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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는 왜 고집이 세고 화가 많을까?
112개 키워드로 이해하는 노년의 심리
나이가 들고 노화가 진행되면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의 저하는 필연적이다. 일과 일상에서 예전에는 가뿐하게 해내던 것들이 어려워지고 실수가 잦아진다. 그래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주눅이 들게 된다. 이러한 자기 효능감이 낮아지면 심신이 쇠약해져 가는 상황에서 자기 존재를 긍정하며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고령자 씨에게는 자존감, 유능감, 자율성 등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심리가 중요하고 고령자 씨의 문제 행동들의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문제가 있다. 고령 운전 사고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데, 고령자 씨가 자신의 운전 능력 저하를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 채 계속해서 운전대를 잡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말려도 운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자동차를 이용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운전을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곧 자동차 운전은 ‘나는 아직 운전을 할 정도로 정정하고, 아직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같은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인 셈이다.(91쪽)
아무리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러도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보이스 피싱 사기 수법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교묘해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 자녀가 회삿돈에 손을 대 버렸다, 일하면서 수금한 돈을 잃어버렸다’거나 ‘대단한 수익을 보장해 주겠다’는 말처럼 빤한 꾐에도 여전히 많은 고령자가 사기 피해를 입는다. 이토록 의심스러운데도 왜 쉽게 속는 걸까? 퇴직과 자식의 독립 이후 고령자 씨는 자신이 가족과 사회에 힘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사기범의 전화를 받고 나면 곤경에 처한 자식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부모로서의 책임감, ‘나도 투자로 경제 활동을 한다’는 의욕이 솟는다. 보이스 피싱 사기는 바로 이런 고령자 씨의 마음을 자극하고 악용한다.(108쪽)
젊었을 때는 점잖았던 사람도 고령자 씨가 되면 부쩍 짜증과 화가 많아진다. 나이가 들어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이 쇠퇴하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어난다. 자신의 유능감과 할 수 없어진 일에 대한 실망감의 간극이 클수록 스트레스를 느끼기 쉽다. 작은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쌓여 폭발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가 된다. 마치 컵에 물이 가득 차 표면 장력에 의해 겨우 흘러넘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후의 한 방울(아주 작은 스트레스)이 더해지면 결국 물은 넘치고 만다. 고령자 씨의 감정도 조절 불능 상태가 되어 화가 표출되는 것이다.(120쪽)
이처럼 고령자 씨를 둘러싼 문제는 그들의 심리적 고충과 상실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책은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되, 고령자 씨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섬세하고 다정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가령 고령 운전자에게 운전을 그만두도록 강압적으로 종용하기보다 자기 효능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활동을 추천하라고 조언한다. 또 수상한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끊고 자녀와 먼저 통화하는 규칙을 정하라고 한다.
세대 갈등, 가족 문제, 지속 가능한 돌봄…
고령자 씨의 말과 행동이 이해 안 되는 당신을 위한 관계 해법
이해와 소통이 부족한 관계에서는 오해와 착각이 생겨나기 쉽다. 그리고 이 오해와 착각은 관계 단절의 벽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고령자 씨에 대한 몰이해를 불식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령자 씨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가, 의도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기억은 잊어버리고(혹은 잊어버린 척하고) 유리한 정보만 골라 기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령자 씨는 일부러,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다. 젊은 세대는 걱정, 위험, 두려움 등 부정적인 정보를 잘 기억해야 앞으로의 삶에 필요한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반면 고령자 씨는 그런 것은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작아진 기억 용량을 긍정적인 부분에 쓴다.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긍정적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정보를 중시하는 것이고, 이 과정은 의도와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51쪽)
고령자 씨가 시큰둥하고 엄한 표정을 자주 짓는 이유는 정말로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령자 씨는 쇠약해진 얼굴 근육 때문에 젊은 사람보다 표정을 짓는 게 어렵다. 또 고령자 씨는 ‘정동 전염(情動傳染)’이 일어나기 쉽다. 정동 전염이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웃으면 자신도 웃고 불쾌한 표정이면 똑같이 불쾌한 표정이 되는 것처럼 상대를 흉내 냄으로써 타자의 기분을 이해하는 일종의 심리 시스템이다. 고령자 씨는 젊은 사람에 비해 위험에 취약한 만큼 상대의 위협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정동 전염이 발전한 것이다. 만약 고령자 씨가 뚱한 표정이라면 혹시 고령자 씨를 상대하고 있는 내 표정이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28쪽)
반면에 세대 갈등, 가족 문제, 돌봄 문제 등 고령자 씨의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문제들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고령자 씨들은 ‘옛날이 좋았다’고 투덜거리거나 ‘요즘 것들이란…’ 하면서 불평하곤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에게나 사회에 소속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은퇴 후 어느 날 갑자기 일과 함께 사회적 평가도 잃어버리게 된 고령자 씨라면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영광(혹은 영광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집착하기 쉽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젊은이들’을 비교하기 일쑤다.(121쪽)
부모와 자식 세대가 함께 살면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이 많아진다. “가족이니까 그래도 괜찮다”거나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가족 신화’라 불리는 일종의 고정 관념이 불만과 갈등을 쌓이게 만들어 관계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는 어느 시대건 큰 문제였다. 그러므로 가치관이 다른 2대, 3대가 원만히 지내려면 가구의 경계가 확실해야 한다. 이것이 애매하면 “도움만 바라고 도와주진 않는다”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 등 불필요한 말싸움이 일어나기 쉽다.(188쪽)
‘가족 신화’의 폐해는 돌봄 문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부모의 자립이 어려워지거나, 부모 한쪽이 먼저 돌아가셔서 동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돌봄은 가족이 해야 행복하다’, ‘부모와 배우자를 돌보는 것은 가족의 당연한 의무’라는 인식은 끔찍한 족쇄가 될 수 있다. 돌봄을 받는 고령자 씨도, 돌봄을 행하는 가족도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191쪽)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멋지고 행복한 나’로 사는 방법
일본에는 ‘핑핑코로리’라는 표현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핑핑(팔팔하게) 건강하고, 죽을 때에는 코로리(바로 쓰러지는 모양) 하고 한순간에 쓰러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고령자 씨들 중에는 핑핑코로리를 가장 이상적인 노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8899124’라는 게 있다. ‘팔팔(88)하게 99세까지 살다가 하루(1)만 앓고 이틀(2)째 죽는(4) 것’을 의미한단다.(211쪽) 물론 고령자 씨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고민할 것은 ‘나이가 들어도 멋지고 행복한 나’로 사는 방법이어야 한다.
우선 노화를 자각하고 인정하며 나아가 돌봄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핑핑코로리, 8899124’라는 표현의 기저에는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늙어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국에서 발생한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에서 기인한다. 성공적 노화는 건강하고 자립된 생활을 영위하며 사회 공헌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노년기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인식은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승리자’, ‘돌봄이 필요한 사람=패배자’로 나누어 버리고 결과적으로 많은 고령자 씨를 불행하고 비참한 존재로 몰아붙인다. 돌봄을 받는 게 걱정되는 사회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안심하고 당연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진정 이상적인 사회 아닐까?(212쪽)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가려면 돌봄을 받는 고령자 씨만큼 돌봄을 행하는 가족, 간병인, 요양 보호사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무조건 온 힘을 다해 자기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기면서 병행해야 한다. 여유가 없으면 그만큼 배려하기 힘들고, 노인 학대라는 폐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기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위한 여력을 남기면서 고령자 씨와 소통하고 돌봄에 임할 때 결과적으로 고령자 씨도 편안하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228쪽)
무엇보다 고령자 씨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목적이다. 살아가는 목적을 강하게 가진 사람일수록 인지 기능 저하의 정도가 완만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만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목적을 가지고 주체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황혼기를 보내는 데 매우 중요하다.(244쪽) 또한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자기 결정)도 삶의 목적만큼 중요하다. 자율성은 고령자 씨의 자존감, 정체성, 자기 효능감 등 다양한 심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행복한 고령자 씨를 보는 일은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나이를 먹어도,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늙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고령자 씨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의 나를 이해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고령자 씨가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은 미래의 우리가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일이다. 이 책은 고령자 씨와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들어 줄 쉽고 유용한 다리가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hzWPKtec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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