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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

[준비하는 재테크-239] 그럼에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by Retireconomist 2014. 12. 26.


가까운 인척이 몹쓸 병에 걸렸다. 아마도 그리 오랜 시간을 싸우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일요일 병원을 찾았을 때, 맑은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병이 깊어 의료상의 전문 식견이 없음에도 심각한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나마 2주 정도 지난 시간인데 그 짧은 기간에 육신이 쇠약해진 정도를 비명이라도 질러 놀라움을 표현해야 할 만큼 전혀 다른 외모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친지의 격려와 기도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환자인 당신 자신도 굳건한 정신력을 보이고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그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꽃이 꺼지고 있다. 그의 아들과 두 딸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는 총력으로 곁에서 총력으로 꺼져가는 불꽃을 살리려 애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직장에 다니는 세 자녀는 일터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서 온전히 자리를 지켜야 할까?


▲ 창녕 부곡의 버스 정류장은 손님이 오건 말건 하루종일 열려있다 /사진. 김형래

은행원으로 30년 넘도록 성공적인 인생 1막을 연기하고, 작은 회사의 대표이사로 인생 2막을 달리고 있던 그에게 ‘악성신생물’이 찾아들어 생명의 불꽃을 갉아먹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평소 병약한 그는 진료와 치료에 정평이 난 명의를 수소문 끝에 찾아가 정기적으로 검진받고 명의의 지시에 따라 충실한 섭생을 지켜오던 그야말로 모범생 병원 내방객이었다. 체중이 줄어드는 이상 현상을 발견하고는 주치의 명의에게 문의했으나, ‘뭐 신경 쓰는 일이 많아요? 신경 쓰지 마요.’라는 퉁명스런 핀잔을 받았을 뿐이란다.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놀라운 표정을 짓고 그 중 특별히 관심을 둔 친구가 ‘다른 곳'을 추천하고 팔을 잡아끌듯이 진단을 받은 그날 온 집안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쪽 의사는 진단한 후 진단을 받으러 온 이에게는 진단 결과를 말하지 않고 가족을 찾더라는 것이다. 급히 병원을 찾은 가족에게는 ‘더 큰 병원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 진단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날로 어렵사리 줄을 대서 진료하게 된 더 큰 병원에서는 퉁명스럽게 ‘우리 병원에서는 할 일이 없다.’고 시한을 얘기하면서 내몰더란 것이다. 도덕적으로 청렴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서 누구에게도 자랑스럽던 집안이 한 순간 무너지듯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다른 가족이 수년 동안 진료를 맡았던 ‘명의'를 찾아가 항의를 해보려 했지만, 이미 소용이 없어진 상황이 되어버려 그나마도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서두른 것이 아들의 결혼. 연애 중인 아들에게 결혼 날짜를 잡자고 얘기하고는 예비 사돈댁의 동의를 얻어 아주 급한 결혼식을 올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단 한두 달 동안 진행되었다. 어쩌면 이제 남은 것이라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는 일뿐인지도 모른다. 부인은 생업을 포기하고 남편 곁에서 밤낮을 수발을 들고 있지만, 직장에 다니는 세 자녀는 어찌할까 안절부절이다. 감히 나서서 참견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매우 급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침 대학1 학년 교양영어에서 접했던 미국 작가가 해리 골든(Harry Golden)이 쓴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The Show must go on)》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광대는 엄청난 개인적인 재난에서도 <당신의 심장이 찢어지는 슬픔 속에서도 웃어라>라고 강요당한다. 나는 그 광대에게 손뼉 치며 일어선다. 그러나 나는 배우에게만 손뼉 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인생 그 자체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슬픔을 지닌 채 무대로 나간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난 한 해만 돌아보아도 얼마나 큰 슬픔과 고통이 있었는가. 내년에는 세상의 모든 고통이 없는 그런 한 해를 기원하지만, 과연 기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질까. 반성과 감사를 통해 한 해를 보내면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각오를 남다르게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슬픔과 고통을 이겨낸 것은 아니고 감내할 수 없이 아파서 더는 일어설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맡긴 소임은 충실히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해리 골든의 작품을 생각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주)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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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조선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26/20141226007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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