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미루고 싶은 마음은 일상적이 되었다. 갤럽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 은퇴연령이 올라가고 있으며 베이비붐 세대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66세 이상까지 일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50~60대 미국인 수백만 명이 은퇴를 미루고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상당수는 돈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고 심지어 사랑하기 때문에 계속 일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경우라면 무엇하러 일을 그만두겠는가?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서 은퇴 후에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67.2%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70.9%는 노후에도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절반 이상(58.5%)은 부족한 노후 소득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만 할 수는 없는 일, 이리저리 발품을 팔면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다.
▲ '노년플래너' 전문가가 되기 위해 500시간 가까이 집중하는 시니어 수강생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일을 계속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 모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저축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는 것에는 숨은 단점이 있다. 바로 현실에 안주하면 당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피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일자리는 언젠가 끝이 있다. 그 순간을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그 순간을 맞닥뜨리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이는 게 나을까?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다. 나는 내 일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변화가 두려운 것일까? 가장 뛰어난 직원들은 나와 일하고 싶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더 나은 기회를 얻고 싶을까? 나는 내 일과 나에 대해 계속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계속 똑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을까?
경험에 근거한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성과가 현재의 자리와 급여에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료가 자신에게 주는 평가와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여전히 성장하고 배우고 도전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일한다면 충분히 자리를 유지할 자격이 있다고 볼 일이다.
그런데 인사고과 이외 동료의 평가는 어떻게 행동에 반영할 것인가? 쉽지 않은 판단이다. 솔직하게 답을 해서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물러나기 싫은 것인데, 더 큰 어려움은 직업과 본인을 동일시하며 수 십 년을 지냈다면 직장을 자신과 떼어놓지 못하는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판단을 유보하기 쉽다는 것이다.
희망적인 얘기 중 하나는 종종 제2의 일자리로 옮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데 있다. 멘토링이나 강의, 컨설팅해줌으로써 자기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일을 직접 하는 것만큼이나 보람차다고 말하기도 하고, 새로운 기회를 잡음으로써 일과 다시 한 번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직장을 바꾼 이들 중 상당수는 인생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해도 넓어졌다고 말한다.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고 인지 능력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지 경지도 이르지 못한 새롭게 시작하는 이를 가장 높은 섬김의 자리에 앉혀놓고 받들어주는 일은 없다. 차마 눈감고 지나치기는 안타깝고 거칠게 보면 풀어놓을 사례도 적지 않다. 선발을 위한 면접 때의 대단했던 각오는 개강과 동시에 잊어버리고,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며 정수기 물의 온도가 높으니 낮으니 시시콜콜 시정을 요구하며 과거 크고 높은 영화게 걸맞게 대접받으려 하는 시니어도 적지 않다.
애초에 과정에도 없었던 것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이유도 없이 저명 교수가 아닌 강사가 강의를 한다고 대놓고 얕잡아 보고, 공부한다는 빌미로 강사가 준비한 강의 원본을 요구하고, 강의시간에 전화를 받는 것을 전혀 예의에 벗어난다고 생각지 않고, 통학 거리가 멀다고 지각과 조퇴를 반복하고, 높은 경쟁에서 선발되었음에도 탈락한 이를 되돌아보지 않고 사소한 개인 사정으로 중도 포기하기도 하고... 끊임없는 격려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의 행태가 알려주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여겨 언제까지 찬사로만 미화해서 덮어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 2막을 앞둔 시점에서 시니어는 변장만 할 것이 아니라 변신도 해야 한다. 어떤 시점이 되면 절대 예전 수준까지 오르지 못하게 됨을 깨달아야 하고, 그때부터는 평등하고 대등한 다른 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더 낮아지겠다는 허울 좋은 자기표현을 주변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자칫 멀쩡하게 각오 한마디 올려놓은 것이 본인의 위신만 낮추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 변신하는 과정 중에 겪는 불편과 스트레스는 어떤 집단이나 어떤 과정에서 없겠는가? 그마저도 없다면 무슨 보람과 성과가 있겠는가? 도움을 줄 만큼 충분히 경험도 지혜도 갖춘 시니어가 왜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한 치도 발을 떼지 못하는가?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세계 최대의 NGO단체인 미국은퇴자협회(aarp.org). 50대 이상 인구의 절반이 가입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구호는 그들의 이익을 요구하는 데 집중되어 있지 않다. '도움을 받지 말고 도움을 주어라(Serve, Not to be served)'라고 당당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20장 27절과 28절에는 "만일 누구든지 너희 가운데서 첫째가 되려면,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just as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라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듯 싶다.
감히 새로운 일을 통해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시니어에게 나누고 싶은 금언으로 정리해 본다. 가장 좋은 학습법은 가르치는 것이라는 반어적 교훈과도 일맥상통한다. '도움을 받지 말고, 도움을 주라. 그러면 첫째가 되리라. (Serve, Not to be served. Will be the first)'.
<(주)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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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조선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7/20150227014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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