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조선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26/2012012602199.html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후 세계 경제가 깊은 불안 속에 쌓여 있다.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 전망과 함께 유럽 증시가 한때 폭락하는 등 미국과 유럽 전체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깊은 안개가 앞을 가리고 있다. 위기 극복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각국 정부는 빚더미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빠져나오기 힘든 침체의 터널로 세계 경제가 빠져들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 발을 빼고 싶지만 이미 무릎까지 빠져 들어간 상황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가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주가 하락 같은 대표적 지표만을 통해서 느낄 뿐이지만 말이다.
일단 이번 위기의 배경과 원인은 아주 간결하다. 재정 적자. 즉 국가가 진 빚에 그 원인이다.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 둔 것이 이번에 다시 떠올랐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정치적 갈등이 가라 앉아있던 문제를 끄집어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천문학적 재정 적자 문제의 해결을 놓고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긴축과 연방 정부 부채 한도 증액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며 미국 정부를 파산 직전까지 몰아간 것이 이번 쇼크의 도화선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신용 평가 기관이 스탠더드앤푸어스가 단행한 미국의 국가 신용 등급 강등이 불씨 역할을 한 것이다. 게다가 유로화를 쓰고 있는 유로존(Eurozone) 단일 경제권 전체를 병든 환자로 만든 그리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을 한 축으로 하는 남유럽 재정 문제가 겹치면서, 미국과 유럽이라는 세계의 가장 강력했던 경제 지도국이 중병 진단을 받은 셈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1차 중병 진단을 받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금융 공학의 발달로 집값의 80%를 빌려서 집을 샀던 미국 부동산 시장과 금융 시장의 거품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었다. 이는 2011년 유럽에서도 똑같이 확인되고 있다. 단적으로 인구 4,000여만 명의 스페인에는 현재 빈집이 무려 160만 채나 쌓여 있는 실정이다. 4인 가구가 160만 채에 입주한다면 640만 명이나 살 수 있는 규모이다. 전체 인구의 16%를 초과한 주택이 지어진 셈이다.
중국 최대 상업도시인 상해시의 길거리, 중국도 머지 않아 인구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진.김형래
어느 나라가 구원 투수로 등장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경기를 포기할 것인가?
예상 밖의 선수로 중국이 거론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쌓아 놓은 빚더미의 가장 큰 채권자로 이미 자리 잡았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의 국채는 1조15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개입을 거부했지만, 경제적으로 볼 때 미국 정부가 발생한 국채를 사 줌으로써 미국의 전쟁에 자금원이 된 셈이다. 중국도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과 미국의 달러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 이미 투자한 돈의 안전한 회수를 위해서 미국의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유럽의 서구의 적자 문제를 중국 경제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재정 적자 위기는 무엇보다 중국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전까지 높은 비용 때문에 접근할 수 없던 유럽 시장을 재정위기 뒤 저렴한 비용으로 두드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유로화 매입은 중국이 달러 의존성을 낮출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총리와 주석 등이 앞장서서 유럽을 방문해 중국의 유럽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중국의 유로 보유고의 속내를 들여다보자. 유로존은 이미 중국에 7천억달러 채무를 지고 있다. 중국 쪽은 유로존의 중국 채무액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재정 적자 위기에 빠진 유럽 국가들에 경제성장 촉진을 위한 직접투자액을 늘리면서 국채를 더 매입할 것을 약속한 상태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국무총리는 지난 6월 말 국빈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게서 직접투자와 국채 매입 약속을 받은 뒤 벌써 재정위기의 근심에서 해방된 것처럼 기뻐했다. 중국은 이런 직접투자와 국채 매입을 통해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 유럽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자국의 안정화와 발전을 위해 예나 지금이나 미국과 유럽을 계속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안도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중국의 처지에서 말하면, 서구의 몰락이 지금 시점에서는 너무 이르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들)이 서구에 대한 승리자가 아닌 구원투수 구실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국이 서구의 구원투수로 나서지 않는 것이 서구에는 차라리 좋을 수도 있다. 인권을 무시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정권에 의존하는 것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국무총리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으로서는 절대 달가운 일이 아니다. 새해 벽두에 격한 경제 얘기를 꺼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수면 위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서 위기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짚어보아야 할 일이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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