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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밀한 역사》과거와의 대화는 어떻게 현재의 삶을 확장하는가 | 시어도어 젤딘(Theodore Zeldin) 지음

by Retireconomist 2020. 10. 3.

과거를 너무 빨리 재생시키면 인생은 무의미해 보이고, 인류는 수도꼭지에서 곧장 하수구로 떨어지는 물과 같은 존재가 된다. 현대의 역사 영화는 느린 화면으로 상영되어야 한다. 비록 밤하늘이 흐려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별과 같은 존재로서 살아왔음을, 여전히 탐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신비로운 존재로서 살아왔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초점은 각 개인들의 눈에 얼마만큼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는지를, 그리고 한편으로는 서로 두려움 없이 만날 수 있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지를 아주 가까이서 보여주는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 3장 ‘사람들은 이제 더 깊고 먼 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했다’ (92쪽)

개인들이 자신의 친숙한 환경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독서와 여행을 접하게 되면, 많은 낯선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은 감정과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풍성한 결실을 맺어주는 접촉은 아주 드물었다.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면서 혼자서는 어려운 모험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은 서로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이제 처음으로 좀 더 바람직한 의사소통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능한 모든 만남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누구도 온전히 살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희망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전망에 토대를 두고 있다. -1장 ‘새로운 만남은 잃어버렸던 희망을 소생시킨다’ (46쪽)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야망을 이해하기 위해 더 넓은 영역을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뻔한 뿌리를 알아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친구나 배우자 또는 필생의 과업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노나 외로움이나 결핍에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는 방향을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기억, 미래를 지향하면서도 현재 몰두하고 있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기억이 필요하다. -3장 ‘사람들은 이제 더 깊고 먼 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했다’ (95쪽)

자신을 완전히 고립시키거나 적을 영원히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더 이상 일종의 사치나 소일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 자체에 필수적이다. -4장 ‘일부 사람들이 고독에 대해 면역력을 갖게 된 경위’ (121쪽)

명료한 사고를 위해서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자극이 필요하다. 오직 인류의 과거 경험을 앎으로써 사람들은 환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혼자 있을 권리 또는 예외가 될 권리를 획득해야만, 외로움의 고통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야만, 인간은 외로움과의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외로움은 모험이다. 모험을 함께할 동지를 찾는 방법이 다음 장과 그다음 몇 장의 주제다. -4장 ‘일부 사람들이 고독에 대해 면역력을 갖게 된 경위’ (121쪽)

예상할 수 없는 것을 기꺼이 만나려는 마음, 그것이 용기에 대한 정의다. -5장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 생겨난 경위’ (131쪽)

호기심의 한계는 절망의 경계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인간은 늘 자신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과 싸우고자 했다. -11장 ‘호기심은 자유의 열쇠가 되었다’ (298쪽)

희생양을 찾는 것보다 지성을 더 마비시키는 일은 없다. 일단 적에게서 사탄을 발견하고 적을 증오하게 되면, 적의 동기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 -12장 ‘적을 쳐부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 (320쪽)

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장 오래되고도 번성한 인류의 산업이며, 그 산업의 원료는 상처 입은 자존심이나 분노다. 그 원료는 서서히 굳어져 마침내 적을 만들어내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증오 안에 갇힌 죄수로 만들었다. 그들이 직접 적을 고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준다. “가장 위대한 국가 지도자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쪼개지 않고, 하나의 적에 집중시키는 데 있다”라고 히틀러는 썼다. 이런 종류의 사고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12장 ‘적을 쳐부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 (322쪽)

소수에게 너그럽게 행동할 다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수는 분해되어 점점 더 많은 소수로 변하고 있다. 단순한 관용은 결국 일반적인 무관심으로 끝나게 된다. 관용이라는 이상은 이제 목표가 아니라 초석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관용 너머에 있는 위대한 모험이다. 그것은 정복에 대한 고대의 집착보다도 더 야심 찬 모험이다. -15장 ‘관용만으로 불충분한 이유’ (398쪽)

무라사키와 아닉 제이유 사이의 1000년 동안 인간이 우울함에서 벗어나는 데는 거의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느낌은 반복해서 돌아온다. 결국 인간은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며, 영광의 순간에도 뭔가 결핍감을 느끼도록 운명 지워져 있고, 욕망은 필연적으로 쾌락과 고통의 원천이라는 미신적인 믿음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욕망의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고 본다. 쾌락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어떤 종류의 쾌락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리고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얼마나 자신의 지평을 넓혔는지에 달려 있다. 우주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고 가정하는 대신에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욕망을 바라볼 수 있다. -16장 ‘성 해방과 소비사회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삶이 우울한 이유’ (421~422쪽)

우주를 관찰하면서 과학은 무지를 정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유년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발견은 그다음 발견을 위한 초대장이라는 것, 그리고 실패한 실험은 해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의 습관을 아직도 간직한 채 세상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는 사람들이 얼마나 멀리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즉 초점 거리에 대한 논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16장 ‘성 해방과 소비사회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삶이 우울한 이유’ (422쪽)

지적인 낙관주의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선이건 악이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존재한다고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인생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아무리 어두운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빛이 반짝인다. 낙관주의란 추잡함과 어리석음 속에서도 다른 무엇이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16장 ‘성 해방과 소비사회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삶이 우울한 이유’ (425쪽)

인생에서 새 장을 여는 결정을 내리는 데는 두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과거의 습관을 청산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태어났다는 느낌과 그것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19장 ‘점성가조차 자신의 운명에 저항한다’ (493쪽)

지금까지의 역사 전체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였다. 불확실성이 없다면 인생이 지루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안정 자체를 확실하게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안정은 더 이상 적절한 이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계획이란 거의 언제나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설령 실패가 또 다른 기회로 이용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경험이 낭비된다. 희망의 모습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확실성은 희망의 본질적인 일면이다. 희망만으로는 인생을 안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는 어떤 예상 못한 결과가 생긴다 하더라도, 가정이 설정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곳에 이를 수도 있다. 그것을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 -21장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에 대한 기대가 변해가는 이유’ (542쪽)

나는 이 책에서 지각의 초점을 바꾸기만 해도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행동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인생의 미묘한 음영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자동카메라 다루듯 해서는 안 된다. 직접 초점을 맞추고 빛과 그림자를 잘 다룰 수 있어야만 진정 흥미로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 -24장 ‘사람들이 서로 우호적으로 대하게 된 경위’ (639~640쪽)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사람들이 배워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서도 환상이 없어야 한다. “남들을 자신처럼 보는 것, 그러면서 남들이 자신과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이해다.” -24장 ‘사람들이 서로 우호적으로 대하게 된 경위’ (645쪽)

내가 독자들에게 제공한 안경은 그런 수정을 돕고, 역사가 과거에 이루어졌던 것처럼 그렇게 될 필요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는 것들이 역사의 논리적 결론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역사가 사람을 구속하는 곳에서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불가피함이나 필연성을 암시하지 않고 인간의 경험 전체를 어떤 뚜렷한 목적을 이끌어내는 원천으로 제시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인간의 과거 경험은 또한 방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25장 ‘영혼의 동료 사이에 가능한 일’ (6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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