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 본능의 두 가지 측면은 부정 본능과 더불어 세상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세계 인구와 관련한 여러 비율 중에 기본 욕구를 충족하며 사는 사람의 비율을 물으면, 대부분 일관되게 약 20%라는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답은 80%, 나아가 90%에 가깝다. 예방접종을 받는 아이의 비율은 88%,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85%다. 초등학교를 나온 여자아이의 비율은 90%다. 그러나 자선단체와 언론이 자극적으로 보이는 숫자를 고통받는 개인의 모습과 함께 끊임없이 보여주다 보니 사람들은 왜곡된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다른 모든 비율과 발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 --- p.183
나는 국가별 ‘총’배출량을 기초로 중국과 인도를 기후변화의 주범이라고 조직적으로 비난할 때면 더러 오싹하다. 그것은 중국 전체 인구의 몸무게 합이 미국보다 크다고 해서 미국보다 중국에서 비만이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국가별 총배출량을 문제 삼는 주장은 나라마다 인구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전체 인구가 500만 명인 노르웨이는 1인당 이산화탄소를 아무리 많이 배출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국가별 총배출량이라는 큰 수치를 해당 국가의 인구로 나눠야 의미가 있고, 비교 가능한 수치가 된다. HIV, 국내총생산(GDP), 휴대전화 판매량, 인터넷 사용자 수,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측정할 때는 항상 1인당 수치를 계산해야 더 의미 있는 값을 얻을 수 있다. --- p.199
운명 본능은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무언가가 지금의 그 상태인 것은 피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이유 때문이며, 그래서 그것은 늘 그 상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 운명 본능이 나타나는 가장 흔한 사례는 앞의 에든버러 강연에 참석한 신사가 그랬듯, 아프리카는 항상 무기력하고 절대 유럽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이슬람 사회는 기독교 사회와 근본부터 다르다는 생각이다. 이 종교 또는 저 종교는, 그리고 이 대륙은, 저 문화는, 그 국가는 전통적인 불변의 ‘가치’가 있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또는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겉모습만 다를 뿐 근본은 같다. 언뜻 그럴듯한 분석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능이 우리를 속인 것일 때가 많다. 고상하게 들려도 사실로 위장한 느낌일 뿐이다. --- pp.239~240
우리가 대처해야 할 절박한 세계적 위험이 있다는 걸 나도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를 핑크빛으로 보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다. 문제에서 눈을 뗀다고 해서 마음이 안정되지는 않는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다섯 가지는 전 세계를 휩쓰는 유행병, 금융 위기, 제3차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이 문제들이 왜 가장 걱정되는 것일까?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의 세 가지는 예전에 일어났고, 나머지 두 가지는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다섯 가지 모두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인간의 발전을 여러 해 또는 수십 년간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막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거대한 살인마여서 가능하다면 모두 힘을 모아 한 단계씩 차근차근 행동하는 식으로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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