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행복한 사전>이라는 일본 영화입니다. 마지메(마쓰다 류헤이, 마지메는 '성실함'이라는 뜻도 있더군요)는 사전 만드는 게 일입니다. 원래 영업부에서 일하던 직원인데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는 문제직원이었지요. 사전편집부에는 퇴직할 직원을 대신할 직원을 찾던 중 마지메와 마주칩니다. '오른쪽'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라는 답을 하면서 그는 졸지에 영업부에서 사전편집부로 배속됩니다. 잘 팔겠다는 영업부서가 요구하는 ‘패기’가 없는 대신 잘 버티겠다는 ‘끈기’가 필요한 사전편집부에 맞는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그 대단한 끈기로 꼬박 15년을 매달려 기어이 <대도해>(大渡海)라는 언어사전을 펴내는 이야기입니다.
대도해, 즉 ‘큰 바다를 건너다’라고 특이하게 이름 붙인 사전을 처음 기획하면서, 사전 감수를 맡은 백발의 마쓰모토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단어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요. 사전은 그 넓은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해 줄 말을 찾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 그것이 바로 ‘대도해’입니다.”
참 근사한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마지메에게 주어진 일은 그리 근사해 보이지 않습니다. 3천만개의 단어를 틈틈이 고르고 정리하는 일. 그에 맞는 뜻풀이를 일일이 지어 붙이는 일. 하루종일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눈이 빠져라 교정지를 살피는 일. 무엇보다 이 지겨운 일상을 15년 동안 매일 반복하는 일. 모든 게 정말 ‘끈기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메처럼 그 오랜시간 몰두할 수 없으면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마지메가 되고 싶습니다.
시니어 비즈니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한 희망과 창업주를 믿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방향같지만 이곳 저곳을 헤메이고 다니면서 성과없는 날들을 보내고, 실망과 어려움에도 내색할 수 없는 자리가 준 체면 때문에 애써 태연한 듯하게 보이는 연기력만 늘어난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죄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지적에 대해서 저는 단 한 단어의 반론도 한적없이 '죄인'임을 순순히 자백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15년이라는 긴 기간을 정해두고 일하는 것은 그래도 조금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니어 비즈니스는 10년에 완성될지, 아니면 20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정해지지 않은 '대항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지메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시니어파트너즈의 7번째 창립기념일입니다. 8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7년이라는 기한이 정해진 마지메의 '대항해'보다는 더 긴 호흡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려 합니다. 왜나하면 이 영화 포스터에서 물은 [당신은, 진심을 다해 현재를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는 마지메가 15년동안 보인 성실보다 더 먼 미래를 향해 시작하겠습니다. 물론 더 먼 미래에 대한 선택권은 저에게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메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정해진 결론을 향해 달리는 사전 편찬과는 또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니어파트너즈의 창립7주년을 자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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