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조선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05/2013040500820.html
어릴 적 동네 점방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날이 있었다. 매월 17일로 기억되는데 교육 공무원이 월급을 받는 날로 선생님이셨던 어머니께서는 점방에서 한 달 동안 외상으로 산 물건값을 갚으러 가는 것이다. 당시 외상은 경제적 빈곤 때문이 아니라 당연한 거래 관행과도 같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아이들에게 돈을 맡겨 놓는 것도 위험한 일이고 설령 맡겨 놓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급히 쓰일 돈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외상은 더없이 좋은 신용 거래 수단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매월 꼬박꼬박 외상값을 정리하는 신용 거래 말미에는 우수리 탕감이라는 혜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외상값을 갚는 순간에는 크림빵이나 눈깔사탕 하나 정도는 질끈 눈을 감는 정도의 신호만으로도 덤으로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외상 거래는 서로의 믿음이었고,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주민은 술집이나 시장에 갈 때 당시 화폐로 쓰였던 은(銀)조각을 갖고 가지 않았고, 그냥 외상 장부 같은 것을 이용했다고 한다. 믿음이 화폐를 대신했던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가상 통화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화폐가 하나의 약속으로 통했다. 그러나 채무자의 상황은 항상 기대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갚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갚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 믿음과 약속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중세의 종교들은 이자를 받는 대출을 금지했다. 대체로 채무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사회가 다변화되고 경제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종교가 모든 약속 앞에 설 수 없었고, 빌려주고 대가를 받는 대부업이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서 앞선 빚을 갚아주는 역할을 해주었지만, 오히려 해악이 되는 일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그로 말미암은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두고 있었다. 역사에서 보면 근동 지역에선 주기적으로 부채 탕감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몇 사람만 가까이서 또렸이 볼 수 있지만, 이 공연을 불평등하다고는 하지 않는다.
국제적인 빚 탕감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지난 1990년 시작되어 약 10년간 진행된 '주빌리(Jubilee) 2000'이다. "가난한 나라를 빚으로부터 해방시키자."라는 빚 탕감 운동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은 빚진 나라에서 시작되어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1996년 세계 각 나라의 비정부기구(NGO)와 인권단체들이 영국에 모여 빈곤국 부채 탕감을 전 세계적인 연대 캠페인으로 승화시킬 것을 결의하면서 본격화되었다. 2천만 명 이상이 동참한 이 역사적인 운동은 자체 조사를 통해 “빈곤국이 외채에 시달리면서 사회적 지출을 줄였기 때문에 매년 7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기아로 숨지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운동은 빚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했고, 2000년 12월 캠페인을 주도한 지도부들은 “빈곤국의 채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빌리 2000의 해체를 선언했다.
정부가 고질적인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섰다. 3월 29일 출범하는 '국민행복기금'의 우선 목표는 가계 부채의 취약한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다. 여러 금융회사에 진 빚인 다중채무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이고, 신용회복 지원협약에 가입된 금융회사나 등록대부업체에서 1억 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받고 2013년 2월 말 현재 6개월 이상 연체가 진행 중인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되었다. 안타깝지만 미등록대부업체나 사채 채무자, 담보부 대출 채무자와 채무조정을 이미 신청하여 진행 중인 채무자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빚진 이들에게 빚을 직접 탕감해주는 것만큼 빚을 처리하는 좋은 대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도 모든 빚을 탕감해주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고, 모든 빚을 탕감해줄 수 있는 묘책도 없다. 이번에 출범하는 '국민행복기금'의 운영 대책이 국민 모두가 가진 부채에 대해서는 우수리 탕감 정도의 작은 크기일지는 모르나, 채무 조정과 고금리 채무를 성실하게 상환하고 있는 채무자에 대해서 저금리 은행 대출로 전환해 주는 두 가지 사업이 벼랑 끝에 선 해당 채무자들을 위해 훌륭한 지원자 역할을 하기 바라고 성공적인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더욱 더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주)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 상무>
'칼럼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준비하는 재테크-151] 시니어에게 유용한 두가지 마케팅 (0) | 2013.04.12 |
---|---|
[Senior 골든라이프-18] 하늘을 나는 즐거움, 경비행기의 매력 [GOLD&WISE] 4월호 (0) | 2013.04.11 |
[금융주의보-247] 시니어에겐 ‘스텔스 마케팅’이 두 번째로 유용하다. (0) | 2013.04.10 |
[금융주의보-246] 마이애미 헤럴드 신문의 폰트가 더 큰 이유 (0) | 2013.04.04 |
[준비하는 재테크-149] 시니어의 노하우는 콘텐트로 가치를 더한다. (0) | 2013.03.31 |
[금융주의보-245] 우수리 탕감과 국민행복기금 (0) | 2013.03.27 |
[준비하는 재테크-148]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가 부럽다. (0) | 2013.03.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