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Column

[행복한 인생 2막-14] ‘사랑’의 뜨개질로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다. [GOLD&WISE] 12월호

by Retireconomist 2012. 12. 6.

‘사랑’의 뜨개질로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다


뜨개질은 손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작업으로, 

시니어의 두뇌 건강에 좋고, 

이른바 ‘슬로 작품’을 만드는 성취감도 큰 작업이다. 

또 여럿이 모여 하는 뜨개질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도 더없이 좋다.

올겨울, 뜨개질을 배워보는 건 어떨지. 작품을 완성해 본인이 사용하면 절약의 기회가 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면 포근한 사랑을 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국민은행 VIP 고객을 위해 만들어진 Gold & Wise 12월호에 게재된 글임 
국민은행 사보 연결 사이트 https://omoney.kbstar.com/quics?page=C017651



올해 부산국제영화제(2012 BIFF) 상영작 중 화제가 된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뜨개질>이라는 작품인데, 배우 윤은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단편 영화다. 이삿짐이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공간에 젊은 여자가 혼자 앉아 있다.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 없는 얼굴로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여인은 상자 속에서 실꾸러미를 꺼내 든다. 뜨개질을 시작한다. 한 땀 한 땀 뜨개질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레 뜨개질이란 행위 속에 담긴 사연이 궁금해진다. 마음을 표현하는 수많은 수단이 있지만 그 어떤 수단도 쓰지 않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뜨개질을 다시 하기까지 뭘 망설였는지, 뜨개질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의 감정 변화가 실과 바늘의 교차 속에 어슴푸레 읽힌다. 뜨개실이 이전의 뜨개와 엮이고 이어질 때의 망설임과 바쁘게 움직이며 거침없어지는 손목의 동작, 이음새를 잘라낼 때의 멈칫거림,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 펼쳐지고…. 그녀가 뜨개질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 그리고 영화 <뜨개질>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인생이라는 것과 그에 담긴 ‘사랑’이라는 시(詩)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상영 시간 12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담긴 인생은 ‘뜨개질’로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뜨개질, ‘DIY(Do-It-Yourself)’의 소산물

DIY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물자 부족, 인력 부족 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사회 운동에서 시작됐다. 좁은 의미로 창작형 취미(일요 목수, 도예, 가정 자수 등)를 가리키지만, 원래는 가옥의 보수나 정원의 유지·관리, 자동차 수리, 가구 등의 제작에 필요한 상품을 제공하는 일을 말한다. 최근 DIY는 음악과 방송, 그리고 잡지 제작에까지 그 범주를 넓히고 있으며, 미술 공예 같은 예술 분야를 비롯해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가 시간의 증대, 인건비 상승, 소비자의 절약 의식, 생활 스타일 변화 등을 배경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추세다. 이와 함께 DIY 상품까지 등장해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반제품 상태의 제품을 제공, 직접 조립하거나 제작하도록 하는 사업 형태도 등장했다. 제품을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창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DIY 상품이 출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부터 본격 출시되기 시작했다.


뜨개질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DIY의 원형을 뜨개질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뜨개질(Knit)은 고대 영어인 Cnyttan이 Knot라는 단어로 정착된 것으로 보아 매듭(Knot)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뜨개질 작품은 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면 양말이다. 뜨개질은 남자만의 직업이었고, 1527년 파리에 이른바 뜨개질 무역 길드가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손뜨개질은 여전히 유용했지만 ‘편물 기계’가 등장하면서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은 기술로 전락했고, 이때부터 뜨개질은 직물을 만드는 생산 활동에서 여가 활동의 성격으로 바뀌어갔다. 그 과정에서 뜨개질 활동의 중심이 남자에서 여자에게 넘어갔다. 그러다 최근 손뜨개질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부흥기를 맞았다. 

실제로 미국공예사연구회(Craft Yarn Council of America, CYCA)는 뜨개질을 하는 25~35세 여성의 수가 2002년과 2004년을 비교했을 때 2년간 1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40~50년대에는 DIY가 성황을 이루면서 뜨개질도 덩달아 활성화됐는데, 그 당시에는 ‘만들고 고치는’ 수단으로 뜨개질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뜨개질이 확산되는데, 1940년대 영국의 뜨개질 붐이 유럽과 미국 대륙으로 전파됐고, 독일에서도 편직기의 보급과 함께 손뜨개질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독일과 동맹 관계를 맺은 일본에도 뜨개질이 빠른 속도로 전해졌고,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에 보급된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 뜨개질 교본과 도안의 많은 부분이 일본책을 번역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최근 들어 블로그와 유튜브 등 SNS를 이용해 뜨개질 도안·패턴·기술 등이 확산되는 추세다. 영국에서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취미로 뜨개질을 하는 ‘뜨개질 모임(Knitting Circle)’이 대유행하고, 미국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따라서 일하고, 패턴을 토론하고, 작품의 문제점을 지적·해결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갔다. 이것이 더욱 발전해 ‘뜨개질 코와 여성 (Stitch’n Bitch)’이라는 모임이 결성되면서 세계적으로 주 또는 월 단위로 만나 뜨개질하는 모임으로 정착했다. 이들의 활동 모임 이름을 딴 책이 2003년에 출간되어 6개월 동안 20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두 번째 책에는 영국과 일본 등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뜨개질 모임 장소가 소개되고, 새로운 패턴 디자인을 비롯해 스웨터, 모자, 지갑, 슬리퍼, 보석함과 심지어 수영복 도안까지 수록하는 등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영국 런던에서 런던 사자 스카프 도안을 발표하면서 생긴 수익 2,500파운드를 암연구소에 기부하는 등 선행도 이어가고 있다. 뉴욕 지하철에서 뜨개질하는 남성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라 설명하는 문화평론가가 있을 정도로 이제는 뜨개질에서 성 구분도 사라지고 있다.


뜨개질은 왜 좋은가?

쉽게 배울 수 있다 뜨개질 작품을 보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손가락 뜨개질(Finger Knitting)이 있을 정도로 뜨개질 배우는 건 쉽다. 2004년 기네스북 기록에 따르면 뉴질랜드에 사는 열한 살 된 겜마 폴스는 뜨개실 5kg으로 손뜨개질을 해서 길이 2,779m짜리를 뜨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손뜨개질은 아이들 교육 도구로 활용할 정도로 전통 뜨개질보다 단순하지만, 안전하기 때문에 뜨개질 바늘을 탑승 금지 물품으로 규정한 비행기 안에서도 연습할 수 있다.

시작은 남성이었지만 뜨개질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쉽게 배울 수 있다 남성이 뜨개질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선생은 아내다. 자동차 운전을 아내에게 가르쳐준 기억처럼, 이제는 배우는 입장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다른 방법으로는 뜨개질 재료를 파는 수예점에 가서 기본 뜨기부터 시작해 무늬뜨기 같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실만 사면 대부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본격적으로 배우려면 문화 센터나 학원에 간다. 뜨개질의 첫걸음은 대바늘로 ‘코 만들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고무뜨기를 배운다. 겉뜨기와 안뜨기 그리고 바늘 비우기와 오른코 겹치기 등을 하면서 도안에 나온 기호를 익힌다. 안뜨기에서 왼코 겹치기, 모아뜨기, 오른코 교차뜨기, 안뜨기에서 오른코 교차뜨기. 걸러뜨기, 꼬아 올리기, 감아코 만들기….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배우기 시작할 수 있듯 배우려고 마음먹으면 쉽게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 않다 손뜨개를 하려면 바늘과 실, 그리고 보조 도구가 필요하다. 처음 시작할 때 많이 쓰는 대바늘이나 코바늘은 1만~2만원이면 살 수 있다. 물론 수준이 높아지면 세트에 10만원이 넘는 바늘도 있다. 뜨개용 겨울용 털실은 1볼(50g) 기준으로 7천~9천원. 여러 색을 세트로 사면 할인도 된다. 초보자에게 필요한 것을 DVD 강의 프로그램까지 세트로 만들어 파는 것도 있는데, 이런 경우도 2만원 이하로 살 수 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고, 학원이나 문화센터 그리고 복지관 등에 등록해 배워도 큰돈이 들지 않는다. 

수정과 재가공이 가능하다 유화가 수채화에 비해 강점이 있다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뜨개질 역시 실을 잇고 매듭짓고 하면서 만드는 직물이기 때문에 좁거나 넓게 만들어지거나 싫증이 나면 언제든 풀어서 다시 뜰 수 있다. 

성취감과 교감을 얻을 수 있다 뜨개질은 선으로 면을 만들어내는, 1차원을 2차원으로 바꾸는 창작 활동이다. 

시니어가 창작품을 만들어 완성함으로써 성취감을 얻는 방법으로 뜨개질만큼 좋은 것도 드물다. 목도리, 장갑 그리고 스웨터 등 뜨개질 성과물 대부분은 실생활에서 활용하기 좋을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 선물해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얻는 성취감은 비할 데가 없다. 최근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은 전 세계 영·유아를 살리기 위해 털모자를 직접 떠서 ‘어린이 구하기(Save the Children, www.sc.or.kr)’의 해외 사업장에 보내는 참여형 기부 캠페인이다. 털모자가 아기의 체온을 보호하고 유지해 신생아 사망률을 70% 정도 낮출 수 있다는 효과를 활용한 것이다. 

2007년부터 시작해 지난 5년간 전 세계 2,245개 단체에서 237,983명이 참여해 모자 56만3,116개를 전달했다. 시즌 6으로 진행되는 올겨울 캠페인은 오는 2013년 3월 15일까지 모자 20만 개를 모아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낼 예정이다.

생산적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뜨개질은 실용성이 크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에게는 판매할 수도 있다. 판매할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오랜 시간의 숙련된 기술과 고객의 요구에 맞춰 만들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지만, 숨은 재능이 손끝에 있다면 창업까지 도전해볼 만하다. 실과 바늘만 있으면 제품 생산은 가능하고 판매 정보를 게재해 대신 판매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으니 위험 부담이 적은 창업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초보자도 뜨개질에 관심이 있다면 집중 3개월이면 창업할 정도의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뜨개질 창업 전문가의 의견이다. 단순 친목 모임에 뜨개질을 더해 그 모임의 부가 가치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랑을 가득담은 뜨개질에 열중하며 다정하게 얘기하는 시니어 모임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을 연상해보자. 그곳이 혹독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겨울에 가장 따뜻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적 활동으로 정신 건강에 좋다 도안을 기억해야 하고 도안에 따라 손가락으로 바늘을 잡고 실을 이리저리로 옮기며 겉뜨기와 안뜨기를 응용한 뜨개를 뜬다. 두 손은 동시에 요동을 치며 실타래에서 풀려 나온 실을 바늘로 꿰어 한 코씩 뜨개질 면적을 늘려가는 작업이다.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 뜨는 것을 유의해야 하고 되돌아오는 도안도 기억해야 한다. 

넓이뿐 아니라 길이까지 가늠해야 하는 뜨개질은 지적 자극 요소가 아주 강한 활동이다. 뜨개질은 시니어가 가장 두려워하는 치매 예방에 탁월한 신체 활동이다. 

동호인과 함께 사회적 관계를 증진할 수 있다 뜨개질하면서 마주 보고 대화하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목격하곤 한다. 그중에서 아무 손놀림 없이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지만, 뜨개질하는 이들에게는 완성이라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달성되면 사랑으로 활용될 실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낯선 이들과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아무 공감대 없이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만일 그곳에 뜨개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어떨까? 그려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단순 친목 모임에 뜨개질을 더해 그 모임의 부가적 가치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랑을 가득 담은 뜨개질에 열중하며 다정하게 얘기하는 시니어 모임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을 연상해보자. 그곳이 혹독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 겨울에 가장 따뜻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