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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

[금융주의보-177] 세대 간의 복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by Retireconomist 2011. 12. 7.

‘연금생활자들의 비명’ 

  

2000년 12월 2일 일본 일간신문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1면에 ‘연금 생활자들의 비명’이라는 의견 광고가 실렸다. 이 광고에 비용을 낸 광고주는 노인관련 시민단체인 ‘실버 유니온(Silver Union)’. 주요 내용은 연금 생활자에게 금리를 2~3% 포인트 인상하고, 노인 요양서비스를 확대하라는 내용이었다. 금리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노인요양서비스는 ‘개호보험’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4월 시작되었는데 불과 1년도 안되어서 서비스를 확대하라는 내용이었다. 갈등의 시작은 젊은이들의 반격이었다. 2001년 여름, 도쿄의 한복판에서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라는 문구를 내세우면서 젊은 세대 단체인 ‘라이츠(Rights 권리)’  회원들이 “미래 세대에게 불리한 정책은 선거로 심판하자.”며 정면 대응에 나섰던 것이다. 이 사건은 세대 간의 복지 갈등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 얘기로 넘어간다. 

  

“왜 85세 노인의 무릎 관절 수술비까지 젊은이가 대납하란 말인가? 예전 노인들은 지팡이를 짚고도 잘 다녔다.”

이 차가운 한마디는 2003년 8일 독일의 기민당 청년조직(Young Un ion) 필립 미스펠더 의장(25세)이 내뱉은 것이었다. 이는 ‘일하는 세대가 은퇴한 세대를 책임진다.’는 묵시적 사회계약에 대해서 공식적인 파기를 선언한 셈이었다.  당시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노인층에 대한 과도한 복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젊은층과 지출 삭감에 결사 반대하는 노인층과 갈등이 증폭된 것이다. 이에 맞붙어 기독민주연합(CDU)의 노인연합 의장인 오토볼프(70세)도 “미스펠더가 내 손자라면 엉덩이를 때려주었을 것”이라고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서 언론이 한 술 더 떠서 부축이는 듯한 상황을 만들었다. 독일 최대 발행 부수의 빌트지는 연금수령자의 분노를 신문 한 면 전체를 할애해서 보도하는 등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정부 관리들과 산업계 지도자들은 미스펠더의 주장에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가족장관 후보에 올랐던 카더리나 라이헤는 “현재의 과도한 사회 복지가 우리 자손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미스펠더가 “세대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같은해 10월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독일정부는 ‘아젠다 2010’ 프로그램을 채택하게 된다. 여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처음으로 국민연금 혜택을 축소한다는 연금 개혁안과 의료비의 자가 부담 상향조정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이 ‘아젠다 2010’은 베를린 시민 10만 명을 거리로 쏟아지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는 “독일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라며 개혁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양세대가 이해할 수 있었던 사실은 ‘고도 경제성장을 전제로 짜여진 노인복지 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는 세대 간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복지 시스템의 위기 상황이 확인되면서, 은퇴자들 사이에는 연금시스템 자체가 붕괴돼어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가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아마도 슈뢰더 총리는 2001년 초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의 정책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일본 정부는 2001년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설치했다. 이곳에서는 ‘세대 공존’을 위한 개혁 정책을 주요과제에 포함시키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연금재정이 곧 파산할 것이라는 절박감이 세대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일본 정부는 연금법 개정을 단행했다. 젊은 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는 더 많아지고, 노인 세대가 받는 수령액은 더 적어졌다. 젊은 세대는 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고령법을 만들게 했고,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약속받았다. 노인 세대는 연금은 줄었지만, 연금 파산의 불행은 피할 수 있었다.


[부모 자식간의 세대 갈등이 예상된다면 육아방법도 바뀔까?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젊은 아이 엄마들 / 사진. 김형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의 일본 시니어들의 생활은 어떤가? 세계 최고의 장수 국가 일본에서는 어느 가게나 식당에 들어가도 손님의 상당수가 노년층으로 이뤄져 있다. 지갑을 여는 것도 이들이다. 심지어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할 때 70대 부모가 계산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러한 장면은 수십 년 간 직장 생활을 한 고령층은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한 반면 비정규직 일자리밖에 구하지 못해 사실상 부모의 연금 수입에 의존해 사는 20~30대 자녀 얘기는 늘상 들리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국가 재정 상태가 나빠지면서 노인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의 궤도를 수정해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노년층이 최소한의 부담으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편중돼 있다. 그 이유는 노인층은 인구 비중도 높지만 고령자는 투표 참여율도 높아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넘기 때문에 선거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 증액와 사회 복지 개혁 등 해야 할 일을 20년 동안 미뤄온 것이 최악의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고령층에 치중한 사회 보장 제도로 발생하는 세대 간 격차는 심각한 문제로 개선되기 어려운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결국 현재 일본 각 정당의 공약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 받는 정책은 소비세의 증세다. 젊은층부터 노년층까지 공평하게 부담을 늘릴 수 있는 소비세율을 높이는 것이 세대 간 격차를 해소하자는 것인데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이 쓸것이고 그 돈을 쓸 때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이 재원을 확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대도 있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가적 이슈가 있으면 폭력과 무질서로 좀 더 강하게 의사를 표출하는 방식이 만연해 있지만, 이제는 서로 자제하고, 서로 양보하고 합의해서 최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세대간 복지 갈등이 표면화된 사례를 그리 흔치 않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다양하고 적극적인 의견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선 고령화 국가들이 고민하고 합의했던 경험을 비추어본다면 합의 과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충분히 합리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리 의견을 정확하게 정리해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또 한편으로는 상대편의 의견을 충분이 듣고 난 후에 조정하고 조율하는 노력이 필요다. 경기가 급속히 회복하고 확장기에 들어서지 않는 한 세대간 복지 갈등은 우리에게 곧 닥칠 문제이고, 그 문제의 핵심인 수혜자와 부담자 역시 부모 자식 간 모두 서로 상처받지 말아야 할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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