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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

[Senior 골든라이프-36] 천 년을 간다는 한지로 생활공예품을 만들어보자 GOLD & WISE 10월호

by Retireconomist 2014. 10. 21.



천 년을 간다는 한지로 생활공예품을 만들어보자


“이 맑은 종이의 숨결을 느껴보렴!” 엄마는 햇살 좋은 날 한지를 햇볕에 펴보여줍니다.

“엄마는 이 종이를 무지무지 사랑해.” “엄마, 돌이나 쇠는 영원한 예술품으로 남지만 종이는 금방 없어질 수도 있잖아?”

엄마는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 닥나무의 질감은 천 년을 간다고 했어. 사람도 떠나는데 예술품도 떠날 때는 떠나야지.”

엄마가 종이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눈에서 빛이 납니다…. -닥종이 지호공예 인형작가 김영희의 <책 읽어주는 엄마> 중에서-


시니어 J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취미로 하던 수채화를 더 공부하러 간 문화센터에서 한지공예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이 이젠 더할 나위 없는 취미가 된 것이다. 한지공예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창조적인 취미’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몰두하다 밤을 꼬박 새우고 날이 훤하게 밝아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즐기면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지공예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라고 반문해본다.

한지공예의 매력은 우리네 생활과 한지(韓紙)의 밀착된 친밀감에 있는지 모른다.

예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깨끗함과 신성함을 상징하는 한지를 끼운 금줄을 매달았고 돌 때는 시루떡 아래 한지를 깔아 건강을 기원했으며, 한지 위에 먹물로 서예를 연마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예술성을 살렸다. 또한 창살에 창호지를 붙여 빛과 습도를 걸러 건강을 도왔고, 결혼을 앞두고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축원하는 문서인 혼서(婚書)도 한지를 사용했다. 그리고 인생을 마무리하고 하늘로 떠나며 염(殮)을 하는 순간에도 한지가 쓰인다. 한지는 한민족의 시작과 마무리를 순백으로 장식하는 밀착형 생활 소재임이 분명하다.


천 년의 세월을 품은 공예의 소재, 한지


‘한지는 천 년이요, 비단은 500년이다(紙千年 絹五百年)’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한지는 천 년의 세월을 품은 공예의 소재다.

그렇다면 한지가 우리 민족과 가까워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한지의 특성이 우리 민족의 성품과 유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선 한지는 양지(洋紙)보다 보존성이 훨씬 좋다. 천 년이 넘게 보존되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나 700년이 넘은 <직지심체요절>도 한지가 가진 우수성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을 보유한 문화국이 된 셈이다. 또한 한지는 대단한 유연성과 특유의 부드러움과 자유로움을 가지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한지를 기물(器物, 살림살이에 쓰이는 기구, 도구, 그릇 등)에 붙이면 모양이 잘 잡힌다. 그리고 한지는 자연 순화적인 특성이 있다. 한지는 숨을 쉬기 때문에 안쪽과 바깥쪽의 습도 차이를 조율해간다. 안쪽이 축축하면 습기를 밖으로 뿜어내고 건조하면 습기를 빨아들여 일정한 습도를 유지해준다. 습도뿐만 아니라 온도도 유지해줘 보온력을 발휘하고 냄새를 잡아내는 능력도 우수하다.

그리고 한지는 아주 튼튼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경사(經絲, 날실)와 위사(緯絲,씨실)를 교차시켜 탄탄하게 짜내는 한지는 단단해서 집의 골격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 의류의 소재로 사용할 만큼 견고하다. 그리고 색도 아름답다. 똑같은 염색약으로 물들여도 매끈한 양지와는 질감 자체가 달라서 얼기설기 얽힌 독특한 질감이 색감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눈의 심연까지편안해진다.


한지공예는 생활 예술이다


예부터 우리 선조는 질 좋은 원료로 한지를 만들고 그것으로 생활과 연관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얼과 지혜가 스며들어 숨 쉬는 한지공예 작품은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에 필요한 소품부터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생활 예술로 자리 잡고 있다. 한지공예란 닥나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

한지를 이용해 우리 생활에 필요한 소품을 만드는 전통공예의 한 분야이다.

자연의 미와 실용의 미가 조화된 환경 재활용 공예품인 셈이다. 특히 한지공예는 만드는 사람의 정서가 다양한 색채와 문양의 조화로움에서 잘 나타나고,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이 들며, 오래도록 사용해도 변질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감을 더해가는 것이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한지공예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제작 기법에 따라 다양한 생활예술품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대표적인 한지공예 네 가지를 알아본다.


첫 번째, 전지공예(剪紙工藝)

이 기법은 한지를 여러 겹 덧발라 만든 틀에 다양하게 물들인 한지로 옷을 입힌 다음 가위나 조각칼을 사용하여 한지를 여러 가지 무늬로 오려 붙이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한지에 문양을 그리고 테두리를 따라 가위나 조각칼로 오려낸다. 골격 바탕 면은 한지로 초배하고 작품의 성격에 맞게 오색지를 붙인 다음 오려낸 문양을 붙이고 마감 칠을 하면 된다. 전지공예에서도 오색 전지공예와 양각 전지공예가 대표적인데 색실 상자, 혼례에 쓰이는 예물함,

예단함, 족두리, 반짇고리, 동고리 등 여성용품이 많고, 다양한 상자류와 머릿장, 버선장, 이층장, 삼층장, 의걸이장 등의 대작 등을 만든다.


두 번째, 지승공예(紙繩工藝)

지승(紙繩)의 지(紙)는 종이를, 승(繩)은 ‘노’를 뜻하는데, ‘노’는 섭, 칡껍질(청올지), 마(麻, 삼), 종이 등을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서 만든 끈을 말한다. 지승공예란 한지를 좁고 길게 자른 후 손으로 꼬아 노끈처럼 만들고 그것을 다시 엮어 여러 가지 기물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종이가 흔치 않았던 옛날에 글씨 연습을 하고 버리게 된 종이나 창호로 사용한 폐한지를 모아 지승 기법으로 생활용품을 만들곤 했던 것이 시작이다. 지승 망태기,

지승으로 짜서 만든 것 속에 나무통을 넣고 안팎을 겹으로 짜서 만든 필통뿐 아니라 바구니, 상, 요강, 옷 등의 그릇을 지승으로 만들고 겉에 옻칠을 입혀 오래도록 사용하였다.


세 번째, 지호공예(紙戶工藝)

지호공예는 한지를 잘게 찢어서 물에 불려 찹쌀풀과 섞어 반죽한 다음 찧어 이겨서 일정한 모양의 틀에 조금씩 붙여가며 말리고 또 덧붙여 마지막에 골격을 떼어내고 옻칠을 하여 마무리하거나 그림 또는 색을 칠하여 마무리하는 것이다.

창호지로 쓰다 버린 폐지, 글씨 연습이나 학습용 휴지, 파지 등을 물에 담가 풀어지면 말풀을 섞어 절구에 곱게 찧어서 점토처럼 만들고 이것을 이겨 붙여서 그릇을 만드는 기법이다. 이때 들기름이나 콩기름을 먹여서 충해를 막고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후속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다음 바탕에 채색 한지를 바르고 무늬를 장식하여 꾸미기도 한다. 대개 그릇이 귀한 농가에서 합, 함지, 표주박 등을 만들 때 주로 이용하였다. 종이탈 등을 만드는 것 역시 지호공예의 한 방법이다. 또 지호공예 기법으로 만든 공예품에는 종이를 삶아 짓찧어서 만든 독으로 산간 지방에서 마을 곡식을 갈무리할 때 많이 쓰였고, 물을 떠먹는 데 쓰는 그릇으로 조롱박이나 둥근 박을 반으로 쪼개놓은 모양의 작은 바가지인 유지 표주박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반짇고리, 과반, 함지박, 동고리 등을 만드는 데도 이용되었고, 요즘에는 종이인형 등 공예 작품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된다.


네 번째, 지화공예(紙花工藝)

천연 염료를 색색으로 물들인 합지, 오동나무, 미송 등으로 만든 골격에 창호지로 초배지를 바른 후 한지를 바르고 먹물이나 당채, 담채, 물감 등으로 문양이나 민화, 당초문 등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한지를 여러 겹 겹쳐서 일정하게 잘라 꽃을 만드는 것으로 어사화, 꽃상여, 민속놀이, 궁내의 행사 때나 불교문화, 무속 등에 많이 쓰였다. 20여 년 전까지도 시골 마을 장례에서 상여가 많이 활용되었는데, 이때 갖가지 다양한 지화로 치장하였으며, 지금도 큰 굿을 할 때는 지화가 쓰인다.


그 외에도 한지를 여러 겹 덧발라 만든 틀에 전통 염료로 염색한 다양한 한지로 옷을 입힌 다음 여러 가지 무늬를 오려 붙여 만드는 색지공예(色紙工藝), 나무로 골격을 짜거나 대나무, 고리 등으로 뼈대를 만들어 안팎으로 종이를 여러 겹 발라 만드는 지장공예(紙裝工藝), 종이를 여러 겹 붙여 두껍게 만드는 후지공예(厚紙工藝)가 있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이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즐거움을 아름답게 가꾸어왔던 한지공예는 우리 민족의 얼이 가장 짙게 묻어나는 향토예술이다. 또한 옛것을 재현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손길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멋진 일이다.


요즘 시니어 J는 결혼을 앞둔 딸을 위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팔각 반짇고리를 만들고 있다. 한지 채색도 직접 하고 전지공예로 문양도 직접 오려 붙이고 말려서 예쁘게 만들어줄 생각이다. 딸의 어릴 적 사진을 실루엣으로 오려 한 부분을 장식하고 그 왼쪽에는 사윗감의 어릴 적 사진도 실루엣으로 오려 마주보도록 장식하려 한다. 취미도 살리고 천 년을 간다는 한지로 세상에 둘도 없는 공예품 선물을 만들고 있는 시니어 J의 한껏 들뜬 기분이 가을 하늘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ㆍ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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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국민은행에서 발행하는 GOLD&WISE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oney.kbstar.com/quics?page=C01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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