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나이 오십을 시니어(Senior)라고 부른다. 그 뜻은 선배라는 뜻이다. 이제는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지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고 실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나이 오십이 되었음은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훌륭한 두뇌를 가진 이는 중학교를 1년에도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통과하기도 하고, 10대에 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예외나 월반 없이 공통의 세월을 넘긴 이들에게 주어진 인고의 세월이다. 어쩌면 195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 46세를 기준으로 본다면 장수 축하까지 받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십 년을 지내오면서 항상 성공 가도만 달린 이들이 과연 있을까? 누구나 인생에서 부침은 있는 법이고 비록 이 순간 성공의 위치에 있건 또는 실패하고 좌절의 위치에 있었든 간에 짧지 않은 오십 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현재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축하받을 자격이 있다. 물론 세상에 해악을 끼치면서 살았던 이는 예외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큰 상으로 나 자신을 칭찬하라.
하늘 높은 줄 모르도록 높은 마천루를 짓거나, 눈에도 닿지 않은 바다 위의 섬을 다리로 이은 것과 같이 눈에 보이거나 큰 일을 한 시니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를 함께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협력하고 지원하고 격려하였기에 이 시대가 바로 서고 많은 이들이 문명과 문화를 누릴 수 있지 않았는가? 가족과 친지와 친구 옆에 있어 주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국가나 사회나 주변에 대해서 건전한 비평과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면서 함께 세월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로가 인정되므로 칭찬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나라가 공로를 인정하면 훈장을 주고, 사회가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표창을 주지만 가장 소중한 상은 내가 나 스스로 칭찬하는 것이고, 나이 오십이면 세상의 잣대로 나의 성공과 실패를 구분 짓지 말고, 세상이 나를 실패한 사람이라고 몰아세워도, 나는 당당하고 최선을 다한 것이 틀림없으니, 나 스스로에게 결과와 상관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당연히 가장 큰 상으로 칭찬해 주어야 한다. 아니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후반전에 더 잘 뛰라고 격려 받아야 한다. 나이 오십은 100년 인생에서 전반전을 마친 셈이고, 후반전 마지막 시간까지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차례의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후반전 결과를 예단 할 수 없고, 지금까지 경기에 지고 있더라고 후반전에 뛰어보지 않고는 결과를 속단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하프타임에 나를 칭찬하는 것은 기분 좋게 후반전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다.
지금까지 어깨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의 절반은 내려놓아도 좋다.
피 끓는 청춘의 시절에는 목숨을 내놓는 두려움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그 의무를 다른 방식으로 감당했던 이들도 그리 편안하지 않은 시간을 헌납해야 했다. 그뿐인가 나이 오십이 되도록 남도 아닌 내가 꼭 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국가가 선량한 법적인 의무로 부과했던 것 이외에도 사회나 직장이나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선택적 의무보다는 강제적 의무로 점철된 많은 일들이 있어왔지 않았는가? 그런데 오십의 어깨는 하나씩 내려놓아도 좋다. 아니 남들이 내려놓으라고 권하지 않아도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고 조금씩 더 홀가분해져도 되는 때가 되었다.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짓누름을 참고 이겨내 주었기 때문에 주어진 권리라고 생각한다. 어깨의 짐이 덜어지는 순간을 세상으로부터 쓸모가 없어진 것이라는 소외의 시작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짐을 나누어 지자고 내 목소리를 높여도 괜찮은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짐을 나누어 가벼워지는 행복을 누리기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용서할 수 있고 화해할 수 있고 사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부러져도 휘지 않는 심성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그런 성품의 위인이 존경받는 시절도 있었기에 본성과 다르게 훈련되어 강직해져 버린 예도 있었을 것이고, 경쟁하면서 생존해야 했던 젊은 시절에 경험으로 굳어진 습성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내려놓고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서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나이 오십이면 잘잘못에 상관없이 서로 화해해도 자존심에 손상이 가지 않는 때가 충분히 되었다. 아니 오십이 되어서도 알량한 자존심으로 구겨진 관계를 반듯하게 펼 수 없다면 나이 먹은 값을 못하는 셈이다. 혹간 악행과 잘못이 있으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나이 오십은 마치 특별 사면 기간과도 같은 절호의 기회이다. 이때 사죄하면 오히려 칭찬받고 어렵지 않게 용서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은 용기 있고 품위 있는 대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이 오십은 새 출발을 위해 제공된 특별 사면 기간과 마찬가지이니 이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고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는 행복의 시발점이다.
지식과 경험, 지혜와 경륜을 쌓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가르침에 따라 충실히 배우고 익히고 적용하면서 살아왔고, 대부분이 세상에서 정해 놓은 가치에 충실해야만 좋은 평가를 받는 짜인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나 사회에 대해서 나에게 부여된 의무를 충실히 전반기에 수행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나의 인생을 내 주관에 따라서 내 의지에 더하여 자유롭게 펼쳐나갈 기회를 줬다. 고삐가 풀리고 멍에가 사라지고 사슬이 풀렸다. 묶였던 행동과 제한된 사고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나의 이름으로 나의 명예로 나의 경험과 지혜와 지식을 세상의 밝고 건전하고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용도로 쓰이고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는 봉사와 기부의 기회를 준 것이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기회인가. 그러니 이 행복하고 고맙고 건강한 은퇴는 두려움의 시작이 아닌 행복 행진의 출발점인 셈이다.
인생의 참 행복은 오십부터 시작이라는 선배들의 교훈을 실제로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기다리고 고대한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내 발 앞에 온 것이다. 오십 행복의 시작에 오신 것을 축하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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