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음반 취입’한 가수다
지난 2010년 여름, 한 이탈리아 청년은 인천공항에 입국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어린아이나 어른이 이탈리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Li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a.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Come le nuvole che volano, Pien’ d’umanita in fondo all’anima….”
많은 사람이 흥얼거리던 그 노래는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였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탈리아 노래를 유행가처럼 따라 부른단 말인가?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내세우면서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자며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다. 따뜻한 감성으로 다가왔던 그 프로그램은 KBS2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코너에서 진행한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미션이었다. 그 미션 중 합창단의 ‘노래’에 대중이 크나큰 관심을 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의 한 코너지만, 뮤지컬 <명성왕후>의 음악감독이었던 ‘박칼린’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지휘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추억을 다시 1986년으로 돌이켜 영화 <미션(The Mission)>의 주제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에 가사를 붙여 만든 이탈리아 노래 ‘넬라 판타지아’를 길거리 어디서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유행시켰다. 합창단 모집을 위한 오디션부터 큰 관심을 끌더니 노래를 통해서 성별, 나이, 직업 등의 벽을 넘어서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음을 느끼게 한 좋은 프로였다.
시니어 Y에게는 예선 탈락이라는 아픈 기억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노래라는 단어만 나오면 마이크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선창으로 답한 그가 ‘남자의 자격’ 오디션에 참가해 본선도 아닌 예선에서 탈락했다. 대학 입시부터 회사 진급까지 인생에서 승승장구하던 Y는 그날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노래방으로 가서 내리 5시간을 실신할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그날 노래방 주인에게서 “선생님, 그깟 예선에 떨어진 것, 마음에 너무 담아두지 마세요. 저희 노래방에서는 최고의 가수이신데요” 하는 말과 함께 ‘음반 취입’ 권유를 받았다. 그냥 ‘나도 가수’가 되라는 주문이다.
한편, 시니어 Y는 ‘노래교실’을 다닌 지 10년이 넘었다. 흥에 겨워 흥얼거리는 수준에서 좀 더 정확한 음정과 박자로 부를 수 있게 된다면 듣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고,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처음 백화점 문화센터의 노래교실에 신청서를 내던 날 남다른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노래교실’ 첫 시간에 아차 싶었다. 남자라고는 30명 정원에 자신을 포함해 두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 수가 너무 적어 어색했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나니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3개월 과정 중 중도 탈락자는 1/3 이상으로 생각보다 많았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석 달 과정을 마치면 신곡으로 20~30곡은 익히게 된다. 노래를 배우는 방식은 강사가 먼저 전체를 불러주고, 한 소절씩 합창으로 따라 부른다. 특별한 방식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어려운 노래도 쉽게 배우게 된다. 잘 알려진 곡이면 10분, 신곡은 15분이면 멋을 내서 부를 수 있었다. 합창을 통해서 노래를 배우고 부르다 보면 광야를 달리는 듯한 시원함이 밀려온다. 온갖 스트레스가 풀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원 없이 큰 소리로 내 몸속에 있는 소리통을 가득 울리고 나면 세상 근심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열심히 배우는 이는 노래책을 나눠주면 즉시 그 가수 노래를 내려받고, 노래교실 사이트에 올려진 강사의 노래도 내려받아 두 곡을 두고 나란히 공부한다. 휴대폰에 저장해 수시로 듣고, 점심시간에 짬을 내 노래방에서 연습도 한다. 준비가 되면 노래교실의 복습 시간에 자청해서 부르는데,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노래교실의 우등생이 되는 길은 열정만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나의 18번’을 다시 정하는 것. 배운 노래 중 호흡도 음역도 가사도 맘에 드는 곡을 택해 집중 연습하면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자리에서 뒤꽁무니를 빼는 일은 없어진다. 노래교실이 주는 마력은 대단하다.
노래교실을 언급한 까닭은 많은 사람과 함께 부르며 자신감을 얻으려는 것과 강사를 통해서 교정을 받으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자는 의도일 뿐, 충분히 준비된 시니어는 녹음실로 직행해도 된다.
시니어 Y가 정리한 ‘시니어가 노래를 더 잘하는 법 7가지’
첫째, 동성(同性)이 부른 노래를 골라라. 남자가 여가수의 노래를 부르면 음역(音域: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저 음에서 최고 음까지의 넓이)이 달라 따라 부르기도 어렵지만, 분위기도 달라지기 쉽다. 혹시 고른 노래의 음역이 다르면 음조(音調: 음의 상대적 높낮이)를 높이거나 낮춰 부르면 노래를 더 잘 부를 수 있다. 노래방 기기를 조작하면서 불러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둘째,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를 골라라. 듣기 좋은 노래와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는 전혀 다르다. 유심히 보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고른 노래는 대부분 어려운 노래가 아니다. 물론 가수 뺨치는 실력을 갖춘 이는 예외다.
셋째, 내 18번은 적어도 두 곡을 준비하라. 발라드와 트로트 한 곡씩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장소나 분위기에 따라 달리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노래만으로 CD에 녹음하려면 16곡 이상을 준비해야 한다.
넷째, 노래에 감정을 실어라. 노래는 가사에 음정을 넣어 읽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언어에 실어 표현하는 것이다. 가사를 충분히 음미하고 감정을 담아 부르면 노래에 큰 날개가 달려 그 맛이 달라진다.
다섯째, 배로 부르면 ‘음 이탈’을 막을 수 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긴 호흡을 감당할 수 있다. 목으로만 부르면 음색의 변화를 내기 어렵고 음이 이탈할 수도 있다. 틈나는 대로 복식 호흡을 연습하면 도움이 된다.
여섯째, 강약을 조절하라. 제대로 표현하려면 반주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유원지에서 ‘바이킹’을 탈 때 계속 손잡이를 쥐고 있으면 속도를 즐기기보다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강할 때와 약할 때를 맞추어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일곱째, 정확하게 발음하라. 친구와의 대화를 녹음했다가 들어보라. 두 사람의 발음 정확도를 금세 알 수 있다. 노래도 가사를 전달해야 하기에 입 근육을 정확하고 크게 움직이면서 부르는 습관을 들인다. 노래에서 사투리 같은 지방색은 절대 금물이다.
나도 가수처럼 CD로 취입하자
취입(吹入)이란 단어의 뜻은 ‘레코드나 녹음 테이프 등에 소리를 녹음한다’는 뜻이다.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뜻이 생소하지는 않다. 가수와 관련된 기사에 자주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 가수만 음반을 내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전 전북지사 유종근 씨가 재직 시절인 1997년 자신의 애창곡과 ‘그리운 금강산’ 등 총 14곡을 담은 CD를 내놓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문화 예술의 고장인 예도 전북의 맥을 잇고 좋은 노래 부르기 운동을 통해 도민 화합을 이루자는 차원에서 CD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클래식 음악 중심으로 CD를 냈다.
CD 음반 사업의 초기에는 녹음 비용이 부담스러워 망설였지만, 요즘은 각종 오디션이 범람하고 비용도 저렴해 ‘나도 가수다’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음반 취입이 대중화되었다.
충분히 연습하고 준비했다면, 음반은 어떻게 취입해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노래방에서 음반을 취입하는 것이다. 최신 노래방 기기는 반주기에 USB를 연결해 녹음하고 CD로 옮겨 담는 기능이 있다. 녹음을 위한 비용이 별도로 들지도 않고, 반주기가 작동하므로 실감나는 음반을 만들 수 있다. CD 표지 제작과 복제는 컴퓨터를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다음 방법은 여럿이 공동 작업해 전문 녹음실에서 CD를 만드는 것이다. CD 한 장에 담기는 곡은 15~16곡, 시간은 약 75분, 비용은 50만원 정도. 이를 혼자 준비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전문 녹음실은 녹음 장비와 방음 시설뿐 아니라 녹음된 음원으로 ‘수정’해주기 때문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인위적으로 고음과 저음을 조정해주는 것뿐 아니라 음정도 맞춰주니 노래방 반주기보다는 더욱 맘에 드는 음반을 얻을 수 있다. 합창단이나 노래교실 동기생 또는 가족이 함께 취입하면 추억도 되고 비용도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최종 목표는 단독 CD 취입. 선곡부터 녹음까지 모두 자신의 몫이다. 꼭 16곡을 채워야 하는건 아니지만 녹음 비용은 모두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도 음반 취입한 가수’가 된다는 것. 인터넷 검색창에 ‘레코딩 스튜디오’를 입력하면 다양한 가격과 시설의 녹음실을 검색할 수 있으므로 선택의 기회는 충분하다. 노래 애호가에게 음반 취입은 시인이 시집을 발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니어 Y는 단체 음반 2집을 낸 뒤 단독 1집을 준비 중이다. 녹음 전에 한 곡을 1,000번은 불러야 제 소리를 낼 수 있다고들 하는데…! 준비하는 노래는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 윤현석의 ‘LOVE’, 안치환의 ‘내가 만일’,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서문탁의 ‘난 나보다 널’, 조덕배의 ‘꿈에’ 그리고 30년 애창곡 박강성의 ‘문 밖에 있는 그대’로 정했다.
시니어에게 무엇이 두렵고 방해될쏘냐? 시니어 Y는 곧 단독 ‘음반 취입’한 가수가 된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ㆍ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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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KB국민은행에서 발행하는 GOLD&WISE 2014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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