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과의 사사로운 갈등과 몰이해는 고통으로 남는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부상과 흉터, 복잡한 세상살이 속에서 관계의 순기능만큼이나 피할 수 없이 겪는 생채기 같은 어려움은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우리는 인생에서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어도 기대하던 일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 오랜 관계가 단절되고, 흔하디흔한 것이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기도 하고, 원하지 않게 강요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탓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몸이 반응하는 적절한 방식이기도 하다. 환경과 생활 방식이 저마다 다르듯 사건과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수준도 다르기 마련이다. 경제적 곤란, 실패 또는 일을 잘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건강에 대한 불안, 가족 구성원의 불안정한 상태와 낮아지는 자존감 등이 그것이다.이럴 때야말로 힐링이 필요하다.
K는 마음이 아팠다. 정말 크게 아팠다. 폐암 판정을 받은 지 6개월 만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정말 사랑하는 아내였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친구와는 다른 입장이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모든 슬픔을 치유할 거라는 조언도 들었다. 머잖아 최악의 시간은 끝날 것이라며 자신을 위로했다. 고인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관계를 끝낸 것도 아니다. 소중한 기억을 잘 엮어내야 하는 건 남은 자신의 몫이었다. K와 그의 아내는 영원히 지속할 관계 속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슬픔을 거두고 고인이 죽은 슬픔보다는 고인과 보낸 행복을 추억하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K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웃어도 되고 즐겁게 지내도 괜찮다고 조용히 격려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장례식 때 위로해주던 동료와 선후배도 대화를 하면서 배우자 얘기라도 나올라치면 조심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 때는 자신을 경원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웃기라도 하려면 내가 고인에 대해 의리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까지 들기도 했다. 슬퍼하는 방법도 몰랐고, 우울하게 지내는 것만이 고인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슬픔을 잊는 시간도 너무 빨라서는 안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퇴근하고 들어선 집 안은 썰렁하기만 했고, 남겨진 아이들에게 미안함만 가중되는 것 같았지만, 해결할 방법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어느 주말, 신문에서 ‘힐링’을 주제로 쓴 기사를 읽었다. K는 그제야 자신이 치유받아야 할 대상임을 깨달았다.
잠깐만요, 여러분의 스트레스가 담긴 통은 얼마나 찼습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면 주위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자주 실수를 저지르며, 주변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또 면역 체계는 점점 약해져 어느새 질병에 취약한 몸 상태가 된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통의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누구나 넘치면 몸 건강도 함께 망가진다.
결국 불면증, 긴장과 불안, 산만한 생각, 우울증, 알레르기와 편두통 그리고 노화, 다양한 증상이 덮치듯이 나타난다. 스트레스가 가득 담긴 통을 먼저 비워야 하고, 힐링이 필요하다.
상처받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마음은 치유해야 한다
힐링이 필요한 것이다. ‘치유(治癒)’와 ‘힐링(Healing)’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무엇보다 먼저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야 한다. 편안해진 마음이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틀어진 마음의 줄기를 바로잡고, 평안한 마음과 스트레스로 혼탁하고 불안한 마음 등 두 마음이 화해하듯 함께 안정을 찾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순수해지고, 밝아지고, 자유로워지고, 조화롭고, 평화로워지는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다. 힐링의 궁극적 목표는 태어날 때 받은 본성에 가장 가까이 되돌아가는 것이다.
힐링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중 ‘힐링 여행’을 으뜸으로 꼽는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힐링의 개념이 요즘 들어 강조되면서 생활 속에서 약간의 투자를 통해 가질 수 있는 손쉬운 힐링 매체, 여가를 즐기는 듯한 가벼운 느낌의 힐링 수단으로 ‘힐링과 관련한 책(교보문고힐링 관련 서적 1,000종, 아마존 4만여 종)’이 인기다. 더불어 힐링 전문 방송 ‘멘탈헬스방송(www.mentalhealthtv.kr)’도 등장하고, 힐링 여행 관련 상품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또 가까이 접할 수 있는 힐링법 중 하나가 바로 힐링 음악(Healing Music)이다. 음악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장르를 찾자면 뉴 에이지 음악(New Age Music)이 힐링 음악에 가깝다. 명상 음악으로 사용되던 것인데, 세미 클래식과 비슷하지만 몽환적 표현과 클래식 음악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음악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이 외에도 힐링 음식(Healing Food), 힐링 도보 여행(Healing Tracking), 힐링 여행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힐링 여행은 힐링 음악과 힐링 음식 등 모든 힐링 주제를 한곳에 담을 수 있기에 으뜸으로 꼽힌다.
시니어를 위한 힐링 여행의 몇 가지 조건
첫째, 정해진 일정은 깃털보다 가볍게
시니어는 패키지 여행보다 어쩌면 계획하지 않은 여행이 더 좋을지 모른다. 여행을 떠날 때 정해진 프로그램 방식보다는 기상 시간도, 이동 경로도, 숙박 장소도 정하지 않고 언제든 변경, 수정할 수 있으면 잘 선택한 것이다.
둘째, 느림의 미학을 느끼다
물리적 속도를 낮춰야 심적 부담이 줄어들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무리하지 않을 정도의 느린 것이 좋고, 주변을 관조할 수 있는 속도면 치유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정신과 신체가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여행은 힐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자연 순도
인공으로 꾸민 정교하고 균형이 잘 잡힌 여행지보다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일수록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상업적 목표가 우선 적용된 시설과 자연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적어도 머무는 장소에서 잠시나마 숨을 고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3/4 정도면 순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넷째,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붐비지 않고 서두르지 않아도 되며 인심이 각박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 짐이 되지 않고, 제약 요소가 적어 부담이 줄어들면 좋은 곳이다. 목적에 집착하지 않고 근육의 긴장을 풀고 각박함도 내려놓으면 잘 선택한 것이다.
힐링 여행으로 마음을 치유하다
상처한 K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친구 A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가슴속 지워지지 않는 가슴병을 앓는 두 중년 남자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무거운 마음을 비우자며 의기투합했다. 30년 우정을 자랑하는 K와 A는 같은 업종에서 일하며 더 가깝게 지내왔기에,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 K와 A는 내리막길로 가서 신체적 부담을 줄이고, 마지막엔 마음을 정화한다는 뜻에서 큰물을 만나는 경로로 힐링 여행을 고려하다가 ‘강릉 바우길’을 선택했다. 우연이겠지만 바우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손으로 한 번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죽을병을 낫게 하는 ‘건강의 여신’의 이름과 일치한다. 금강 소나무 숲이 70% 이상 펼쳐져 있고, 절반이 넘게 숲 속의 그늘 길이어서 따분하지 않으며, 그윽한 소나무 향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길이다. 강원도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하행휴게소(2.2km)→풍해조림지(0.3km)→국사 서낭당(1.3km)→반정(3.2km)→옛 주막 터(1.5km)→우주선 화장실(1.3km)→어흘리(3.6km)→바우길 영빈관까지 총 14km에 이르는 여행 경로다. A는 자녀를 앞세운 슬픔을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을 앞세우며 걸었던 길에서 좀 내려놓을 수 있었고, K는 “그대를 내가 모르랴?/ 그대는 하늘나라의 참신선이라/황정경 한 글자를 어찌 잘못 읽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우리를 따르는가/ 잠시 가지말고 이 술 한잔 먹어보오/ 북두칠성과 같은 국자를 기울여 동해 물 같은 술을 부어저 먹고 나에게도 먹이거늘/ 서너 잔을 기울이니 온화한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 양겨드랑이를 추켜올리니/ 아득한 하늘도 웬만하면 날 것 같구나/ 이 신선주를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눠 온 백성을 다 취하게 한 후/ 그때에야 다시 만나 또 한잔하자구나/ 말이 끝나자, 신선은 학을 타고 높은 하늘에 올라가니/ 공중의 옥퉁소 소리가 어제든가 그제든가 어렴풋하네/ 나도 잠을 깨어 바다를 굽어보니/ 깊이를 모르는데 하물며 가인들 어찌 알리/ 명월이 온 세상에 아니 비친 곳이 없다”라는 정철의 <관동별곡> 중 ‘꿈속의 선연’ 편을 친구와 나누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두 친구는 마무리 할 때 각자의 스트레스 통이 텅 빈 것을 확인했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ㆍ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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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KB국민은행의 VIP 고객을 위해 발간하는 GOLD & WISE 9월호 p56~59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oney.kbstar.com/quics?page=C01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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