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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

[Senior 골든라이프-31] 닷새는 도시 생활, 이틀은 농촌 생활, 5都2村 GOLD & WISE 5월호

by Retireconomist 2014. 5. 27.




160년 전 독일의 의사인 다니엘 슈레버 박사는 아프다고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에게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채소를 가꾸는 농사일을 하라’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얼핏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현재 이 처방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도시와 농촌, 두 곳에서 생활하면 가능할 텐데, 비법처럼 전해지는 그 얘기를 따라가보자.


부족한 생활 가운데 심성 순화에 도움을 주는, 러시아의 ‘다차'


러시아 여행을 길게 다녀온 손 시니어(59세)는 친목 모임에서 좀처럼 발언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는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보편화한 상황에 별다른 흥미 요소를 갖기 쉽지 않았음에도 그는 오히려 관심을 끌었다. 현직 시절 업무상 알고 지내던 러시아 파트너가 퇴직한 선배를 초청했다는 것이다. 반드시 부부가 함께 옷가지만 챙겨오라는 요청에 따라 달랑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러시아에 갔는데…. 그의 얘기가 줄줄이 엮어지는 가운데 ‘보드카’, ‘다차’, ‘샤슬릭’, ‘바냐’ 등 알지 못하는 러시아어가 수시로 터져 나왔다. 내용은 이랬다. ‘다차’에 가서 ‘샤슬릭’ 요리를 하고, ‘보드카’를 마시고, ‘바냐’에서 사우나를 했다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러시아’는 ‘다차’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차’는 다른 국가에는 없고 러시아에만 있는 문화로, 러시아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코드였다. 


낯선 단어 ‘다차(Dacha)’는 우리말로는 교외별장, 여름농장, 주말농장, 텃밭 등으로 풀어볼 수 있다. 러시아어로 다차(Дача)는 ‘주는 것, 부여, 증여’라는 뜻으로, ‘다차’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직장으로부터 공짜로 받는다. 그런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러시아에서 도시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다차는 모스크바에서 교외로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다. 


통나무집, 작은 벽돌집이 그것으로 구소련 시절 식량난 해결의 방법으로 근교에 조금씩 땅을 배분하고 식량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독려한 시스템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었고, 구소련식 휴가는 1년에 2개월이었으니 주말이나 여름휴가 기간에 농사지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니 이곳 ‘다차’에서 감자나 양파 등을 가꾸는 이중 거주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 간부나 고위 공무원에게는 잘 지은 교외의 별장을 나눠줬는데, 이를 모두 ‘다차’라고 했다. ‘다차’가 부족한 생활 가운데서도 러시아인이 자연과 함께 여유로운 심성을 갖게 한 원천이라 여길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 손 시니어의 얘기였다.



도시민에게는 건강과 휴양을 위한 공간, 독일의 ‘클라인 가르텐'


독일 의사이자 교육자인 다니엘 슈레버 박사는 아프다고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에게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채소를 가꾸는 농사일을 하라’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그는 19세기 산업화로 인해 도시 인구의 급증과 교외 녹지대에 집단 거주하는 빈민을 위한 먹거리 마련 수단, 그리고 도시민의 건강과 휴양을 위한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또 1894년에 그가 설립한 ‘슈레버가르텐협회’는 오늘날 ‘클라인 가르텐(Klein Garten, 작은 정원)’의 효시가 되었다. 


지속적 관심과 발전을 거듭한 끝에 1983년에 독일연방 클라인 가르텐 법률이 제정되고, 이용과 휴양을 위한 정원으로 개념이 정리되었다. 이는 통나무집을 지을 때 건평 20㎡ 이상의 건축은 불가하고, 기초 건축에 대한 규정을 지키고, 체재 시설은 휴식만 가능하되 숙박은 불가하고, 정원은 본인이 직접 관리해야 하며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위탁 관리도 불가하고, 관리가 부실해 정원이 보기 흉하면 강제 퇴출할 정도로 엄격하게 운영된다. 아마 잘 관리해야 도시민의 사랑을 받는 여가 이용 시설인 동시에 협소한 일상생활에 찌든 심신을 정신적·육체적으로 회복해주는 휴식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클라인 가르텐은 온 가족이 함께 일하고 체험하는 순수한 체험 공동체로, 어린이에게는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인격 형성에 긍정적 효과를 제공하며, 시니어에게는 퇴직 후 인생의 황혼기에 소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사회로부터의 격리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주말에만 편히 쉬려고 별장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애초 회원이 될 자격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클라인 가르텐에 정원 동호인협회가 조직되어 있는데, 그 수는 약 1만5,000개소고, 회원수는 약 120만 명에 달할 정도며, 1년 임대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래서인지 어린아이가 많은 가정, 장애우 가족이나 시니어 가족 등에게 우선 배정된다. 특히 어린이의 놀이 공간과 농사 체험을 중점 사항으로 두고 있다니, 여행할 예정이라면 일정에 넣어 꼭 한 번 다녀오는 것도 좋은 경험일 듯싶다.



농산어촌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휴가, 일본의 ‘그린 투어리즘


‘그린 투어리즘(Green Tourism)’은 행정 용어로, 소비자 지향의 도시민을 위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목표로 ‘농산어촌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휴가’를 위해 제안되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오늘날 농촌의 자연, 경관, 문화 등 다원적 기능은 그린투어리즘의 자원이 되기 때문에 다원적 기능을 보전하는 활동도 정책의 목표로 설정되었다. 1990년대 거품 경제의 붕괴로 농산어촌의 리조트 개발이 파탄에 빠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되었다. 


1993년부터 본격 추진된 일본의 그린투어리즘은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고, 농촌에서도 이를 수용하려는 자세가 무르익고, 농촌의 아름다운 경관, 풍요한 자연과 전통문화 등 다원적 기능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높아지면서 서서히 정착했다. 2000년 ‘식료·농업·농촌기본계획’에서는 농촌 진흥 시책의 중요한 축으로 도시 농촌 교류가 설정되고, 그 가운데 그린투어리즘은 ‘농촌에서의 체재형 여가 활동’이라고 해 도시 농촌 교류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농림수산업과 농산어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일본 국민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의 전환을 ‘애그리 라이프(Agri-life)’라고 한다. 이는 ‘스스로 밭을 일구어 안심하고 제철의 먹거리 섭취, 자연과 농업의 중요성 재인식, 점차 잃어가는 자신의 것 되찾기’라고 할 수 있다. 국민 각자의 생명과 삶을 지탱하는 농림수산업이나 식생활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생활에 농업의 기본 원리를 도입한 ‘농업이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민에게 사랑받는 농업, 농촌 가꾸기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업·농촌에 대한 접근, 그다음 단계는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 농업·농촌에 대한 사랑과 마지막 단계로 농업·농촌에 정주(정착)의 단계로 ‘애그리 라이프’를 실현하고 있다.



‘체재형 주말농장’으로 한국형 국민 농장을 구상하자


다차, 클라이 가르텐, 그린투어리즘, 애그리 라이프를 하나로 정의하면 ‘체재형 주말농장’이라 할 수 있다.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5도 2촌으로 표현되는 체재형 주말농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4년 농촌사랑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추진되면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런 ‘체재형 주말농장’은 은퇴를 예정하거나 은퇴한 시니어의 눈길을 끌 만하다. 어떤 면에서 영토적 개념의 국가나 사회가 진화하면서 거치는 하나의 통과의례가 아닌가 싶다. 


인구의 사회적 구성이 고령화됨과 노동의 사회적 조직 방식의 변화로 휴가 시간이 증가한 것, 그리고 서비스 농업의 발전에 따른 농업과 사회와의 관계가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중심권에 속한 나라 대부분에서 ‘체재형 주말농장’ 같은 현상이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21세기 유망 산업은 통크(TONK)족의 산업이다. ‘Two Only No Kids’의 약어로 손자 손녀 돌보는 데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부부 둘만의 인생을 추구하는 노년기 부부를 일컫는 말이다. 21세기는 바로 이들 통크족의 시대라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제 통크족은 슈레버 박사가 내린 처방에 따라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채소를 가꾸는 농사일을 하는 것이다. 건강과 휴양을 즐기는 공간에서 친환경 농작물을 계절별로 자급자족하는 형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이틀 동안 농촌을 가까이하는 친농 활동을 통해 인생에서 보람을 찾고, 귀농의 가능성을 심도 있게 모색하는 준비 단계를 시험해보는 기회기도 하다. 


손 시니어는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 작은 집을 짓는 정보 수집에 푹 빠져 있다.300평(약 990㎡)의 땅을 사서 체재 시설을 짓고, 주말농장도 가꾸겠다는 것이다.  “먼저 가족 두 명이 머물 수 있는 체재 시설 8평(약 26㎡)을 지을 거야. 주차창은 5평(약 17㎡)이면 되고, 집의 울타리는 사철나무나 측백나무 중 골라 심고, 밭 60평(약 200㎡)에는 매실나무, 감나무, 호두나무 등을 심고, 또 건강 약초원으로 꾸릴 밭 30평(약 100㎡)에는 오가피나무, 헛개나무, 황지를 심고, 화원으로 삼을 다른 밭 30평(약 100㎡)에는 야생화와 달리아를, 채소밭 30평(약 100㎡)에는 잎채류와 열매채소류, 양념채소를 심을 예정이지. 또 건너 다른 밭 30평(약 100㎡)에는 대체 식량인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심고, 마당 끝 한 귀퉁이 20평(약 66㎡)에는 닭 사육장을 만들어 자연 순환 농법으로 거름을 만들고, 나머지 30평(약 100㎡)에는 아내의 취미 농원을 만들어 표고버섯을 심을 거라네. 이렇게 집도 짓고 농사를 지어도 990㎡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나?” 손 시니어의 ‘체재형 주말농장’은 무엇보다 경쟁 사회를 뚫고 살아오는 동안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더 시급했는지 모른다. 


“열심히 일만 한 시니어에게 ‘체재형 주말농장’을 권함은 부동산 투자가 아니라 정신적 해방구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손 선배의 조언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도시에서 90분 이내 적정 주거 면적 66㎡, 집값과 땅값 모두 더해 1억원 이하면 ‘체재형 주말농장’을 만들고 싶다는 50대와 관련한 기사가 떠올랐다. 귀농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흙을 만지면서 (자연을 통해) 정화하고 싶다(도시 생활을 통해 쌓인 노폐물)는 것으로 이해했다. 농촌으로 이사하지 않고 이틀을 농촌에서 맑은 햇볕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노동으로 정신을 치유하는 생산적 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5都2村! 망설임 없이 시니어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심신이 건강해지는 생활 방식이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ㆍ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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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KB국민은행에서 발행하는 GOLD&WISE 2014년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oney.kbstar.com/quics?page=C01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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