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가을바람을 가르자
“지나친 속도 경쟁은 그 속도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대가가 그걸로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큰 법이다.”
오스트리아 거리의 신부 ‘이반 일리히(Ivan Illich)’가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Energy and Equity)>(1974)에 쓴 문구다.
자동화된 가속도의 무익성을 강조한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자전거’다.
대가보다 이익이 더 많고 자연과 가장 가까워 더욱 인간적인 이동 수단 자전거, 이 탈것이 지닌 무한의 가치를 찾아보자.
학창 시절 교통수단이던 ‘자전거’
자전거 선수 복장을 한 데이브라는 청년이 인디애나폴리스 캠퍼스를 쏜살같이 달린다. 대학 도시에서 중고 자동차 판매상 아버지를 둔 데이브를 포함한 네 젊은이는 미래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종종 대학생 녀석들과 자존심 싸움도 벌여야 한다. 데이브는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500마일 자전거 경주에 참가하기로 맘먹는다. 어느 날 꿈에 그리던 친자노 팀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데이브는 가짜 대학생 신분으로 자전거 경기에 참가한다. 대평원 위로 부는 바람을 가르면서 움직이는 자전거 페달과 작곡가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이 조화를 이루면서 심장은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직장, 학교 등 계획한 일이 모두 꼬여 여름을 빈둥거리며 보내게 된 열아홉 살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브레이킹 어웨이(Breaking Away)〉의 한 장면이다.
자전거 통학 6년 차, 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나는 1980년 7월 30일, 강원도 원주의 ‘시공관’에서 다른 나라 또래 청년을 이 영화의 ‘자전거’를 통해서 만났다. 그저 통학 수단에 불과한 ‘자전거’와 별 생각 없이 ‘학생’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대학’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한 매개가 되었다. 뒤늦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데이브가 친자노 팀과 대결하듯 불같은 질주로 대학을 향해 달렸다. 어찌 보면 나에게 자전거는 ‘내 인생의 사과’와 같은 존재였다. 여러분은 자전거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는가.
자전거, 제2의 전성기를 맞다
세계적으로 자전거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네덜란드로, 인구 대비 자전거 대수가 10%나 많은 110%다. 두 번째로는 덴마크가 83%. 특히 네덜란드의 자전거 통근 교통 분담률은 27%, 덴마크는 19%를 기록해 경제 효과도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유럽인의 자전거 사랑은 유별나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취미는 ‘반데른(Wandern)’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산책하다, 도보 여행하다’는 뜻인데, 자전거 하이킹을 하면서 자연 경관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 일반적 형태다. 알프스에서 빈에 이르는 5만여 km의 자전거 하이킹 도로에는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자전거를 빌려주는 반데른호텔(Wandernhotel)도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른바 삶의 질이 부각되면서 건강과 연결된 레저, 그리고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하는 매개체로 자전거가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석유 동력에 지배당하는 현대인의 비루한 삶의 조건과 효율성만 따지는 디지털 문화를 거슬러 친환경과 건강이라는 화두가 맞물리면서 자전거 인구 1천만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4대강 자전거길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시니어의 추억의 자전거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전국 순환형 자전거 도로 건설을 목표로 안전행정부가 추진하는 자전거길은 총연장 2,174.5km다. 이는 4대강을 중심으로 기존 자전거 도로 길이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상생을 꾀하면서 기존의 도로 시설은 활용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조성하는데, 투자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커 자전거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 완공된 주요 자전거 도로만 보더라도, 낙동강(389km), 금강(146km), 영산강(133km), 남한강 (132km), 새재(100km), 북한강(70km), 한강(56km), 아라(21km) 등으로 1,000km가 넘는다. 자전거를 즐기기 위한 인프라는 부족함이 없는 셈이다.
3년 전에 환갑을 맞은 시니어 F의 자전거 사랑
그가 자전거와 인연을 맺은 건 3년 전이다. 30년간 근무한 직장 생활의 마지막을 CEO로 장식한 그는 집에서 칩거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한가한 날이면 안양천 변을 따라 여의도까지 걷곤 했는데, 어느 날 튕겨 나갈 듯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하고 비호처럼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백발이 성성한 시니어 자전거 운전자를 목격하고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침 자전거 예찬론을 펴던 옛 직장 동료가 있어 그의 조언을 받아 차근차근 입문 과정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 예찬론자로 변신한 시니어 F는 자전거 보급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그에게 ‘시니어를 위한 자전거와 친해지는 8가지 지름길’을 들어보았다.
첫째, 안전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바로 안장 위의 사람. 안전이 최우선이다.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안전 용구부터 준비하라. 헬멧과 무릎 보호대, 신발과 장갑.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보다 보행자라는 안전 의식이다. 추월할 때, 방향 전환할 때, 야간 주행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하고 교통 법규를 지켜야 한다.
둘째, 몸에 맞는 자전거를 친구와 함께 골라라.
외관보다 용도와 체격에 맞는 나의 자전거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안장의 모양과 크기, 손잡이의 굵기와 크기, 발의 아치를 메울 수 있는 깔창이나 웨지, 손과 손목을 보호하는 장갑도 신중하게 골라라. 부품을 사서 조립하면 애착도 커지고 수리할 때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서 좋다. 여성용과 남성용 안장이 다르니 세심하게 대응하라. 몸에 맞지 않는 자전거는 시니어의 몸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망가뜨릴 수 있다.
셋째, 과욕은 금물, 분수에 맞는 자전거를 구매하라.
시니어라면, 가격부터 확인하는 유치한 기준은 버리자.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자전거 본체를 두고 구매력 경쟁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유가 있어도 ‘구매 가격은 200만원 전후면 무방하다’는 것이 시니어 F의 의견.
넷째, 라이딩을 즐겨야 건강해진다.
건강을 위해 시작하면 무리하게 된다. 특히 시니어는 목표 지향적이어서 시작부터 무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건강이 따라온다.
다섯째, 처음엔 20km 정도면 좋다.
100km를 한계로 정하자.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주니어적 힘 자랑에 경도된다. 그러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경주하듯 달리면 후유증으로 시달리게 된다. 자칫 장기 질환이 될 수도 있다. 시니어 F는 본격 시작 3년 만에 하루 100km를 7시간에 주파한다고 한다. 이렇게 타고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물론 다음 날은 무조건 쉰다.
여섯째, 자전거를 타는 시니어는 비만이 없다.
자전거 1시간 타면 1만 보를 걷는 셈이고, 약 360kcal 정도 열량이 소모되어 비만 관리에 보약이나 다름없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특히 하체 관절 위험이 없어 비만 치료 운동으로 적합하다. 그래서인지 자전거 타는 비만 시니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일곱째, 자전거 동호회에 참여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새로운 길을 도전할 때 용기를 주고, 위험에 처해도 서로 도울 수 있다. 게으를 때 독려도 되고, 작은 소속감에 덜 외롭고 더 행복해진다. 다만, 시니어에게 취약한 부분인 어울려서 음주하고 취중 운전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째, 순응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라.
일기가 좋지 않으면 포기해도 좋다. 오르막에서 방심하지 말고, 내리막에서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일상의 답답함을 풀어줄 도구이자 탈출구가 필요한데, 자전거야말로 멋진 대상이다.
항상 여유 있게 타는 것이 좋다.
자, 시니어 F가 제시한 8가지 지름길, 선택은 본인에게 달렸다.
자전거는 과거의 운동신경을 기억해내는 영험한 도구다
고향 음식이 향수병에는 특효약이라고 했나. 자전거는 과거의 운동 신경을 기억해내는 영험한 도구다. 잔근육을 키워주는 근력 운동, 심폐 기능을 높여주면서 관절을 풀어주고 허리 근육을 단련해주는 자전거 타기, 몸에만 좋은 게 아니다. 무엇보다고 답답하고 우울한 시니어의 현재를 떨쳐버리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스트레스를 없애므로 정신 건강에 좋다. 이제 두 바퀴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우리나라 어디든 갈 수 있다. 페달을 힘껏 밟아 스피드를 즐기다가 지나치기 아쉬운 경관을 마주치면 언제든지 멈처 서서 내 마음이 찰 때까지 정취를 누릴 수 있다. 자전거로 가을의 바람을 가르자.
시니어 F가 추천하는 서울 출발 100km 코스
: 목동 - 여의도 - 잠실 - 하남 - 팔당대교까지 왕복 100km, 수도권 시니어들이 가장 사랑하는 코스다.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원정대'가 지난 8월 13일,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출정식을 하고, 한반도 통일과 유라시아 시대의 꿈을 향해 첫 페달을 밟았다. 원정대는 100일간 폴란드·발트 3국·러시아·카자흐스탄·몽골·중국 등을 거쳐 서울까지 1만5,000km 대장정에 도전한다. 이 원정대에도 많은 시니어가 참여한다.
시니어 여러분, 이번 기회에 자전거에 휙~ 올라타시고 가을바람을 갈라보시라!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ㆍ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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