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필가께서 하시는 말씀이 ‘해외여행’이 아니라 ‘국외여행’이 맞는단다. 그런데 막상 ‘국외여행’ 하니까 입이 익숙하지 않다. 마치 오랫동안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부르면서 얼마나 불편했던가. 똑같은 심정이다. 설명을 들어보니 ‘해외’는 섬나라인 일본에서 쓰는 ‘외국’을 뜻하는 말로 쓰는 일본토속어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국외’로 쓰는 것이 바르다는 조언을 받았다.
대안 지식이 없으니 꼼짝없이 ‘국외여행'이라고 불편하지만 써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냥 조언대로 쓰려고 하니 조금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지적을 받은 바 없고, 각종 매체에서는 ‘국외여행'이라는 단어를 전혀 쓰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터넷 ‘국립국어원 표준 대사전(http://korean.go.kr)'에서 검색을 통해 정답을 찾아보았다.
‘해외여행’ 의 뜻은 검색되는데, ‘국외여행’은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국외여행'과 ‘해외여행' 사이를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이 줏대 없어 보인다. 아무튼, 본 칼럼에서는 그 수필가의 조언에 따라 애국적인 단어인 ‘국외여행’을 한결같이 써보기로 한다. 조언이라고 항상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니 참고해야 한다.
‘국외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다녀온 선배의 얘기를 통해서, 정교하고 전문적인 조언을 통해서 망신당한 사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선배는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 드골 공항에서 국적기를 타고 11시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여름휴가를 마무리했다.
요즘은 ‘꽃보다 할배' 덕분에 민박과 호텔 예약을 통해서 스스로 계획을 짜고, 주로 현지와 동화해서 대중교통도 이용하고 길거리 식당에서 예약 없는 발길 닿는 식사도 즐기는 게 대세라고 자랑을 했다. 짜인 일정대로 모시고 다니는 패키지여행보다 신경 쓸 일도 많고 비용도 더 들지만 참다운 여행을 즐기는 데는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휴가가 무작정 쉬는 것만이 대세가 아니라 새로운 활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선배의 지혜와 경험은 소중하니 잘 받아 간직하자는 생각으로 수용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는 사람과 유리에 갇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사진. 김형래
그런데 선배는 마지막 여행 코스에서 ‘조언' 때문에 망신을 당했다는 고백을 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아내가 꼭 가고 싶다는 파리의 ‘몽*주 약국’을 들렀다는 것이다. 선배는 국내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비싼 화장품을 헐값에 살 수 있다고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고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형수는 그동안 신세 진 주변 친구와 시누이가 눈에 밟혔다.
‘이번 기회에 점수를 따볼까?’하고 망설이고 있던 차에, 옆에서 솔깃한 조언이 들려왔다는 것이다. 이미 ‘몽*약국'은 한국 관광객이 수십 명이나 들어차 있었고, 상품 안내도 한글로 쓰여있으니, 주변 소음도 한국말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세관 신고서 두 장을 쓰면 돼, 적발 안 되면 신고 물품이 없다는 신고서를 제출하고, 적발되면 제대로 작성한 신고서를 제출하면, 끝.”이라는 얘기였다는 것이다.
세관의 달인처럼 열변을 토하는 한 한국인을 보면서 여행사 직원이거나 현지 안내자라는 확신이 들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떻게?”라는 질문을 직접 해보았더니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아주 가소로운 표정과 함께 반복 설명을 유창하게 하더라는 것이다. 요즘 들어 점점 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느끼도록 변하는 형수는 그 말에 확신을 얻은 듯, 대범하게 ‘명품 화장품'을 덥석 샀다는 것이다. ‘조언자'의 신분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선배는 형수의 광적인 화장품 구매를 말려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어찌 한국 아줌마의 의지를 중년 남성이 제지할 수 있겠는가? 화장품을 볼록이 비닐로 칭칭 감고 덩어리로 만든 후 외관을 티셔츠로 감싸서 마치 옷 뭉치처럼 보이게 하고는 여행 가방 깊숙이 위치를 잡았다는 것이다. 물론 세관신고서는 두 장을 썼다. 형수는 11시간이나 되는 귀국 비행기에서 여독이 깊었음에도 잠 한숨 못 자면서 뒤늦은 걱정과 작전을 반복했다.
인천공항에 내려 수하물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관문에서 들통이 나고 말았다. 형수의 여행 가방이 세관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삐리릭!”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못 보던 노란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었고, 세관원이 노란 자물쇠를 풀며 가방을 강제로 열어볼 때 형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 한 장 제출해야 할 세관신고서를 두 장 제시했다는 것이다. 고의성을 입증하는 증거를 스스로 제시한 셈이다.
결국, 가산세율 30%의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면세 한도 40만 원을 넘은 것은 물론이고 ‘원산지 신고 문안’을 적어오면 과세가격의 10%만 세금으로 내게 되는 기회도 잃었다는 것이다. 선배는 부과된 가산세보다도 검색대 옆을 지나며 찡그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다른 여행객의 시선이 더 신경 쓰였다고 했다. 비행기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던 노부부의 걱정스러운 눈길에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선배는 모처럼 가족과 떠난 ‘국외여행’을 ‘망신'으로 마무리했다. 선배는 가산세보다 평소 소심했던 형수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 걱정했지만, 형수는 ‘액땜 잘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남편에게) 더 큰 누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공항을 나왔다고 한다. 선배는 파리 ‘몽* 약국'에서 ‘조언’한 그 전문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본인 스스로 신문 기사에서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면세 한도 초과 적발 건수 수치를 보면서 혀를 찾던 기억을 되짚으면서 반성했다고 한다.
‘몰라서 그런 일이니 봐달라.’ 는 변명이 용인되지 않는 세월에 살고 있다. 거기에 옳지 않은 ‘조언'으로 정도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세법도 매해 바뀐다. 2014년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입국 시 세관에 자진하여 신고하는 여행자는 간이세율 적용 산출 세액의 30% 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자진 신고하지 않고 적발되면 가산 세율을 40%로 높이기로 했다. 특히 국외여행을 떠날 때는 국세청과 항공사에서 알려주는 정확한 법률을 근거로 행동하는 바른 시민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밑져야 본전은 좋은 절약 방법이 아니니 편법으로 돈 아끼려 하지 말자. 마무리가 좋은 국외 여행을 위한 첩경이다.
<(주)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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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조선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27/20140827013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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