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개최된 그리스도교의 두 차례의 공의회. 소설 속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1차 공의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제 1 차,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하여 소집되어 열린 공의회. '318명의 사제의 교의회의'라 불렸으나, 50∼220명의 사제가 참석한 것으로 보이며, 서방에서는 회의를 주재한 호시우스(Hosius)를 비롯한 2명의 교황사절과 5명의 주교만 참석하였다. 주로 아리우스 이단문제를 다루었다. 황제는 이단을 몰아내고 정통교리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내의 일치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였으므로 아리우스 이단문제는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공의회에서는 2편의 신경(信經)이 제출되었는데, 아리우스파인 니코메키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kia)가 제출한 신경은 폐기되었으며,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의 신경이 채택되어 이를 기준으로 니케아신경이 공포, 그 결과 4명이 파문되었다.
제 2 차, 78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타라시우스의 요구에 따라 섭정으로 있던 동로마 황후 이레네가 소집하여 열린 제 7 회 그리스도교 공의회. 동기는 성화논쟁(聖畵論爭)에 있었으며 공의회에서는 성화상에 대한 공경은 그 본체로 돌아가므로 절대적인 흠숭(欽崇)은 신에게만 바쳐지는 반면에, 성화상은 상대적인 사랑에 의하여 공경된다고 하여 성화상 숭배에 대한 교리를 채택하였다. 그 밖에도 22개의 교회법이 제정되었는데, 세속권위에 의한 성직자의 선출은 무효라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제 1 차,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하여 소집되어 열린 공의회. '318명의 사제의 교의회의'라 불렸으나, 50∼220명의 사제가 참석한 것으로 보이며, 서방에서는 회의를 주재한 호시우스(Hosius)를 비롯한 2명의 교황사절과 5명의 주교만 참석하였다. 주로 아리우스 이단문제를 다루었다. 황제는 이단을 몰아내고 정통교리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내의 일치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였으므로 아리우스 이단문제는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공의회에서는 2편의 신경(信經)이 제출되었는데, 아리우스파인 니코메키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kia)가 제출한 신경은 폐기되었으며,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의 신경이 채택되어 이를 기준으로 니케아신경이 공포, 그 결과 4명이 파문되었다.
제 2 차, 78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타라시우스의 요구에 따라 섭정으로 있던 동로마 황후 이레네가 소집하여 열린 제 7 회 그리스도교 공의회. 동기는 성화논쟁(聖畵論爭)에 있었으며 공의회에서는 성화상에 대한 공경은 그 본체로 돌아가므로 절대적인 흠숭(欽崇)은 신에게만 바쳐지는 반면에, 성화상은 상대적인 사랑에 의하여 공경된다고 하여 성화상 숭배에 대한 교리를 채택하였다. 그 밖에도 22개의 교회법이 제정되었는데, 세속권위에 의한 성직자의 선출은 무효라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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