스토리텔링의 토대가 되었다. 이번 책에서도 그런 면모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톰 홀랜드는 기독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서구 사회와 서양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과감하면서도 우아하게, 역설적이면서도 균형 있게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전개된 과정을 파노라마 같은 조감도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기독교적 영향의 여러 흐름을 압축적으로 추적한다. 이를 위해 고대 로마부터 비틀스와 메르켈 총리까지 2500년을 21개 장으로 나누면서, 각 장을 ‘혁명’, ‘육체’, ‘우주’와 같은 핵심 키워드로 묶는다. 장마다 개별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세 단락은 해당 장의 키워드로 일관된 흐름을 형성하고, 그러한 맥락이 점차 장을 거듭할수록 쌓여, 독자는 지금의 세상에까지 기독교가 미쳐온 영향력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성장한 세계의 전제 조건들(사회가 조직되는 방식과 그 사회를 유지하는 방식)은 고전고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생겨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서구 문명 속에 들어 있는 기독교의 과거에서 생겨났다. 기독교가 서구 문명의 성장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깊고 커서 마침내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되었다. 기억되는 것은 불완전한 혁명들뿐이다. 다시 말해 그 승리가 당연시되었으나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만 기억된다. 기독교의 승리는 너무나 완벽해서 아예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 이 책 《도미니언》의 목표는 기원후 3세기에 집필 활동을 한 어떤 기독교인이 말한바 “그리스도의 홍수 같은 물결”이 흘러간 과정을 탐색하는 것이다.” - 〈서론〉 (32~33쪽)
모순과 역설,
기독교 세계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톰 홀랜드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는 그가 10대 때부터 가져온 기독교의 비합리성에 대한 의구심과, 그럼에도 서유럽인으로서 자신이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사고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이러한 ‘모순’과 ‘역설’이 곧 이 책의 서술방식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이는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뚜렷하게 드러난다. 십자가형은 고대 로마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경멸받은 “최고의 형벌”이었다. 그런 만큼 반항적인 노예에게 부과하기에 가장 적합한 징벌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처형 이후,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로마인들 대다수에게 매우 혐오스럽고 기괴한 일이었다. 심지어 당시 기독교인조차 ‘십자가형’이라는 형벌을 비참하게 여겨 시각적 형태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백 년 뒤 십자가형은 죄악과 죽음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 되었으며, 천 년이 넘자 전 인류사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헌신과 연민의 아이콘이 되었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20장 16절)라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그 자체로 역설이었고, 이후 모든 상하주종 관계에서 이 역설은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모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500여 년 뒤, 부주의한 당국에 의해 처형된 하느님을 숭배하는 기독교 교회가, 이제 반대로 이른바 ‘박해하는 사회’를 감독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와 그 종교를 탄생시킨 세상의 상호 관계는 이처럼 역설적이다. 신앙은 고전고대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인 동시에 그 시대의 완전한 변모를 보여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페르시아, 유대, 그리스, 로마 등 여러 전통을 하나로 취합하여 형성된 기독교는 그 신앙을 처음 배출한 제국의 붕괴 이후에도 살아남았고, 그 후 한 유대인 학자의 말을 빌리면, “일찍이 세계사가 배출한, 가장 강력한 패권적 문화 체제”가 되었다. 중세에 들어와, 유라시아의 그 어떤 문명도 라틴 서방처럼 여러 전통을 취합한 단일한 신앙 체계의 지배 세력으로 부상한 적이 없다.” - 〈서론〉 (24쪽)
이러한 모순과 역설은 한편으로 중세 이후 지배적 세력이 된 기독교 교회, 그리고 대항해 시대 이후 전 세계를 점령ㆍ지배하게 된 서유럽의 지위 변화에 크게 기인한다. 과거 고대 사회에서는 박해받는 소수 세력으로서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그들이 주류 지배 세력이 된 뒤에는 바로 그러한 기독교의 가르침에 스스로의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세 이후 서양의 갈등은 가르침과 모순되는 행위에 대한 당사자 자신의 고뇌이자,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려는 자들과 그 가르침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달리 받아들인 자들 사이의, 일종의 교리 해석 싸움이었다.
“만약에 그들이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내준다면, 어떻게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께서 과연 사회의 기본 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바라신다는 말인가? 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자선을 구하겠는가? 부자들이 점점 더 기독교 신자로 편입되는 세상에서 이런 질문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5장 자선 | 362년, 페시누스〉 (209쪽)
“[1738년에] 필라델피아 퀘이커교도들의 연간 총회에 참석한 레이는 … 장내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목소리로,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는 것이 “모든 나라와 모든 피부색의 인간을 똑같이 바라보고 소중히 여기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눈엔 어떻게 보이겠소? 내가 이 성경을 칼로 찌르는 것처럼, 당신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심장을 찌르는 거라고 여기실 것이오”라고 했다. 이어 레이는 움푹 파낸 성경 속에 넣어 둔, 피처럼 붉은 포크베리 주스가 든 주머니를 칼로 푹 찔렀다. 주스가 온 사방으로 튀었다. 회관에서는 일제히 분노가 폭발했다. … 20년 뒤 중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그는 새로운 퀘이커 총회에서 노예를 거래하는 퀘이커교도는 누구든 처벌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레이는 감격하여 필라델피아 퀘이커 연간 총회에 초대를 받지도 않았는데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편안히 죽을 수 있겠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15장 성령 | 1649년, 세인트조지 힐〉 (517~519쪽)
지금 이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교양
종교와 세속의 분리, 일부일처제, 가문이 아닌 당사자 간의 의지에 따른 결혼, 법률과 과학은 물론이고, 계몽주의, 인권,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같은 근대의 진보적 개념, 심지어 무신론에조차 기독교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인 기독교를 벗어나고자 한 근대의 운동조차, 과거 기독교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움직임을 본딴 형국이 되고 마는 역설이 반복되어온 것이다.
이처럼 《도미니언》은 결국 서구 사회와 서양적 세계관의 근간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20세기까지의 몇백 년 동안 세계를 서유럽이 지배하다시피 했고 또 그 과정에서 기독교 전도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음을 감안하면, 곧 현재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통찰을 제공한다고도 할 수 있다(책의 후반부는 그런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것이 비단 기독교에 관심이 있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서구’는 기독교 세계가 발전하여 뚜렷이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 사회라기보다는 그 기독교 세계의 계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 개혁, 계몽사상, 혁명 등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것이 오로지 근대에 들어와서만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에 앞서 중세의 이상가들이 이미 그런 꿈을 꾸는 방식을 설정해 놓았다. 기독교인의 방식대로 꿈을 꾸는 것 말이다.” - 〈서론〉 (27쪽)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알아내는 것은 그것들을 제정한 주 하느님을 더욱 명예롭게 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확신은 새로 설립된 대학들의 감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가장 진실한 기적은 전혀 기적처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정반대였다. 하늘과 땅의 질서 정연한 운행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 “우둔한 정신은 물질적인 것들을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생드니의 문들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 〈9장 혁명 | 1076년, 캉브레〉 (334~336쪽)
“1783년 미국의 첫 대통령이 되기 6년 전, 식민지 주민들을 독립으로 이끈 장군은 미국을 계몽의 기념물로 칭송했다. 조지 워싱턴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제국의 기초는 무지와 미신의 암울한 시대에 있지 않고, 인류의 권리가 이전 다른 어떤 시대보다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명확하게 규정된 시대에 있습니다.” 이런 호언장담은 기독교에 대한 경멸을 전혀 암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 미국 공화국의 가장 진정하고 궁극적인 사상적 배경은 구약성경의 〈창세기〉였다. … 미국 헌법을 작성한 사람들의 재능은 신생 국가의 주된 종교적 유산인 급진적 개신교에 계몽의 옷을 입히는 것이었다.” - 〈16장 계몽 | 1762년, 툴루즈〉 (536~537쪽)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볼 때, 페미니즘과 동성애자 권리 운동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공격이었다. … 그런데 하느님은 정말로 그들을 증오했는가?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반대자들이 성경의 계명을 위반했다고 고발하면서 2000년 기독교 전통의 배경을 내세웠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도 양성 평등이나 게이의 권리를 주장할 때 역시 기독교 전통의 배경을 내세웠다. 그들의 즉각적인 모델이자 영감은 침례교 목사였다. “본질적인 가치에 등급을 달리하는 눈금은 있을 수 없다.” 마틴 루서 킹은 암살되기 1년 전에 이런 글을 썼다. “모든 인간의 개성에는 창조주의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새겨져 있다. 모든 사람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성별이나 성적 취향에 근거를 둔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은 공통적인 전제 조건, 즉 모두가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는 양성 평등 사상을 공유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도와주어야만 계속 운동을 펼쳐 나갈 수 있었다. 니체가 무척 경멸하며 지적했던 것처럼, 이 양성 평등의 원칙은 프랑스 혁명도, 미국 독립 선언도, 계몽 운동도 아닌 성경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 〈20장 사랑 | 1967년, 애비로드〉 (660~6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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