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50대 창업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집에서 노느니 단 200만원이라도 벌어볼까 싶어서 창업에 나서는 겁니다. 하지만 평생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새로 할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요? 뻔합니다. 음식점 이 가장 만만하다고 보죠. 하지만 음식업종은 잘해봤자 전년 대비 5% 성장이 어려운데, 그보다 많은 창업이 일어나고 있어 걱정됩니다.” (김형래 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최근 창업시장 특징은 중장년층 창업자의 자본금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2~3년 전에 커피 전문점 창업이 열풍이었다면, 지금은 그보다 소액으로 가능한 치킨집, 고기집, 편의점 창업이 상한가죠. 그만큼 자본력이 약해졌기 때문인데, 동시에 실패 가능성은 높아진 셈이죠. 은행에서 대출 받아 창업하는 사례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
기업들의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창업에 나서면서 자영업 대출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대출은 2015년 6월 말 기준 총 520조원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 대출은 개인사업자 신용대출과 담보대출, 연 매출 10억원 이하의 기업대출, 사업에 쓰인 가계대출 등이 포함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정희수 박사는 “자영업자는 소득 흐름이 불규칙한데 음식이나 숙박, 도·소매업과 같은 경기 민감 업종에 치중돼 있다"면서 “국내 대출금리 상승 등 장기적인 금리 상승 국면에 대비해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2030 젊은 사장님은 떠나고… 50대 이상 창업자 1년 새 6만명 증가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심모(51)씨는 지난해 중소기업에 다니다 퇴직했다. 노후 연금이 나올 때까지 어떻게 버텨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치킨집 창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수중에 있는 것이라곤 20년 된 중형 아파트 한 채 뿐이었다. 결국 심씨는 주택담보대출 8000만원 받아 치킨집을 차렸다. 하지만 비(非) 브랜드인데다 인근에 경쟁 상대가 많은 탓에 고전했다. 결국 개점 석 달째부터 가게세는 물론 대출 이자도 낼 수 없었고, 급기야 담보로 잡혀 있던 아파트까지 팔아야 했다.
최근 심씨처럼 부진한 경기 탓에 창업 전선으로 내몰리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
지난 해 11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50대 이상 자영업자 숫자는 409만4000여명으로 1년새 6만명 가량 늘었다. 또 전체 자영업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47.5%에서 2014년 말 57.6%로 급증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20대, 30대 자영업자 비중은 각각 5%포인트 가량 줄었다. 청년 창업자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중장년층 이상의 창업만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 기업 구조조정 영향… “준비 없이 창업하면 쪽박 확률 높아"
이처럼 유독 50대 이상 자영업자가 늘고 있는 까닭은, 재계에 불고 있는 전방위적인 구조조정 때문이다. 조선이나 건설, 철강 등 취약업종은 물론이고, 금융이나 IT 등 그동안 그나마 실적이 양호했던 업권마저도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실정이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기업에서 일하던 50대 안팎의 근로자들이 창업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서 “금융권이나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했던 사람들은 그나마 자금력이 있고 인맥이 두터워 자영업을 해도 승산이 있는데, 상당수 퇴직자는 당장의 돈벌이를 위해 준비기간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50대 이상 창업자의 실패 확률이 더 높은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결제원이 2014년 한 해 동안 만기 도래한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난 사업자를 분석해봤더니, 전체 227명 중 75.3%인 171명이 50대 이상 자영업자였다.
50대 이상 자영업자는 월 소득도 낮은 편이었다. 국민연금 연구원이 지난해 7월 자영업자 임금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 자영업자의 44.7%가 월 수입이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 100만~200만원의 임금을 받는 비중은 21.3%, 월 300만원 이상은 17.9%, 월 200만~300만원은 16.1% 가량으로 집계됐다. 특별한 전략 없이 엇비슷한 업종에 뛰어드는 50대 이상 초보 자영업자가 많고, 상당수가 저임금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 520조원으로 불어난 자영업 대출… “특정업종 쏠려 부실 위험”
50대 이상 창업자가 증가하면서 자영업자 대출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 창업 관련 협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50대 이상 창업자의 93% 가량이 은행 대출을 받아 창업하고 있다. 또 창업 초기 자본 규모는 74.5%가 5000만원 이하로 책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 관계자는 “사실상 창업자 본인 소유의 가게라고 말하기 보다는 ‘은행 가게’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소장은 “2013년 이후 고기집, 편의점, 치킨집 등을 창업하는 사례가 많이 늘고 있는데 이는 이 업종이 그나마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자리를 잡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커피 전문점의 경우 2010년 이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인테리어 등과 같은 창업 초기 비용이 5억~10억원으로 높아 최근에는 편의점, 음식점 등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현재까지는 아주 취약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자영업자 대출의 상당액이 주택담보대출이고, 우량 중소기업 대출도 적잖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리 미리 현황을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송두한 농협금융연구센터 센터장은 “부채의 질이 나빠지면 은행의 건전성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전반적인 금융 리스크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0~30대는 자금력이 약하고 담보도 없어 차라리 대출을 받지 않지만, 50대 이상은 그래도 집이 있기 때문에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존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물론 주택 시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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