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야스는 위기의 순간마다 기회를 찾아낸 창의적 발상의 소유자였다. 이번에도 그의 기지가 발휘된다. 택지를 마련하기 위해 내륙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매립의 대상지가 된 곳은 ‘히비야이리에日比谷入江’였다. 현재 도쿄의 중심부인 황거皇居 인근의 히비야 일대는 ‘入江’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육지가 아니라 하구河口에 해당하는 바다였다. 이에야스는 이곳에 성 북쪽에 위치한 간다야마神田山를 깎아 조달한 토사土砂를 퍼부어 바다를 메우고 땅을 만들었다. 도심 운하를 파면서 나온 흙들도 다털어 넣었다. 속전속결로 해치운 이른바 ‘돌관突貫공사’였다. 수만 명의 인원이 산을 깎고 흙을 운반하고 바다를 메우고 지반을 다져 불과 1년 만에 여의도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광대한 매립지를 조성하였다. 현재의 히비야 공원에서 신바시新橋를 거쳐 하마초浜町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서울에 비유하면 시청 앞에서 용산까지의 지역이 조선 선조宣祖 때 만든 매립지라는 것이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40~41쪽)
로마 격언에 ‘도로는 강자가 만들고, 약자가 부순다’는 말이 있다. 체제가 잘 정비된 우수한 국가일수록 충실한 사회 인프라를 갖추고, 그렇지 못한 국가일수록 사회 인프라의 수준이 낮다는 의미이다. 무가들이 실력 본위의 경쟁을 벌이는 일본 특유의 정치상황 속에서, 막부를 에도에 두기로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결단이 천하보청 및 참근교대제와 맞물려 혁신적인 도시문명의 서막을 열었다. 이것이 에도시대의 요체要諦이다. (48쪽)
먼저 경제적 파급효과이다. 참근교대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500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이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전적으로 다이묘가 부담해야 했다. 독자 징세권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하루라도 약정된 날보다 늦게 도착하면 막부의 질책과 막대한 비용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각 번은 사전에 선발대를 파견하여 치밀하게 일정을 짜는 한편, 도로 사정이 열악하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여 도로를 개보수改補修 하는 등 심리적·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제 이동시 현대 화폐로 수행원 1인당 식비와 숙박비로 하루 6000엔 정도의 비용을 상정할 경우 평균 3~4억 엔 정도의 경비가 편도 이동에 소요된다. 이러한 다이묘가 전국에 270여 가문이 산재해 있었으니 지금 돈으로 매년 수조 원이 길거리에 뿌려진 셈이다. 여기에 여행 경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소요가 큰 에도 체재비가 더해지면 참근교대에 소요되는 비용은 다이묘 세수의 절반을 넘어서는 막대한 액수였다.(53쪽)
참근교대가 가져온 가장 큰 부산물은 에도의 눈부신 발전이다. 중앙과 지방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에도라는 한 도시에 거주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수십만 명의 다이묘와 수행원들이 ‘순수한 소비자’로 유입됨에 따라 에도에는 거대한 소비 시장이 형성된다. 이들의 저택과 수행원 숙소 및 공공 인프라 마련을 위한 토목·건설·건축업, 다이묘 일행의 공사公私에 걸친 교제 생활을 위한 외식업, 공예업, 운수업, 당시 유행하던 ‘이키粹’ 복식문화에 따른 섬유업과 의상업, 다중多衆의 문화생활을 위한 각종 출판업, 공연업과 향락산업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도시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분야의 상업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55~56쪽)
근대에 눈 뜬 유럽에서도 서민 여행이 대중화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현상이다. 철도교통망이 정비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타 지역을 여행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특이하게도 에도시대 중기부터 일반 서민층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여행 대중화가 진전되었다. 서구와 비교해도 무려 100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근세 초엽부터 독특한 종교·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구축된 여행 생태계는 일본의 근대화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인적 이동과 교류를 의미하며, 이는 정보의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물건의 이동보다 훨씬 큰 파급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여행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사회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동에 필요한 교통망, 숙박시설, 치안治安, 희구希求의 대상이 되는 명소·명물, 유희 또는 도락道樂거리가 존재하여야 하며, 무엇보다 일시적이나마 노동에서 벗어난 여가의 시간과 이동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 일본은 특이하게도 전근대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행 대중화의 조건이 충족되고 제약이 제거되었다. 일본은 18세기 중엽에 이미 연간 100만이 넘는 여행객이 전국을 누비는 세계 최고의 여행천국이었다 (73~74쪽)
'일상Lifestyle > 책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도체 제국의 미래》삼성전자, 인텔 그리고 새로운 승자들이 온다 (0) | 2019.11.28 |
---|---|
《에이트》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 (0) | 2019.11.27 |
이건희 경영학 SAMSUNG WAY (0) | 2019.11.26 |
단 한 걸음의 차이《자신감》"할 수 있다, 해보자" (0) | 2019.11.25 |
《LG Way》_세계적 기업은 왜 기본을 말하는가 (0) | 2019.07.31 |
《기다림의 칼》 (0) | 2019.04.17 |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0) | 2019.04.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