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92년 1월 이후로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다. 1981년이래 10년간의 점진적인 준비와 간접개방단계를 거쳐 92년 1월 4일부터 외국인의 국내주식에 대한 직접증권투자가 허용됐다. 이에 따라 국제분산투자의 직접적인 대상이자 세계자본시장의 일부로 편입된 한국증권시장은 개방에 따른 어려운 과제를 걸머지게 되었다.
자본자유화의 전제조건은 무역자유화에 따른 경제의 성숙과 규모의 확대, 외환 자유화와 금융 자율화에 따른 환율의 안정과 금리의 자유화, 간접규제에 의한 통화관리, 국내 증권산업의 경쟁력향상, 국내 증시의 공신력 향상을 위한 기업공시제도와 회계제도 등의 제도정비 등을 들 수 있다.
외국인이 주식을 산다면 오르고 판다면 내리니, 주식을 사는 외국인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 끝에 단비와 같은 존재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바로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가 외국인 신분으로 국내 증권시장에 투자하는 때도 외국인이니 아니라 할 수 없다. 한국계 미국인을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 아무리 급해도 길거리 조각품으로 못을 뺄 수는 없다 / 사진. 김형래
미국도 세금을 많이 걷어야겠다는 정책을 쓰는 형세다.
해외계좌납세협력법(FATCA, 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이란 것이 검은 머리 외국인 중 하나로 표현되기도 했던 미국 영주권 또는 시민권자들에게 7월부터 직접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FATCA라는 것은 미국 정부가 국외 탈세를 막기 위해서 국외 계좌 신고제도를 더욱 강화한 법안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 미국 시민·영주권자가 한국 내에서 금융거래를 할 때 이자소득이 생기면 15.4% (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로 원천징수 후 차액을 받는다. 그리고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초과할 때 초과하는 금융소득은 다른 소득과 합산해 기본세율 (6.6%~41.8%)를 적용해 소득세를 계산한다.
반면 비거주자인 미국인은 한국과 미국이 조세협약으로 약정한 13.2%의 세율로 원천징수한다. 그게 전부다. 한국 내 금융소득에 대한 소득세는 원천징수로 종결된다. 대신 미국에서 소득세 신고를 할 때는 한국 내 금융소득을 합산하고, 한국 내에서 낸 13.2%의 원천징수 세금은 뺀다. 결국, 한국 내에서 원천징수한 13.2%보다 높은 누진세율이 적용될 때 미국에서 소득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금융회사와 거래하는 미국인 중에서 이런 절차로 소득세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의 금융소득을 미국에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아서다. 이런 미국인이 많은 이유는 신고만 하지 않는다면 미국 국세청에서 한국 내 금융소득 내용을 알아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국세청은 해당 자료를 매년 미국 국세청(IRS: Internal Revenue Service)에 전산으로 넘겨준다. 하지만 미국 국세청에서 과세 자료로 활용하기에는 부족하다. 한국에서 파악한 이름·주소·납세자식별번호로 정확하게 미국인임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FATCA에 따르면 해외금융기관(FFI: Foreign Financial Institution)은 미국 국세청과 2014년 6월 30일까지 국외 금융기관 협약을 체결한다. 협약에 따라 미국인이 보유한 계좌를 식별하고 관련 자료를 정기적으로 미국 국세청에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FATCA에서는 계좌 소유주의 자발적인 보고뿐 아니라 금융기관에도 미국인 정보를 넘기라고 요구한다. 결국, FATCA가 시행될 때 계좌소유주의 자발적인 보고가 없어도 그동안 FEAR 보고를 하지 않은 것까지 미국 정부에서 알게 된다. FATCA의 기본 목표는 해외계좌(Off-shore accounts)에 직접 투자하거나, 간접투자의 방식으로 국외법인을 소유하면서 미국 세금을 회피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FATCA 이행을 위해 국외 금융기관 협약과 국가 간 협의(IGA: Intergovernmental Agreements)를 동시에 진행한다. 결국, 2014년 7월 1일부터 FATCA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2014년 6월 30일 이전에 은행별로 5만 달러(현금성 보험자산은 25만 달러) 이하로 낮춰야 한다. 또한, 2014년 6월 30일 이전에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완벽하게 FATCA 규제를 피하긴 어렵다. 금융재산 외 다른 유형의 자산으로 변경되더라도 언젠가는 보고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FATCA 시행에 은행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신고 의무를 소홀히 한 금융사에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30%가 원천 징수되는 등 개인뿐 아니라 금융사에도 철퇴가 내려지기 때문에 시중 은행들은 공동 대응팀을 만들어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연구 중이다.
국적이 달라지면 무엇이든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다급한 일정이 7월로 다가오고 있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FATCA라는 것이 지난 2010년 3월 18일 제정되었고, 2012년 2월 8일 FATCA 시행을 위한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으니, 준비를 하자면 그리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미리미리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데, 금융자산 관리에서도 서둘러 처리하면서 뒤탈을 만들지 말고 찬찬히 돌아봐야 할 일이다.
<(주)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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