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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Lifestyle/책Book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by Retireconomist 2022. 6. 30.

 

바라건대 이 책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삶을 더 순조롭게,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이 책에 담긴 지혜 중 몇 가지는 제 삶의 중추였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죽을 날을 받아 든 지난 몇 년간은 더욱 그러했지요. 여기가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시작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요.
〈프롤로그〉, 9쪽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내려놓을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 잠재된 능력을 무시하거나 아예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은 여태까지 몸에 깊이 밴 행동과 관점에 좌우됩니다. 모든 결정을 습관적으로 내리게 되지요. 이를테면 과거에 목줄이 묶여 끌려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리는 같은 트랙을 계속해서 돌고 또 돌게 됩니다. 그런 삶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존엄도 품위도 없습니다.
〈과거라는 목줄〉, 36쪽

우리 자의 내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자기만의 조용한 나침반이 있어요. 그러나 그 지혜는 요란스러운 자아와 달리 은은해서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아가 던지는 질문과 요구는 그보다 몇 배나 시끄러워 지혜의 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요란한 소리에 쏠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립니다. 갈등에 끌리고, 불안과 불행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항시 현실과 투쟁하게 되지요.
〈순간의 지성〉, 86쪽

어떤 오클라호마주 출신의 승려는 무려 4년 동안이나 저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매일매일 조금도 감추지 않고, 쉬지도 않고 싫은 마음을 어떻게든 드러내곤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삶이란 참 역설적이다 싶습니다. 저는 늘 남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며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 제가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게는 그처럼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누군가가 저를 미워할까 봐 그토록 두려워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 그리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미움을 받고 나니 그제야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우친 것입니다.
〈괴짜들의 공동체〉, 96쪽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마법의 주문〉, 134쪽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탓하기 좋아합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이런 생각을 품지요. “만일 내 부모님이 다른 분이었다면… 직장 동료들이 못되게 굴지만 않았어도… 정치인들만 제대로 했어도….”
그런 굴레에 자꾸만 빠지는 인간의 속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아의 근본적인 속성이거든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삶이 힘들어지고 심리적 압박을 겪을 때, 남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훨씬 편한 데다가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나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은〉, 150쪽

사실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저를 인간으로서 더 깊이 이해하고 계발하려고 인생의 절반을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초월한 지혜의 빛을 가슴에 품고서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스웨덴에서 가장 불행하고 실패한 사람으로 전락한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에선 온통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목소리만 메아리쳤습니다. ‘모든 게 갈수록 더 나빠질 거야.’ 그런 목소리를 거부하거나 맞서 싸울 수 없었습니다. 불을 내뿜는 용을 상대로 신문지로 만든 투구를 쓰고 나무 막대기를 들이대는 꼴일 테니까요.
그 불안감은 제가 아는 한 가장 가혹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영적 스승이었습니다.
〈전직 승려의 수치〉, 205~6쪽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거리낌 없이 보살핀다면 또 어떨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 전체가 반드시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안의 고귀한 마음가짐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너에게서 시작된다〉, 223쪽

승려 시절에 배운 것들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법과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는 법을 17년 동안이나 수행했으니까요. 그 기술 덕분에 때로 덮쳐오는 절망감을 조금이나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휠체어 신세가 되거나 말도 못 하고 아무것도 삼킬 수 없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지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대신 제 안에서 싹트는 다른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지요. 그것은 죽는 그날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모습〉, 251~2쪽

내면의 도덕적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잘 아는 사람의 삶은 더 쉽고 더 자유롭습니다. 저는 그 증거를 곧잘 목격합니다. 이 우주는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무심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존재는 공명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네가 세상에서 더 보고 싶은 것〉, 274~5쪽

우리가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랑하는 이들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없음을 머리로 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이해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더는 이만하면 됐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모든 사람과 반드시 이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 외의 나머지는 다 추측이고 가능성입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몹시 거슬리는 한마디〉, 287~8쪽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라 하지 말아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곁을 지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때가 됐을 때 제가 늘 원했던 끝이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열린 손바닥을 보여주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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