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화가 Christian Seybold(1695-1768)가 그린 ‘ 녹색 스카프를 걸친 노파 (Portrait einer alten Frau)’. ]
아래는 조선일보 서평
중세 유럽엔 '여물통과 삼베' 설화가 널리 퍼져있었다. 늙은 아버지를 보살피는 데 싫증이 난 아들이 식탁 대신 여물통으로, 침구도 거친 삼베로 바꿔버렸다. 손자가 "나도 아버지가 늙으면 쓸 테니 삼베 절반은 남겨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할아버지(할머니)를 산속에 버리고 오자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 버릴 때 쓰게 그 지게 놔두라" 했다는 우리의 '고려장(高麗葬)' 설화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구조다.
인류 역사에서 노년은 어떤 이미지였을까? 고령화 사회를 맞은 우리에게 이 책(원제 The Long History of Old Age)은 서양 문명이란 거울에 '노년'을 비춘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팻 테인 연구교수를 비롯한 노년 연구 전문 역사학자 7명은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로마부터 중세·르네상스기를 거쳐 20세기까지 시대별로 '노년'이 어떤 모습으로 비쳤는지 꼼꼼히 살핀다. 또 230여컷에 이르는 도판은 서양 역사에서 노년이 어떤 이미지로 형성·변화해왔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존경받는 노인?
서양에서는 노년에 관해 이른바 '근대화론'이 있다. 즉, 근대화·산업화 이전에는 노령자들이 지혜의 상징이었으며, 가정과 사회에서 존경받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물통과 삼베' 설화에서 보듯 현실은 달랐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근대화론의 맹점은 '과거 장수한 노인은 희귀했다'는 잘못된 가설 때문이다. 영유아 사망률이 현대에 비할 수 없이 높기는 했지만 이 위험한 시기를 돌파한 사람은 장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기 1세기 무렵 로마제국 인구의 6~8%가 60세 이상으로 추정되며, 고대·중세에 이르기까지 군역(軍役) 등이 면제되는 나이가 60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고령자가 아주 희귀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나이만으로 존경받고 편하게 살았던 노년은 적어도 서양 역사엔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각종 작업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은 많은 경우 구박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놓고 "노령자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불신이 강하고 악의적이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고 비난했고, 14세기 프랑스 작가 기욤 드 데귈레빌의 책에도 '나태, 오만, 아첨, 위선, 질투, 배반, 색욕'의 상징은 늙고 추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수많은 동화에 등장하는 '마귀할멈'의 이미지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중세 이후까지도 이어졌다. 18세기 브란덴부르크 지역 등 일부 도시 성문에는 큰 몽둥이가 걸려 있었다. 거기엔 '자녀에게 먹을 것을 의존하거나 가난에 시달리는 자는 이 몽둥이로 죽도록 얻어맞을 것이다'고 씌어 있었다. 노인들은 가능할 때까지 독립적으로 경제·생산활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공통적으로 '죽기 전까지는 눈을 감지 말라'는 격언이 퍼져 있었고, 미리 자식들에게 재산과 권력을 나눠준 노년의 비참함에 대한 공감대를 집약해 극화(劇化)한 것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었다.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사상가 키케로의 말은 시대를 넘어선 진리였다는 것.
◇노인의 복권
부정적이었던 서양의 노년 이미지가 호전된 것은 18세기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다. 혁명 세력은 지역별로 '노인 축제'를 열면서 노인들에게 애국적 이미지를 부여하려 했다. 종교적 영향도 있었다.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엔 노년이란 최후의 심판에 다가선 사람들이었지만 종교 대신 이성을 앞세운 계몽주의자들은 현실적으로 원숙하고 경험 많은 노년의 장점에 초점을 맞췄다. 미술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엔 추악하게 형상화되던 노년의 초상은 1768년경 독일 화가 크리스티안 자이볼트의 '그린 스카프를 걸친 노파'에서 보듯, '곱게 주름진 얼굴'로 아름답게 묘사되기 시작했다.
노년에 대한 가장 극적인 변화는 역시 20세기에 찾아왔다. 의학의 발달로 고령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각종 복지 제도가 마련되고 노인들은 나이듦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늙은' 것"이라는 한 60세 산파의 말처럼 이제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은 세계 노인들의 공통어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복지 제도가 갖춰져도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의지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키케로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참고 문헌 목록만 번역본으로 22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정보를 에세이로 담아낸 글이라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도판 230여컷과 설명만 읽는다면, 서양 역사 속 '노년'의 변화를 파노라마 사진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걷어낸 노인의 존재와 노년의 삶
노령화 시대를 맞이하기 전 한 번쯤 읽어둬야 할 책
그리고 출판사 서평
◆ 노령화 시대를 앞두고 노인의 존재와 노년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 고대부터 현재까지, 서양의 역사가 기록해온 노년의 사회사와 문화사
◆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전통 사회의 노인상은 고정관념과 편견일 뿐
◆ 노년의 삶은 빈부와 계급, 성별과 경제력 등에 따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경험이다!
◆ 풍부한 문헌과 통계 자료, 230여 컷의 도판을 통해 읽고 보는 노년의 장구한 역사
‘노인의 날’이기도 한 지난 10월 2일, ‘노년유니온’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청년유니온’에 이은 두 번째 세대별 노조로, 노인들 스스로 노인복지 및 노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노후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법적 지위를 획득해 노인 정책 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내기 위한 첫걸음이다. 한편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총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1.8%로 1970년의 4배 수준에 달하며, 2030년에는 그 수치가 24.3%, 2050년에는 37.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같은 노령화 사회의 대두와 함께 노인의 존재와 노년의 삶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노령화 시대에는 노년과 늙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럼에도 젊고 건강한 육체는 우상화되는 반면 늙고 쇠잔한 육체는 부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피할 길 없는 숙명이라는 체념과 짐스러운 존재라는 불명예 이외에 ‘나이 든 삶’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가. 원제가 The Long History of Old Age인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재까지 서양의 역사가 기록해온 노년의 초상을 보여줌으로써 노인과 노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년의 삶이란 무의미하고 암흑과도 같은 것일까? 노인은 과연 지혜로우며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인가? 풍부한 기록물과 230여 컷의 도판이 노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알려지지 않은 노년의 긴 역사
역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서양에서 역사 연구의 주제로 ‘노년’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이후다.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이나 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한 노년학 연구가 본격화된 것도 불과 20세기 중엽이니, 아직 노년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일천하다. 역사가들에 앞서 노년학 연구를 주도한 사회과학자들은 근대화 이전 전통 시대를 ‘노인의 황금기’로 규정하면서, 노인의 지위가 근대화를 거치며 하락했고 노년기 삶의 질은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공동체 안에서 권위를 누렸으며, 가부장적 가족 구조와 긴밀한 친족 관계에서 노후 지위를 보장받았던 노인이 근대화를 계기로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고, 궁핍과 외로움에 당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노년에도 역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한, 그것은 쇠퇴의 이야기로 등장한다. 이 책의 필자로 참여한 일곱 명의 역사학자들은 노인과 노년의 삶에 대한 이러한 통념과 고정관념의 문제점을 깨우치고 오류를 바로잡으려 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 중세 및 르네상스, 17~20세기에 이르기까지, 각 장에서 시대별로 제시되는 노년의 실제 모습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려진다.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된 사회사적 관점과 ‘사람들이 늙음을 어떻게 인식했으며 노년에 어떤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한 문화사적 관점이 그것이다. 노인의 일, 건강, 재산, 가족, 사회적 관계를 살피는 접근방식이 노년의 사회사 탐구에 해당한다면 노년의 일상이 기록된 일기와 편지, 의학과 철학 및 종교 저술, 노인을 다룬 예술작품이나 구전 민중 설화, 속담 등을 활용한 접근방식은 노년의 문화사를 드러낸다. 이 두 관점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해 직조한 노년의 역사상이 증명하는 노년의 특징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형성한 일반화에 맞선 ‘다양성’이다.
노년은 몇 살인가
우리는 흔히 ‘과거’에는 늙어서까지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예단한다. 생명 연장을 가능하게 한 의학의 눈부신 발달은 인류의 역사에서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노년의 역사에 관한 대표적인 고정관념이다. 출생 시 기대 수명이 40세에서 45세에 불과했던 근대화 이전 시기라도 죽음의 그림자가 아직 머물렀던 생후 몇 년을 넘긴다면 60세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높은 영유아 사망률이 평균 기대 수명을 끌어내렸던 탓이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기 1세기 로마제국 인구의 약 6~8퍼센트가 60세를 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심지어 100세 이상의 천수를 누린 사람도 있었다. 따라서 근대 이전 사회에서 낮은 기대 수명 때문에 40대를 늙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4세기 초의 한 영어본 구약 시편에서 발견된 생애 주기 도해는 인간의 삶을 계획한 신의 눈에 노년의 자리가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알린다. ‘우리 삶의 나날은 70년이다. 그리고 어떤 힘에 의해 80년이 되기도 하지만, 그 힘은 고역과 슬픔이다.’ 또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나이 든 이에게 주어졌던 혜택인 공공 의무 수행의 면제가 시작되었던 시점은 오늘날 은퇴 시기와 비슷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60세 혹은 70세였다. 하지만 노인의 범주나 노년의 시점은 역사적으로 가변적이었다. 얼마나 늙어야 노인인지, 누가 늙은 것인지는 산술적 연령보다는 각 개인의 용모나 신체 상태에 대한 주관적이고 인상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예를 들어 엘리트에게 노년으로의 진입은 적어도 10여 년은 늦추어졌다. 단백질이 풍부한 식사와 안락한 주거, 그리고 육체적으로 덜 힘든 생활스타일 덕분에 노년의 표지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노화의 속도가 달랐다. 육체노동자는 빨리 늙었으며, 종교인은 천천히 늙고 오래 살았다.
노인은 가정과 사회의 정점에 있었나
전통적인 노인상은 가정과 사회에서 권위와 존경을 누리는 ‘어른’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러나 노인이 그를 중심으로 기혼 자녀를 포함해 여러 세대를 편입한 확대가족의 정점에서 가족의 존중과 배려 속에 행복하게 만년을 보낸다거나, 집 밖에서는 국사에 활발하게 참여해 젊은이는 얻지 못할 권력을 거머쥐고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란 추측 또한 신화에 불과하다. 우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조차 핵가족이 가족 제도의 중심이었으며 중세 이래로도 확대가족은 유럽의 보편적인 규범이 아니었다. 전통 사회에서 노년의 가족 관계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중세 이래 유럽 도처에 구전된 속담이나 격언 등의 민중 문화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같은 엘리트 문화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생전에 자식에게 재산을 넘기는 것에 대한 경고, 노후 자녀의 가정에 얹혀살게 되었을 때의 굴욕과 냉대, 노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등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자기 전까지는 옷을 벗지 말라’라는 속담과 자식들에게 재산을 탈탈 털어준 뒤 고난을 겪는 그 유명한 리어의 이야기가 좋은 예다. 17세기에 이르면 질병, 전쟁, 사고 등으로 인해 대다수의 결혼생활은 배우자와의 이른 사별로 끝을 맺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당시에는 확대가족이 아니라 과부와 홀아비의 재혼 가족과 혼합 가족이 훨씬 더 흔하게 되었다. 1600년대에도 우리의 짐작과는 달리 가부장의 권위가 설 공간은 없었던 것이다. 젊은이가 아니라 노인이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는 ‘노인 정치’ 또한 널리 퍼지지도 않았고 흔하지도 않은 정치 체제였다. 오히려 장로회의에서조차도 노령자의 힘은 절대적이지 않았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젊은 관리가 더 큰 힘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노인이 누린 존경과 권위는 노령에 의해 자동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과 지속적인 성취를 통해서만 획득되고 유지되었다.
노령자는 경제 변화의 희생양인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는 산업화와 도시화 등 근대사회로의 변화를 통해 노인의 입지가 축소되고 생활수준은 큰 폭으로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화에서는 문제가 발견된다. 노령화의 광범위한 문화적 측면이나 노령자 스스로가 가진 가치를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대화가 반드시 노인들의 만족도 감소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기에 각 개인이 처한 상황과 선택의 문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노인들 가운데서도 중간계급 출신의 노인은 경제 변화의 희생양이라기보다는 얼마간의 수혜자였다. 사회의 부가 축적됨에 따라 더 많은 복지 서비스와 자율적 삶이 그들에게 제공된 것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노령자는 노동시장에서 퇴출의 위기를 맞이했다. 기능과 지식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쓸모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는 반면 노령층은 보조를 맞출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또한 노령자에 대한 편견일 뿐이다. 능력이 쇠퇴하고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고용주와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억측은 노령층 노동자들을 궁지로 몰았지만 테스트가 있을 때마다 70대 이상의 노령자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인 것이다. 도리어 육체적 힘보다는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첨단 기술 노동시장에서 노령층 노동자들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노년의 문화적 표상 하나: 주변화
이 책에서 밝히는 노년의 문화적 표상은 매우 다양하지만, 두 개의 키워드를 지렛대 삼아 읽어보면 더욱 뚜렷하게 노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노년의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을 성싶다. 첫 번째 키워드는 ‘주변화’로, 노인은 어린이, 여성과 함께 사회의 중심부에서 동떨어진 채 존재했다는 인식이다. 고대 사회 남성 엘리트 계급의 무대였던 정치 문제에서 배제되었던 노인은 종교 업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문학에서 예언자와 점술가는 종종 사회의 주변적 구성원으로, 즉 여성과 늙은 남성으로 그려진 것이다. 당대의 문학은 젊거나 나이 든 상류층 남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와는 대척점에 있는 여성, 특히 늙은 여성의 경우는 연령과 젠더의 측면에서 이중으로 주변화되었다. 이중으로 주변화된 늙은 여성은 문학작품에서 인간의 마음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괴물로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자매 괴물 ‘그라이아이’가 대표적이다. 이는 ‘정상’사회로부터 늙은 여성의 완전한 고립과 소외를 상징한다. 출산 활동이 지나감으로써 나이 든 여성은 기능을 상실한 사회 구성원으로 버림받았을 공산이 큰 것이다. 늙은 여성을 제외하고 눈여겨볼 만한 주변화된 인물형은 ‘판탈롱’으로 불리는 늙은 남성이다. 정형화된 인물이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17세기 이탈리아의 전통극인 ‘코메디아 델라르테’는 유럽 전역에서 늙은 남성을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삼는 현상을 반영했는데, 바로 그 늙은 남성을 연기한 것이 판탈롱이다. (판탈롱은 통이 좁은 바지를 이르는 말인데 이탈리아 희극에서는 말라깽이 노인을 뜻한다.) 판탈롱은 겉과 속이 다른 호색한 늙은이의 전형으로, 17세기 유럽인이 노년에 대해 연상하고 경멸하던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물론 좋은 노인이란 규범과는 반대되는 인물이다. 우둔하고 육욕을 탐닉한 늙은 노인에 대한 조롱은 설사 이러한 노인상이 실제 현실에 비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 유럽인의 내면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노년의 문화적 표상 둘: 세속화
노년의 문화적 표상 가운데 주변화에 이은 중요한 주제로 ‘세속화’를 들 수 있다.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며 근대적 정치문화가 출현한 18세기 프랑스를 기점으로, 돈독한 신앙이 있던 자리를 세속적인 가치가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문학과 예술이 나이 든 인물에 대한 익살스러운 조롱에서 존경과 감성으로 전환하는 현상이 포함되었다. 노년이 세속화되는 데에는 정치적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과학과 의학 서적의 역할이 컸다. 그 이전의 종교 서적이 현세의 문제보다는 내세의 생에 초점을 맞춰 정신의 평온과 영성의 회복에 집중한 반면, 과학과 의학 서적은 노화과정을 탈신비화하고자 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탈기독교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조슈아 레이놀즈, 장시메옹 샤르댕, 장에티엔 리오타르 등의 화가를 필두로 사실주의적인 초상화의 창작에 물꼬를 텄다. 저승에 대한 희망이나 두려움보다는 이승의 현실을 숙고하는 노인의 얼굴이 18세기 회화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학 분야에서는 개별 노인의 내면이 전기와 자서전의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대표적으로 세라 쿠퍼 부인은 1700년부터 1716년 사이에 일기를 쓰면서 자의식 속에서 늙어가던 한 개인의 정신세계를 상세하게 남겼다. 이렇게 세속화된 노년의 흐름은 면면히 이어져 20세기에 와서는 적극적으로 늙음을 포용하고 긍정하는 태도로 발전한다. 제7장의 뒷부분은 노령의 일반인들의 인터뷰에 할애되어 있는데, 그들은 이전 어느 시대의 노인보다 자신의 늙음을 긍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 60세의 산파는 원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에서야 비로소 ‘늙은’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한편, 어떤 노령의 여성은 노령화를 찬양하거나 늙음을 아름다움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노년의 경험은 오늘날에도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서기 1세기에 세네카가 남긴 다음의 논평은,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이에게 노년이 하나의 유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늙기싫지만 오래 살고싶은 당신, 기나긴 노년을 직시하라
동아일보 이지은 기자의 서평
“여섯 번째 시기는 슬리퍼를 신은 여윈 늙은이로 변한다. 사내다운 우렁찬 목소리는 어린애 목소리로 되돌아가 빽빽거리는 피리 소리를 낸다. 마지막 시기는 또 한 번 어린애가 되는 것, 오로지 망각이다. 이는 빠지고, 눈은 멀고, 입맛도 떨어지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희극 ‘뜻대로 하세요’에서 인생을 일곱 시기로 나눠 설명했다. 노년기에 속하는 여섯, 일곱 번째 시기에 대한 서술은 극히 부정적이다. 이는 고대 및 중세 서구문학 속 노인에 대한 묘사와도 일치한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사 속 노년의 역사를 다룬다. 책을 엮은 팻 테인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역사학 연구교수를 비롯해 유럽 중세 노인·여성·아동사 연구가인 슐람미스 샤하르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명예교수, 프랑스 혁명기 노년의 삶을 연구한 데이비드 트로얀스키 미국 브루클린대 역사학과 교수 등 역사학자 7인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르네상스, 근대, 20세기 이후 등 시대별로 노인의 삶을 조명했다.
우리는 “전통 사회에서 노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권위와 존경을 누렸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등 근대화를 거치면서 노인의 입지가 크게 축소됐다”고 생각한다. 이는 20세기 중엽 이후 노인학 연구를 주도한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다. 하지만 역사 속 노인의 모습을 분석한 이 책은 이 같은 통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가족 제도의 중심은 ‘핵가족’이었다. 확대 가족의 정점에서 가족의 존중과 배려 속에 행복하게 말년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은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노인은 잉여 인간으로 취급됐고 조롱의 대상이었다. 노인이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는 ‘노인 정치’ 체제 또한 서양사 속에서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그나마 노인 정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고대 스파르타의 ‘장로회의’에서조차 노인보다 젊은 관리가 더 큰 힘을 가졌다. 나이 든 여성은 남성보다 더 심한 홀대를 받았다.
14세기 프랑스 작가 기욤 드 데귈레빌은 저서 ‘인생의 순례’에서 자비, 자선, 참회, 근면 등의 미덕을 ‘젖을 먹이는 젊은 여성’으로 의인화했다. 반면 재난, 이단, 질병, 나태, 오만, 아첨, 위선, 질투 등 악덕은 추한 모습의 늙은 여성으로 표현했다. 여성이 나이가 들어 출산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기능을 상실해 더이상 존재 가치가 없는 사회 구성원으로 취급됐다는 걸 의미했다. 오히려 노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근대 이후 뚜렷하게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 과학과 의학의 역할이 컸다.
20세기 이후에는 노인 스스로 늙음을 포용하고 긍정하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에서도 육체적 힘보다 지적 능력과 노하우를 요구하게 된 이후부터 노인 노동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중을 위한 교양서와 학술서 중간에 위치하는 이 책이 쉽게 읽히진 않는다. 글보단 230컷이 넘는 도판이 서양사가 노년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한층 잘 설명한다. 책을 읽고 나니 동양 역사 속에선 노인이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궁금하다. 관련 연구가 이뤄져 동서양 노인의 역사를 비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노년의 삶은 시대와 사회,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자립할 수 있는 노인만이 존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 경제력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18세기 말 독일 브란덴부르크 지역 일부 도시의 성문에는 “자녀에게 먹을 것을 의존하거나 가난에 시달리는 자는 이 몽둥이로 죽도록 얻어맞을 것”이라는 글이 새겨진 큰 몽둥이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자녀 결혼을 위해 재산 전부를 써버리고, 아이 교육에 월급을 몽땅 털어버리는 오늘날 한국인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글: 동아일보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기사입력 2012-10-1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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