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일하다 희망퇴직을 신청한 윤모(50)씨는 2년 전 퇴직금에 대출금을 더해 5억원 상당의 상가를 매입했다. 매입 당시 부동산에서는 상가 수익률을 연 7%대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윤씨가 상가를 매입한 이후, 2년 동안에 세입자가 5번이나 바뀌었다. 윤씨는 공실 걱정에 밤잠까지 설쳐야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상가를 팔아 대출도 갚고 홀가분해지고 싶은데 동네에서 ‘장사가 안되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제 값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걱정했다.
520조원으로 불어난 자영업자 대출이 임대업이나 음식·숙박업과 같은 특정 업종에 쏠려있어 향후 국내 경제에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 업종은 특히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들 업종에서 일하는 자영업자들의 빚 부담이 향후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 50대 창업, 임대업과 음식·숙박업에 쏠려
한국은행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임대업 대출의 경우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14.3% 증가해 2015년 6월 말 기준 57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사무실과 상가, 오피스텔, 공장 등 비주거용 임대업 대출이 2010년 16조5000억원에서 2015년 6월말 40조원으로 증가했다. 2015년 1분기부터 3분기만 놓고 봐도 24.5% 늘어 증가폭이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부동산 임대업 대출을 제외하면 음식 숙박업 대출이 4년간 8.4% 늘었고, 제조업과 도소매업이 각각 6.1%, 5.4% 증가했다. 최근 몇 년 새 자영업 진출이 부동산 임대업, 음식·숙박업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박사는 “부동산 임대업이나 음식·숙박업 모두 아직 연체율은 높지 않지만 상가 등의 투자가 돈이 된다는 인식 속에 너무 빠르게 많은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는 다중 채무자가 늘고 있는 것도 우려 요인 중 하나다. 한은에 따르면 다중 채무자 수는 2010년 318만명에서 2015년 6월말 344만명으로 늘었다. 부채 규모도 282조원에서 348조원으로 급증했다. 전체 자영업자 대출 중 은행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7.4%, 비은행 대출 비중은 32.6%가량이다.
◆ 지난해 3분기 연체율은 0.44%로 양호
자영업자 대출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연체율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2010년 3분기 0.87%였던 개인 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2013년 3분기 0.69%로 떨어졌고, 2015년 3분기엔 0.44%까지 하락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1.0%,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82%를 기록했다.
개인 사업자 대출의 연체율이 양호한 것은 주택이 담보로 지급됐고, 또 사업자의 신용 등급을 면밀히 따져보고 대출이 집행된 덕분이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집만은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건정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안심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가계부채대책특위에 참석하고 있는 이헌욱 변호사는 “대출은 부동산시장과 내수경기, 중산층 몰락 등 국내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선제적으로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용등급 낮은 영세 자영업자의 대출은 위험 수위
자영업자 대출만 봤을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영세 자영업자다. 영세 자영업자는 연소득이 4500만원 이하이며, 신용등급이 6~10등급인 차주를 일컫는다.
한은이 지난해 신한 우리 KEB하나 국민 농협 등 5개 시중은행을 공동 검사한 결과 영세 자영업자의 개인사업자대출은 경기변동에 특히 취약한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비중이 44.3%로 높았다. 연체율은 2011년말 기준으로는 1.63%였으나 2015년 6월말 기준으로 2.09%로 상승했다. 또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70% 초과한 위험대출도 전체의 18.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반적으로 가계 부채의 질이 개선되는 와중에 영세자영업자만 취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 금융당국 “프리워크아웃 등 서민제도로 대응 방침”
금융당국은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 개인 워크아웃 등을 통해 자영업 대출의 건전성을 강화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개인 워크아웃은 연체 기간이 90일이 넘는 금융 채무 불이행자에게 이자를 모두 감면해 주는 제도다. 또 프리워크아웃은 연체기간이 30일이 넘고 90일 미만인 단기 연체 채무자를 대상으로 상환 기간을 연장해 주고 이자율을 인하해 주는 채무조정 제도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영업 대출은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출을 죄면 도리어 영세업자를 괴롭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정확한 실태도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현재는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을 통해 영세 자영업자 지원 방안을 널리 홍보하고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래 시니어파트너즈 상무는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희망퇴직을 통해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한 사람 중 곧바로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대부분 재취업을 추진하다가 안돼서 창업을 결정하게 되는데, 창업을 지원하는 것보다 재취업을 지원하는 쪽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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